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균민수입니다. 남극은 날씨가 좋으면 내일 들어갈 것 같은데, 이전 글 반응이 좋아서 작년에 갔었던 세종기지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저는 작년 세종기지에 4주 정도 있었구요, 올해는 7주정도 있을 예정입니다.
1. 극지연구이야기 - 극지 세균 이야기
제가 극지연구자가 아니라서 극지에 가는 세균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세균학자의 극지연구는 극지역의 특이한 환경에 적응한 세균이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이루어집니다. 저의 경우는 극지에 사는 특이 포식미생물(다른 미생물을 잡아먹는 미생물, BALO)을 분리하기 위해 극지에 다니고 있죠.
극지라는 곳은 평균기온이 낮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 적응하는 미생물이 살 확률이 높습니다. 다만 이게 항상 그런 건 아니고 보통 25°C에서 자라곤 하는데 가끔 낮은 온도에 적응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15°C 근처에서 가장 잘 자라는 미생물이 있다면 이런 녀석을 저온 미생물이라고 합니다.
극지 미생물이 낮은 온도에서 잘 자란다는 의미는 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효소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잘 작동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말인 즉 극지생물을 연구하는 것으로 저온 효소자원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환경이 아닌 생물쪽에서 극지연구는 이런 극지 효소가 매력적이라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극지 좀새풀 유전자를 활용한 저온 저항성 벼 품종개량 같은 것이겠지요.

그림 1. 작년 세종기지에서 분리한 포식 미생물(추정)의 플라크 (붉은 원 안쪽)
포식미생물은 특성 상 바이러스처럼 다른 미생물을 먹어 투명하게 만든다. 붉은 원 안쪽에 약 4개의 플라크가 있다.
그런 이유로 생물학자에게 극지는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연구할 거리가 넘치거든요. 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는 다음 단락에서 소개드리겠습니다.
2. 세종기지에 가는 방법
우리나라가 가진 극지 연구기지는 총 3군데가 있습니다. 북극의 다산기지, 남극의 장보고기지, 세종기지.
연구기지가 아니더라도 연구할 방법은 많습니다. 알라스카라던지 노르웨이 스발바드 제도라던지요, 하지만 오랜기간 진득하게 연구하려면 당연하게도 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북극의 경우는 6-9월 근처, 남극의 경우는 12월-2월 근처가 연구가 가장 활발할 때입니다. 이유는 그때가 여름이라 연구하기가 좋아요. 극지 생물도 가장 활발할 때죠. 이런 시기에 가는 연구대를 보통 하계연구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극에 1년 내내 있는 연구대를 월동연구대라고 하죠. 저는 하계연구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본 곳은 그중에서도 세조기지 하계연구대이기 때문에 세종기지 하계연구 위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세종기지 하계연구는 6월즈음부터 준비해서 11월까지 서류작업을 진행합니다. 누가 어디에 무슨 연유로 가서 어떤 연구를 할지, 극지 피복, 연구 물품, 건강 검진, 정부 허가사항 등등 생각보다 많은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특히 외교부, 환경부 허가는 남극조약에 따라 남극에 가는 모든 연구자가 필수적으로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립니다.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의 남극은 정부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림 2. 격리호텔에서 바라보는 푼타아레나스 전경
코로나로 인해 연구자들은 격리기간 중 호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작년 12일보다는 올해 4일은 좀 사정이 나은 편.
그렇게 모든 사항이 다 끝나면 12월 초부터 하계대와 월동대가 출발하게 됩니다. 연구시기에 따라 12월 1월 2월 이런식으로 구성됩니다만 생각보단 유동적입니다. 저 시기에 무진장 왔다 갔다 하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년에는 코로나때문에 극지 활동이 적었는데, 올해는 다큐멘터리 팀과 예능팀도 참여할 정도로 극지활동이 활발합니다. 올해 세종기지는 붐빌 것 같네요.
이 모든 작업이 끝나면 비행기를 통해 이동합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만, 세종기지로 입남극하는 경우 마지막 도시는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입니다. 지금 제가 격리되어있는 곳이기도 하고, 무한도전에서 여기 분식집을 소개한 적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작년 12일, 올해 4일)를 마치고, 날씨가 좋으면 비로소 남극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남극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약 3시간 정도 날아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 칠레공군기지로 갑니다. 날씨가 안 좋으면 공항이나 호텔에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도합니다. 가끔 며칠 더 미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 3.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에 가는 비행기(상), 남극에 내린 극지 연구자들(하)
생각보다 일반 여행기 같이 잘 되어있는편, 놀랍게도 기내식도 제공한다. 킹조지섬 칠레 공군기지는 돌밭에 있다. 착륙때 덜컹거림이 심하다.
그렇게 칠레 공군 기지에 도착하면, 러시아 기지를 거쳐 고무보트, 배를 타고 . 우리 하계연구자들이 머무를 곳 세종기지, 바톤반도로 가게 됩니다.
3. 세종기지에서 연구하기


그림 4. 맑은 날 세종기지 전경
도착 당일 날씨가 10일에 1번정도 있는 정말 좋은 날씨. 위쪽사진이 세종회관 아래쪽은 기지에서 반대편 위버반도를 바라볼 때의 사진.
극지연구 중에서도 세종기지는 비교적 남아메리카 대륙과 가깝기 때문에 기후가 좋은 편입니다. 여름의 경우 평균기온이 4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보시면 비도 자주 내려요. 작년에는 눈이 딱 1번 왔었습니다. 그럼에도 맑은 날은 꼽을 정도로 적은데 작년에 도착한 날 날씨는 정말 좋았습니다. 올해도 그러길 바래요.
세종기지는 연구동과 세종회관으로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정확한 명칭은 있는데 솔직히 식당인 세종회관을 제외하면 딱히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구동에서 연구하고 자고(2층에 하계연구대 숙박시설이 있습니다.), 세종회관에서 식사, 취미활동, 외부연구 준비를 합니다.
내부 연구동이나 시설은 다음 남극민수 때 보여드리고, 작년에 외부활동을 한 사진을 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림 5. 포터 소만으로 가면서 찍은 킹조지섬의 사진
기지를 넘어가면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포장도로 같은 건 없다. 돌밭과 눈밭, 그리고 이끼 밭이 전부.
이끼밭에 스쿠아(남극 도둑갈매기)가 앉아있다. 근처에 가면 머리를 빙빙 돌면서 쪼거나 발로 차거나 똥을 싼다. 그 경우 근처에 둥지가 있다고 한다.
남극에서 위협적인 생물은 솔직히 없습니다만, 그래도 연구 특성 상 생물과 맞닥뜨릴 기회가 많습니다. 스쿠아, 젠투펭귄, 아델리펭귄, 바다코끼리, 물개… 대부분 위협적이진 않습니다만 물개를 가장 많이 신경 씁니다. 물개는 어두운 색이라 잘 안보이는 데 근처에 가면 짖거나 물곤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한번 물개 20마리가 있는 곳에 샘플링을 갔다가 물개에 쫓길뻔하긴 했습니다. 어차피 느려서 달리기만 잘하면 다 피해지긴 하는데 수가 많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림 6. 남극의 위협적인 야생동물들. 젠투펭귄(좌), 턱끈펭귄(우상), 물개(우하)
펭귄마을 ASPA171에 가면 이런 펭귄들과 물개들이 엄청나게 많다. 다들 뭍에서는 얌전한 편이지만 물개는 근처에 가면 짖거나 공격한다.
이런 녀석들 근처에 있는 흙이나 해빙호 등에서 퇴적물을 가져다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균을 분리합니다. 작년보다 이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서 아마 좋은 녀석들을 더 건졌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자신 팀 연구만 진행하지만 가끔 다른 연구팀 지원을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 좋게도 펭귄팀 지원을 나간 적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세균학자라 펭귄 연구팀의 짐을 나르거나 연구 물품을 운송을 도와드렸죠. 덕분에 펭귄 연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림 7. 펭귄 연구 지원할 때의 사진
펭귄연구팀의 지원요청으로 펭귄마을 방문때의 사진. 펭귄은 느려서 커다란 잠자리채로 조심스럽게 잡을 수 있다. 우상단 오랜지색 건물은 펭귄마을 비상대피소. 우하단의 사진은 펭귄의 등에다가 GPS를 설치하는 모습.
4. 마치며…
이것 말고도 많은 걸 더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만 너무 글이 길어지는 것도 그래서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극지연구 재미있습니다. 비록 저는 극지연구소가 아닌 외부연구팀 참여였습니다만 1달간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인터넷이 거의 안되는 점만 제외하면 사는데 크게 불편한 점이 없기도 했네요. 작년에는 초짜였지만 올해는 저희 연구팀도 꾸려서 가는 만큼 사진을 많이 찍어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작년에 찍은 남극 사진과 함께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3월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