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침투부 관계자 및 개청자 여러분?
실수 썰 이벤트 게시판이 열렸습니다
썰 중의 썰은 바로 군대 썰 아니겠어요?
저는 군생활 동안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어요.
군생활 동안 2000명이 넘는 훈련병들을 만나다 보니 이런 저런 썰이 (상당히 몹시 매우) 많은데
실수 썰 하니까 일병 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올려 봅니다.
신병교육대는 교육을 위한 교육장이 여러 군데 있고, 각 교육중대 별로 어디는 경계교장, 어디는 화생방 교장, 어디는 수류탄 교장을 맡는 식으로 각자 담당하는 시설이 있어요. 그리고 그 시설을 유지/보수하는 건 물론이고 그에 필요한 교보재 같은 것들도 관리했답니다.
제가 소속된 중대도 교장 몇 군데와 강당을 맡아서 관리했습니다. 입소식/퇴소식이 진행되거나 훈련병 정신교육, 각종 대대 행사 같은 것들이 진행되는 강당이요.
제가 있던 사단은 이전한 지 꽤 돼서 그런지 몬드리안 패턴의 작은 조각 타일들이 붙어있고 쭈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수세식 변기가 설치된 곳이었어요. 칸칸이 구분된 파티션이 가벽으로 설치된 게 아니라, 그냥 아예 벽과 벽으로 나뉜 그런 구조.
아무튼 연식이 꽤 된 시설이었어요.

(타일과 화장실 사진 예시. 저렇게 뚫린 푸세식은 아니고 수세식이었음)
저희 중대는 시설 별로 중대원들이 사수/부사수를 나눠서 관리했어요.
○○교장 정/부
□□교장 정/부
강당 정/부
이런 식으로요.
저는 강당을 담당하는 부사수였어요.
어느 봄날, 저희 중대는 공반기(훈련병이 없는 중간 공백기)라서 생활관 내 훈련병 물품 검열을 위해서 장비 정리 중이었어요.
다른 중대는 훈련병 수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저희에게 강당을 쓰겠다는 연락을 했어요. 제 사수는 ‘OO아! 너 할 줄 알지? 니가 다녀와~’ 하고 저를 보냈답니다. 방탄 헬멧부터 방독면, 수통 같은 것들을 깔고 있던 와중에 바깥 바람이라도 쐬라는 배려일까, 내심 고마운 마음으로 강당으로 길을 나섰어요.
강당 오픈 절차는 크게 3가지 정도였어요.
1. 정문 및 관리콘솔 등 시건장치들 잠금 풀어주기
2. 건물에 전원을 올리고, 음향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세팅
3. 동파방지 및 절수를 위해 잠궈 뒀던 수도관 열어 주기
여기서 3번이 중요해요.
여느 부대가 그렇듯이 절약을 중시하다 보니, 수도관을 항상 잠그고 풀어주는 게 필요했어요. 그리고 옛날 방식이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관 밸브를 열기 위해선 가스밸브 열듯이 돌리는 게 아니라 바닥에 있는 작은 철판을 열고, 거대한 T자 빠루 같은 걸 꽂아서 돌려야 했거든요?


(거대한 T자 빠루. 이걸 바닥의 철제 뚜껑을 열고 네모난 거에 꽂은 뒤 돌림)
그렇게 1~3번을 다 하고 중대로 돌아와서 훈련병 생활관을 돌며 한참 탄띠랑 탄입대를 깔고 있었는데, 저희 중대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행정병이 “통신보안… 어?" 하더니 ”어어! 알았어!" 하고는 저에게 “야!! OO아 좆됐어!! 강당으로 빨리 뛰어가봐 빨리!!” 하는 겁니다.
‘…..뭐지?’ 하고 얼른 뛰어 갔더니.
원래 훈련병 수료식은 대대장 주관 행사지만, 가끔씩 사단장님이 오셔서 훈화말씀 하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투스타요. 자주는 안 오세요. 저희가 1년에 4기수 반? 정도 배출한다 치면 1번 오실까 한 정도니까요. 근데 이 날에 사단장님이 오셨대요. 나팔수들도 같이 와서 나팔 불고 그랬대요. 웃겨 정말.
아무튼 그렇게 훈화말씀 하시고 나서 화장실에 들리셨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세면대 수전(뜨거운 물 차가운 물 각자 대가리를 돌려서 트는 구식이었음)이 터졌대요. 근데 그렇게 터져서 '으악 이거 뭐야!' 하시던 사단장님이 세면대를 짚으셨는데 세면대가 박살나면서 수전으로 올라가는 수도관도 부서진 거에요.

(현장에 왔을 당시 상황)
사단장님은 짚으면서 깨진 세면대 때문에 바닥에 나뒹구셨고 화장실 밖에 있던 참모가 요란한 소리에 들어가 보니 하이드로펌프 맞은 만두콘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단장님을 발견하셨대요. 근데 수전이 통채로 뜯겨 나가서 잠글 수도 없고, 일단 사단장님은 의무대대로 가셨고, 화장실 하이드로 펌프는 계속 나오고 있으니 저를 부른 거에요.
일단 저는 다시 거대한 빠루로 부랴부랴 수도관을 잠궜고, 수료식도 어찌어찌 마무리가 됐어요. 대대장님이 저희 중대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자 했는데, 저희 중대장은 뭐 잘 모르죠.. 그냥 '수도관이 터져서 사단장님이 흠뻑 젖었다' 외에는 그냥 일어난 일 그대로니까...

(하이드로 펌프에 맞고 흠뻑 젖은 만두콘 사단장)
무튼 일은 크게 확대되진 않았고, 바로 다음 주에 대대적인 강당 화장실 공사가 진행됐어요. 사단장님이 별달리 다친 것도 아니었고, 사단 직할대 시설인데다 외부인(입영장병 가족들)이 방문하는 시설인데 이 정도로 낙후됐다는 거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리모델링을 지시하셨거든요. 다행히도 장병들이 맡아서 하는 게 아니라 외부 업체가 들어와서 했어요. 몬드리안 타일도 다 뜯고 새로 했고, 좌식 변기도 설치됐고, 수전은 빨강/파랑 대가리가 달린 구형 수전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여닫이 수전으로 교체 됐답니다.
근데 나중에 사수가 그랬어요.
'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빠루 돌리는 거 그거 풀로 돌리면 안 돼. 그냥 졸졸졸 나올 만큼만 돌려야 돼.'
사수가 자기 부사수 시절에 인수인계 받은 내용을 저한테는 말 안 해 준 거에요.
저는 수도관을 완전히 풀면 노후화된 시설들이 못 버틸 수 있다는 걸 모르고 ‘풀자 풀어~’ 하고 푼 거죠.
친한 사이라서 그냥 '에??? ㅋㅋㅋㅋ' 하고 넘어가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리를빗 개색기 같네요.
불똥 튈까봐 입꾹닫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몰라요.
근데 이게 제 실수로 일어난 일일까요? 아니면 사수가 알려주지 않은 실수로 일어난 일일까요?
무튼 사단장을 흠뻑 젖게 만든 해프닝을 겪었으니 재밌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잘못한 거 없이 만두콘이 된 사단장님께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찌됐든 쾌적한 강당이 생겼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아. 혹시나 군대 입대를 앞두신 여러분! 조교 하지 마세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