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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에 '똥' 싼 이야기

침착한 간옹
05.27
·
조회 3681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요

제가 아주 존경하던 작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림 잘그리는 놈들은 전부 바지에 똥 싸봤다!’

 

워낙 엄청난 작가님 이셨어서 매우 강렬하게 제 마음에 박혀 들어온 문장이었고 그날 이후로 저는 늘 똥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내가 아직 바지에 똥을 싼적이 없어서 못그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작업을 하던중 어느날

 

친구 두명과 함께 술을 먹게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살고 있던 헤이리마을은 가까운 술집까지 대략 3km 정도였고,

 자가용도 없고 어차피 술을 마실 거라 친구 두 명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맛있는 안주와 음주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흥건하게 취한 채 밤길을 걷던 중…


느껴졌습니다.


똥이 마려웠어요.


집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2km. 가는 길에 공중화장실은 단 한 개도 없는, 그야말로 문명과 절연된 구간이었습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랫배에서는 지옥문을 두드리는듯한 격렬한 요동이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제 상황을 눈치챈듯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제 온 신경은 오직 하나, 인류 최후의 보루인 괄약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두 명에게 이 절박한 사실을 알리고, 세 명은 거의 경보 수준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집까지 향했습니다.

 

 하지만…


집까지 남은 거리 대략 600미터.


느꼈습니다. 이게 한계라는 것을…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저는 비장한 결심과 함께 친구 두 명을 앞으로 거칠게 밀치며, 어릴 적부터 꼭 한번 외쳐보고 싶던 대사를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도망가!! 나한테서 떨어져!!!!”


친구 두 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 눈빛에서 모든 상황을 파악했는지, 차마 뒤돌아보지 못한 채 눈물을 삼키며 어둠 속으로 질주했습니다. 

 

저는 멀어져 가는 두 명의 그림자를 눈에 담으며 아랫배의 묵직한 감각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바지가 순식간에 묵직하고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지에 똥을 싼 것이죠.


잠깐의 해방감 뒤, 싸늘한 밤공기와 함께 밀려오는 축축하고 묵직한 감각, 짧은 탄식과 함께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보통 개그만화 같으면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현실은 만화와 달리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어차피 사람도 자주 안 다니는 길이고 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바지를 벗어 버리고 하반신을 겉옷으로 질끈 동여매 간신히 가린채 집까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상하죠.


분명 평소엔 사람도 잘 안 다니고 평일 밤이 되면 유령도시 같은 마을인데, 갑자기 사람이 가득 담긴 마을버스가 제 오른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창가에 붙어 있던 몇몇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았던것도 같지만 애써 착각일거라 외면하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왜 이 시간에 조깅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떤 어른께서 제 왼쪽을 상쾌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분은 저의 하반신을 힐끗 보더니,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습니다.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탄식했지만, 아직 저의 런웨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가야죠.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전방에 아는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직장 동료였어요.
다행히 그분은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걷고 있었기에, 제가 숨을 죽이고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가면 서로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저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해버렸습니다.
그분은 이어폰 너머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고, 저를 보자마자 돌같이 굳었습니다. 그의 입은 '헐' 하는 모양으로 살짝 벌어졌고, 이어폰 한쪽이 힘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땀으로 젖고 바지는 없고, 묶은 겉옷으로 간신히 하반신을 가린 이 처참한 모습으로, 저는 오히려 초연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ㅇㅇ씨 지금 퇴근하셨어요? 아, 저 바지에 똥쌌어요 ㅎㅎ”

 

그렇게 그의 얼어붙은 모습을 뒤로한채 저는 태연하게, 그러나 제 인생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그를 지나쳐 갔습니다.

 

이후에는 집에 잘 도착하여 씻고 옷도 갈아입고 그랬는데.. 자기전 작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잘그리는 놈들은 다 바지에 똥을 싸봤다’

 

어쩌면 이 말은 ‘바지에 똥까지 지린놈이 그림도 못그리면 안된다’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이날 이후 차근차근 성장해 웹툰 데뷔도 하고 이제는 어디가서 못그린다는 이야기는 안듣게 되었답니다.

 

만약 무언가를 더욱 잘하고 싶다면 모두 바지에 똥을 싸보는건 어떨까요?

 

혹시 모르니까요.

 

 

 

당시 도망가라며 친구들을 밀친 위치의 거리뷰 입니다.

 

똥얘기를 좋아하는 방장님이 이 글을 보고 흐뭇하게 웃어주시면 좋겠네요 

댓글
하남자인 방의
05.28
BEST
아..이래서 실수게시판이 익명이구나..
가식적인 조웅
05.28
BEST
직장동료 부분부터 차마 못보고 내렸습니다 실화 아니라고 해주세요
부상당한 왕자법
05.27
BEST
이걸 웃어도 되나 싶고 나혼자 봐도 될까 싶고..꼭 개방장이 봤으면 좋겠어요
관통한 제갈서
05.28
아... 나도 바지에 똥 싸면 취업 됨...? 그런 거면 당장 싸야지....
간사한 유위
05.28
"일단 똥을 싸라"
호에엥놀라는 순운
05.28
그... 그림쟁이가 지렸다는건 배변도 참고 그림에 열중하여 실례를 했다는거... 여야하는거죠 원랜?
관통한 왕윤
05.28
묵직해서 다행이다..묽었더라면..
변덕스러운 계옹
05.28
https://resources.chimhaha.net/comment/1748419174508-v7x2ht674hk.jpg
우직한 유봉
05.28
인정합니다.
침착한 한순
05.29
무슨 웹툰 그리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침착한 간옹 글쓴이
05.29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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