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지만 아름답고,
거울 같지만 진짜인 이야기가 여기 있다”
_문지혁(소설가)
상상은 금지되고 꿈은 병증이 되며
감정조차 오류로 치부되는 세계
이 차트는 그 모순의 경과를 기록한 것이다
치사율 100퍼센트에 이르는 바이러스의 출현과 이상 기후, 다섯 번의 새로운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 멸종을 코앞에 둔 24세기.
절망에 빠져 “공동 자살”을 결의하던 한 무리에게 전류 오작동으로 우연히 깨어난 인공지능이 은밀한 제안을 한다.
“다수의 사용자가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최적화 시스템”을 “설계”해주겠다는 게 그것인데, 인류는 다수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존하기 위해 “생애한도”를 채우면 “존엄 소거”, 곧 ‘안락사’가 되는 시스템에 동의한다.
이후로 인류는 세계의 지속에 방해가 되는 “상상”과 “꿈”을 제한당하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마저 소거하길 강요당하며, 방벽으로 보호받는 “중재도시”에서 살아간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아홉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27세기, “생애한도가 연장되어 아무도 존엄 소거되지 않게 된” 몇 달, 소거되는 이의 마지막 차트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세인’은 낙상 사고로 입원한 환자, ‘레드’를 만나게 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인공지능의 합리적 제안들’에 의문을 던지는 ‘레드’와의 소통 과정에서 ‘세인’의 ‘모순’이 점차 드러난다.
상상하지도, 꿈꾸지도 않는 듯 보였던 ‘세인’이 내면으로는 죽은 이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차트를 쓰고 싶다 털어놓으며 그저 순응하려는 ‘세인’에게 ‘레드’는 말한다.
“내 최후의 차트는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을 것이며, “나의 선택은 이 벽 너머로 나가는 거”라고.
이 목소리는 우리에게 생존만을 위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치를 잊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생존과 다른 ‘산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말」에서 “기억하고 기억되기, 그것을 씨앗 삼아” 타인의 “처지를 기꺼이 상상하는 용기”가 우리의 삶을 이어지게 해준다 생각한다고 밝혔듯, 결국 『부적격자의 차트』는 ‘부적격자’, 즉 자신과 타인의 처지를 상상할 줄 아는 이에 대해 그를 계속 “기억하고” 또 “기억되”고자 적어 내려간 ‘애도’의 기록이다.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며 “그 어떤 이야기도 자신의 힘으로 ‘상상하지’ 않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 소설은 “아프지만 아름답”(문지혁)게 가닿으며, “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박해울) 성찰하게끔 한다.
다름 아닌 인간을 구원하는 건 생존도, 지속되는 평온한 삶조차 아니며, 자신의 ‘선택’으로 두려움의 세계로 나아가 기꺼이 기억하고 기억되며 삶을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주요 내용
반려동물과 같은 생애주기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이 재앙을 불러왔다. 22세기 말 유전자 편집에 의해 인간과 같은 생애주기를 지닌 반려동물, 리누트가 발명된다. 그러나 이후 이상 기후와 다섯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는 대규모로 위축되었고 통제된 환경에서 기를 것이 권장됐던 리누트들은 자연으로 풀려난다. 이들의 배설물은 치사율 100퍼센트에 이르는 바이러스의 원인이 되고 이에 따라 인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멸종을 앞두게 된다. 그러던 24세기, 전류 오작동으로 우연히 재가동된 인공지능 ‘모세’. ‘모세’는 공동 자살을 결의 중이던 한 무리의 인간에게 최대한 많은 이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명의 인간이 살 수 있는 적절한 ‘생애한도’와 이 한도를 넘기면 ‘존엄 소거(안락사)’되며 상상과 꿈, 허구 등을 금지하면서 이 합리를 7회 어기는 이는 ‘부적격 소거(사형)’되는 시스템을 설계한다. 또한 자신은 합리적인 제안을 하는 ‘중재자’가 되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약속하며, 인간들은 이 안정적인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는 ‘실무자’로 기능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중재도시’가 건설된다.
이후 아홉 세대가 흐른 27세기, 실무자 ‘세인’은 임시 파견을 나간 병동에서 ‘레드’라는 환자를 돌보게 된다. ‘세인’에게 계속 중재도시의 질서에 대해 의심을 심어주는 ‘레드’. 소통하던 중 ‘세인’의 머릿속에 사는 부적격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레드’는 ‘세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 도시를 떠날 거야. 어때, 동행하겠어?”
군더더기는 본질을 호도한다. 내 의견이 아니라 중재자의 말이다. 이 도시에서는 군더더기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불필요한 허구는 용인되지 않는다. 실무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이 차트를 펼쳐 든 독자라면 중재자의 말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닐 터이다. 이것은 애초에 부적격자의 차트이고 세인도 나의 이러한 서술 방식을 분명 마음에 들어 했으리라 믿는다.
_16쪽
무리 중 몇 사람이 진지하게 공동 자살 의지를 밝혔다. 동참을 원한다면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삽시간에 연구소는 술렁거렸고, 사람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생명을 연장해나갈 것인가, 예정된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낼 것인가. 무엇이 더 인간적인가.
_22-23쪽
실무자들은 중재자의 계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주어진 생애한도, 주어진 직무 외의 삶을 가정해보는 일도 없다. 중재도시의 질서가 아닌 다른 가능성이라는 것 자체를. (……) 오래전에 상상력이라고 부르던 것은, 죽은 단어다. 실무자들은 그런 힘을 구태여 바라지 않았으며 존재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중재자의 합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견고하게 길들어갔다.
_41-42쪽
멋대로 흘러넘치는 말들이 세인은 두렵지 않았다. 동시에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두려움을 지니는 것이 살아 있는 증거라고 늘 믿었는데, 두려움을 잊은 순간도 역시 똑같이 살아 있는 것이었다.
_118-119쪽
이폴은 몇 세대 전 죽은 단어 하나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죽음으로 인해 곁에 없는 누군가를 계속 기억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 사라진 것들이 즉시 보완되고 대체되는 중재도시에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단어를.
_139-140쪽
이 소리는 듣고 있자면 스르륵 잠에 빠지게 하는 자장가이기도 했다가, 눈을 뜨게 하는 알람이기도 했다가, 다소 변덕스럽다.
백색의 땅 사람들은 이것을 휘파람이라고 부른다. 방풍막을 단번에 날려버리지 않을 정도의 바람은 그저 노래에 가까운 것이라면서.
_154-155쪽
우리는 매일 아침 지난밤 꿈에 관해 떠들었다. 그러면서 웃거나 진지해지거나 울거나 가끔은 언쟁하기도 했으나 꿈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든 말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때로 지나치게 충만한 꿈을 꾸면 오히려 말을 잃을 때가 있을 뿐이었다.
_159-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