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어린날" 표절논란에 관해 풀어보는 표절에 관한 썰

"'어른'은 창작성이 없다" 라는 뉴스를 보고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어서, 좀 알아봄.

‘어른’은 아는 노래인데, ‘어린날’은 잘 모르는 노래라 유튜브 검색해서 비슷한 부분 잘라서 비교해주는 영상을 봤음.

그 비교 영상을 보고 쓰는 글임.

본인 오래전에 서울재즈아카데미 작편곡과 나오고 밴드활동 비롯한 음악활동도 좀 해봐서 나름 전문성 있음.

1. 후렴부분 코드진행 같음(I-V7/vi-VIm-IVm)

2. 리버브를 사용해서 deep한 느낌의 사운드를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유사함

3. 멜로디 다름

4. 후렴 처음 들어가는 부분(대중가요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에서 악기구성 다름

5. 연주하는 리듬꼴 다름. 브릿지에서 “어른”은 싱코페이션 리듬 치는데 “어린날”은 정박 연주.

6. 보이싱 다름. “어른”에 있는 특징적인 피아노 라인이 “어린날”에는 전혀 없음.

코드진행을 같게 쓰고, 리버브를 사용해서 지향하는 사운드의 방향이 같아서 이 부분에서 두 곡이 비슷하게 들려서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음.

하지만 멜로디 다르고, 악기구성 다르고, 리듬패턴도 차이가 있고, 보이싱도 달라서.

내가 그 유튜브 영상 보고 판단하기엔 “어린날”이 “어른”을 "표절했다"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었음.

다만 OST 부문에서 “어른”이 워낙 성공한 곡이니 “어린날”이 “어른”같은 느낌을 내도록 의도했을 거라고는 짐작함.

코드진행이 같으면 같은 느낌으로 들리는게 당연함. 둘이 섞어 놔도 어울리게 들리는게 당연하고.

그런데 코드진행이 같다고 표절이라고 하는 건, 

이말년 삼국지를 이문열 삼국지 표절이라고 하는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

삼국지니까 당연히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나오고 적벽대전 하고 위촉오로 갈라지겠지.

그런데 그게 이문열 삼국지 표절인가? 그렇게 따지면 이문열도 나관중 표절한건데?

그것과 비슷한 사정으로, 코드진행 같다고 표절이라고 할 수가 없음. 

I-V7/vi-VIm-IVm 같은 코드진행들은 수많은 음악가들이 우리고 우려먹어서 사골까지 녹아 없어진 코드진행임.

그리고 사운드에 관한 접근법. 사운드 느낌이 정말 비슷하길래, 크레딧을 확인해 봤음.

“어른” 크레딧

“어린날” 크레딧

"Mastered by" 에 주목 바람.

두 곡 모두 권남우 기사님께서 821Sound Mastering 이라는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하셨음.

마스터링 단계는 믹스된 음악을 상업적으로 발매할 수 있도록 음압을 맞추고 밸런스를 잡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뮤지션 입장에서는 “마술”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함.

듣기 싫었던 거슬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듣기 좋게 된다거나, 중음역대에 뭉쳐있던 소리가 쫙 펴져서 시원한 사운드가 된다거나.

같은 장르의 두 음악을 같은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같은 스튜디오에서 같은 느낌을 의도해서 마스터링하면 사운드가 비슷하게 나오는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함.

게다가 코드진행까지 같으니. 비슷하게 들리는게 당연할 수 밖에. 

하지만 그것으로 표절을 주장할 수 있을까, 하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함.

“권남우 엔지니어님께 마스터링을 의뢰한다”라는 선택이 독창성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어른' 같은 사운드로 만들어 주세요” 라고는 요청했을 수는 있겠는데, 그걸로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엔지니어에게 레퍼런스를 전달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임. 

정리하자면,

이 상황에서 “어린날”이 “어른”을 표절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어른'은 창작성이 없다"라고 답하는 건 대단히 잘못된 표현임.

‘어른’은 고유의 독창적인 요소를 지닌 훌륭한 작품임.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어른”이 “어린날”보다 멜로디, 보컬 가창, 편곡 모든 면에서 우월함.

‘어린날’은 ‘어른’의 독창적인 요소를 사용하지 않았음.

‘어른’이 사용했고, 그 이전의 다른 곡들도 사용했던 보편적인 요소가 ‘어린날’에서도 사용되었음.

그렇게 해서 ‘어른’과 비슷한 사운드를 내게 되었지만, ‘어른’이 사용한 독창적인 요소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대신 사용한 멜로디, 보이싱, 악기편성등등에서 ‘어른’에 비해 안좋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어른’만큼 좋은 곡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임.

만약에 ‘어린날’이 그러한 부분에서도 ‘어른’의 독창적인 요소를 그대로 사용했다면, ‘어린날’은 ‘어른’만큼 좋은 곡으로 느껴졌을 것임.

하지만 그랬다면 ‘어린날’은 표절곡이 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