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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최미래 외 - 애매한 사이

취급주의민트초코절임
01.17
·
조회 548

‘ㅇㅁ’에 들어갈 무한한 단어들을 상상하며 
문학의 ‘애매’한 미래를 
함께 맞이하고 돌파하는 젊은 작가들  

 

나는 ‘애매’의 애매함을 좋아한다. 의미 생산이 넘치는 이 시대에서 표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모호한 상태. 이들은 ‘ㅇ’의 유연함과 ‘ㅁ’의 모남 사이에 있다. 동시대와의 유연한 관계, 작가적인 모난 개성,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다른 무엇이 아닌 각각의 소설들이다.

민병훈

 

《애매한 사이》는 같은 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시인, 출판인이 되어 함께 계속 읽고 쓰는 문학 동인 ‘애매’의 첫 소설집이다. 

소설가 최미래, 성해나, 이선진, 김유나, 시인 조시현, 출판인 최현윤이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에서는 ‘애매’의 자음인 ‘ㅇㅁ’에서 각자 채집한 단어들을 소재로 하는 여섯 편의 소설을 엮어 소개한다. 

 

한 명의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되어 책을 출간하고, 그 책이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일련의 과정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틀이 존재한다. 

이 틀 바깥에 존재하는 ‘좋은 글’, ‘계속 쓰는 사람들’을 발굴하는 것은 문단의 과제로 여겨져 왔고, 이 고민에서 독립적이고 다채로운 시도들이 생겨났다. 

여기에 함께 응답하고, 문학의 다음을 상상하는 마음으로 애매의 첫 책, 《애매한 사이》를 선보인다. 

서로 너무 달라서 하나로 결집되지 않고 그래서 함께 ‘애매하기’를 자처하는 이들. 

각자 다른 역할로 문학의 곁을 지켜온 젊은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어떻게 포착하고 감각할까. 

 

민병훈 작가가 추천의 글에 적었듯 ‘문학’과 ‘공동체’는 언뜻 사이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친분을 넘어 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애매의 순수한 열정이 정체된 시장에 활력을 주기를, 문학장의 논리에 새로운 흐름이 되기를 바란다. 

 

한 권이라기엔 애매한

 

‘ㅇㅁ’에서 시작한다는 느슨한 규칙 아래 모인 6명의 글은 제각각 다른 시선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 

최미래 작가의 〈얕은 바다라면〉에는 서로의 결핍을 맞대고 한 시절을 지나온 연인과 자연스레 닮아갔던 ‘입맛’을 추억하는 인물이 있고, 성해나 작가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는 80년대 한국의 폐쇄적인 시대상 속 평범한 악인의 성실하고 묵묵한 ‘야만’이 있다. 

조시현 작가의 〈파수破水〉는 주머니 속 작은 ‘올무’에서 시작해 결국 구멍 밖으로 역류하고 마는 일상 안에 돌출된 낯선 징조들을, 최현윤 작가의 〈너희 소식〉은 모든 것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미친 세상”의 긴박함과 그곳에서 끝없이 갱신되는 얼굴들, 소식들, 장면들을 마주치는 한 개인의 무상함을 그린다. 

이선진 작가의 〈볕과 끝〉에는 화창한 날들을 지나 한여름에 연인을 위해 두터운 ‘양말’을 뜨며 이별을 준비하는 뙤약볕 같은 사랑의 끝이, 뒤이어 오는 김유나 작가의 〈부부생활〉에는 안온한 얼굴로 범죄를 모의하고, “네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락함을 느끼며 꽉 쥔 손을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 

 

이토록 다르게 변주되는 소설의 끝에는 서로의 글에 보내는 코멘트가 있고 부록으로는 6인의 에세이와 ‘텔레스트레이션’ 게임을 변형한 ‘애매스트레이션’ 게임이 실려 있다.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친구들, 서로의 글을 나누어 읽고 다정한 감상을 보내는 동료들, 그럼에도 글을 쓸 때는 혼자가 되는 애매 동인의 면면을 한 권에 담았다.
 

문학동인 애매(愛枚)

 

애매(愛枚)의 뜻은 사랑 애(愛)에 낱 매(枚)를 써서 ‘우리가 써나간 글 한 쪽 한 쪽을 사랑하다’라는 뜻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애매(曖昧)한 모임이라 애매구나’라고 합니다. 

여섯 명의 동인 구성원이 각각 소설가, 시인, 출판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렇지요. 소설의 결 또한 다양해 흔히 말하는 ‘○○파’라고 일컬어 명명할 수도 없습니다. 

문학 또한 그런 애매함을 지향하는 게 아닐까요. 

선(善)과 윤리의 기준에 대해, 단호한 규칙의 기이함에 대해, 연약한 것이 주는 강력한 힘에 대해. 

정답이 없는 모든 것을 고민하고 질문하는 것이 문학의 일 중 하나이니까요. 

누군가는 모임이 권력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문학은 혼자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애매는 서로의 파수꾼인 동시에, ‘함께’하는 연대의 의미를 다져가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를 지향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한 쪽 한 쪽을 사랑하는 동시에, 영원히 애매(曖昧)한 모임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차례

 

최미래 

…… 〈얕은 바다라면〉 7 

…… 애매한 코멘트 34

성해나

……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39

…… 애매한 코멘트 82

조시현

…… 〈파수破水〉 87

…… 애매한 코멘트 120

최현윤 

…… 〈너희 소식〉 123

…… 애매한 코멘트  148

이선진 

…… 〈볕과 끝〉 151

…… 애매한 코멘트 182

김유나  

…… 〈부부생활〉 185 

…… 애매한 코멘트 220

부록 1

……애매한 에세이 225

부록 2

……애매스트레이션 게임 247

추천의 말(민병훈) 259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도가 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름답고 또 무서워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좋은 것. 언젠가 급작스럽게 깊어진 수심 때문에 빠져 죽을 뻔한 후로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는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한 뒤에, 일상을 지내다 뜬금없는 시점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다, 인간, 가난. 이것들을 조심해. 너무 깊이 들어가면 못 나온다.

최미래, 〈얕은 바다라면〉, 11쪽

 

희망이 인간을 구원하기도, 잠식시키기도 한다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성해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72쪽

 

도시는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꾸역꾸역 차오르다 이렇게 터져버리는데. 지금도 저 아래 깊은 곳으로 흘러내려 가고 있을, 살점들. 도시가 내게 그것을 먹였다. 나의 배 속. 깊은 어둠. 그 안에서 귀의 올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녹아내리면서 나와 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조시현, 〈파수破水〉, 115쪽

 

어쩔 수 없지. 그 말을 계속 생각한다. 어쩔 수 없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밖에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 그러니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다. 틀려먹은 것만 같다. 그래도 눈을 뜨고 있다. 주어진 것을 해야 한다. 해야 하는 일이다.

최현윤, 〈너희 소식〉, 129쪽

 

햇빛인지 햇볕인지 햇살인지 모를 뜨거운 기운에 노출된 채로 허공에 부우― 떠 있던 나는 여전히 땅에 발붙이고 서서 육수를 뻘뻘 흘리고 있는 나를 잠자코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 다음 뭘 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왜 네 귀를 의심하지 않니, 저 여자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렇게 빠진 코 같은 얼굴로 계속 기다린다 한들 기다림은 썩어 문드러지기만 할 거야, 너 완전히 새 될 거야, 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이선진, 〈볕과 끝〉, 168-169쪽

 

구영수는 가끔 오진희가 두려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일어난 뒤엔 곁에서 잠든 오진희를 바라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 서로의 인생을 완벽히 저당 잡았다는 사실. ‘네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있다.’ 그 불안한 사실이 주는 안정감. 그것으로 구영수는 살아갈 수 있었다. 케이크를 사고 초를 꽂고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기념할 수 있었다.

김유나, 〈부부생활〉,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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