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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맨
23.10.07
·
조회 38073

 

 "주인님! 돌아오셨군요!"

 

 삐삑-

 오랜만에 말리부 디젤의 차문을 열었다.

 그동안 외로웠는지 말리부 이 녀석이 주인을 반갑게 맞는다.

 

 제네시스를 사고 나서 아내의 손에 넘어간 나의 전 애마 2013년형 말리부 디젤.

 나의 첫 신차이자 든든했던 가족의 신행태보.

 부드러운 제네시스에 홀려 그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던 비운의 초호기.

 조홍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통솔력 79에 무력 81. 초반에 장수가 부족하면 감지덕지하면서 아껴쓰던 장수지만 점차 세력이 커져 천둥벼락같은 장수들이 영입되면 뒷전으로 밀려 뭐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그런 녀석.

 

 오늘같이 소영이를 데리러 갈 때면 평소대로 부들부들 비단같은 주행감의 제네시스를 선택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황이 급했다.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마침 아내의 가방에 말리부 차 키가 있었기에 부랴부랴 말리부를 택한 것이다.

 

 내 눈 앞에 서 있는 하얀 빛깔 말리부.

 오랜만이라 어색한 것도 잠시, 차문을 열자 그간 몸에 배어있던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조종석에 앉자마자 안전벨트 착용, 왼손으로는 조종석 위치 조정, 오른손으로 사이드 브레이크 해제, 시동을 걸고, 사이드 미러를 펴는 동시에 가속 패달을 밟으며 몸이 순간 뒤로 밀리는 걸 느낀다. 자연스럽게 주차장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간다.

 

 익숙한 버튼 위치와 재질감.

 특유의 무뚝뚝한 계기판.

 나를 감싸는 디젤 특유의 콜록콜록 기침소리.

 가로등 LED에 물든 채 시내를 가르고 아스팔트로 빨려들어간다.

 마치 2013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결혼 초기까지 나는 자차가 없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수도권에 살기도 했고 밖을 자주 나가는 직업이 아니다보니 필요성을 못 느껴 마련하지 않았던 것인데 소영이가 태어나면서 짐도 많아지고 안전하게 가야할 일이 생겨 구입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디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았다.

 승합차와 SUV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디젤이 승용차에 하나둘씩 장착이 되면서 전면에 홍보를 하던 시기였다. '경제적이고 힘 좋은 승용차'에 홀려 사람들은 앞다투어 디젤 승용차를 구입하였다. 나 역시 '말리부 가솔린'과 '말리부 디젤'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결국 '네이버 자동차' 토크에서 비밀결사로 활동하고 있던 쉐슬람에게 홀려 '말리부 디젤'로 결정하고 말았다.

 비밀결사 쉐슬람 말에 의하면

 

 "쉐보레는 천하제일차(天下第一車)이며 안전, 디자인, 역사를 모두 충족시킨 트리니티 포스로 군림하고 있다. 그간 보령미션으로 인한 고질적인 심장병이 약간의 흠결로 잡혀있으나 이번 '말리부 디젤'의 출시로 디젤 특유의 힘찬 토크가 이마저도 덮어버리는 한석봉의 금물신필이 될 것이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이로써 쉐보레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어 용처럼 고고히 비상할 것이요, 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는 유일신으로 거듭날지니 아직 깨닫지 못한 우매한 자들은 미리 조아려 경배를 드리는 것이 옳다." 

 

 그들은 이것을 '네이버 자동차' 토크란에서 경전처럼 외고 있었다.

 차를 한 번이라도 몰아본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겠지만 아직 차를 안 사본 나의 입장에서 지속된 세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내 손에는 말리부 디젤의 차량등록증이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애지중지 타고 다녔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젤 특유의 덜덜거림이 심해졌다.

 간사한 것은 인간이었다.

 눈에서 꿀물이 떨어질 것처럼 아껴주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시끄러워지자 냉대를 했다.

 연식이 된 디젤은 흡사 영감과 같았다.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갑자기 크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요동치다가 멈추고는 곧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울컥하며 한 차례 통 위로 솟았다가 비비비 거리며 꿀벌 날개 비비는 소리를 내는 둥 날카로운 주파수같은 소리를 내는 둥 세상 신기한 소리는 다 만들어내고 다녔다.

 새로운 제네시스를 사자마자 헤어져버린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 나를 태우고 말리부 디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 주행을 하다보니 이게 웬걸, 제네시스보다 훨씬 반응이 빠른 것이다.

 디젤의 강한 저속 토크가 제네시스보다 반박자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인데, 말리부 디젤만 탈 때는 모르다가 제네시스를 경험해보고 나니 깊숙이 다가왔다.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기민한 움직임에 몰입하자 덜덜덜 떨리는 소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투박한 실내 인테리어도 오로지 차량 본연의 기능에 집중한 느낌마저 들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소영이를 만나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주행의 재미를 만끽했다.

 별 것 아닌 작은 부분이 큰 만족감이 되어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 나의 하얀 조홍, 백홍.

 그동안 너에게 소홀해서 미안했다. 앞으로 종종 너와 함께 하마.

 짧은 시간 나만의 사죄와 다짐.

 백홍도 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더욱 우렁차게 엔진의 굉음을 낸다.

 어쩌면 오랜 기다림 속에서 나에게 서운했던 감정의 뭉치들을 도로에 한바탕 토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일종의 투정으로 변해 나를 다그치지만 그 속은 용서와 환영일 것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되뇌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차 하나가 되어간다.

 

 집으로 도착해 소영이를 내려주었더니 소영이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디젤의 덜덜거림에 멀미가 난 것 같았다.

 식탁 앞에서 밥 맛이 떨어진 허연 입술을 파르르 떤다.

 그냥 제네시스 타야겠다.

 

 

댓글
피난민수
23.10.07
BEST
솔직히 심심하죠?
주펄놈
23.10.07
BEST
ㅋㅋㅋㅋ그 통천님인가 쏘맘님이 방장 운전하는 차 탔다가 토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차가 문제가 아닐 수도
일레인
23.10.07
BEST
혹시 하루키병 걸리셨나요?
이흥건
23.10.07
BEST
이말년씨리즈 글로 보는 느낌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펄순이
23.10.07
BEST
나중에 글 싹 다 합쳐서 이말년 수필집 출간해 주세요
모닝침디
23.10.07
말리부 타는걸 말리부
호수동복실이돌격대
23.10.07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모르게 '미친새끼...ㅋㅋㅋㅋ'하는 감탄사 튀어나오고 이내 '앗 나보다 한참 형님께 무슨 말을...'하며 스스로 부끄러워 하곤 합니다. 나에게 감탄과 부끄러움을 매번 선사하는 침착맨의 글...참 감사하다!
측량기사K
23.10.07
아 덜덜 거리는 거 개웃기넼ㅋㅋㅋㅋ
천쩌빈
23.10.07
쏘영이 컨디션 안 좋지 말지~ 소영아 항상 건강해야한다
공급없을수요의왕병건
23.10.07
저는 타던 차를 팔아버렸죠 가끔 궁금합니다 좋은 주인 만나 잘 지내니? 나 정말 너를 아껴줬었잖아...
저도 방장과 같은 이유로 디젤탔었는데 개같은거 디젤이 무슨 미세먼지의 주범이며 온 세상 공기를 더럽히는 흑막인거마냥 몰아가는 치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방장따라 g80오우너가 되었죠
용달블루는 차마 따라 못했읍니다만은...
아무튼 예전 타던 차 가끔 그리워요 방장은 쏘맘덕에 가끔 앉아보기라도 할 수 있어 부럽네요 그런데 쏘영이 멀미한거 듣고나니 어우 맞아 그래 나도 이제 디젤 못타겠더라 매연 냄새도 많이 나는거 같고 털털 거리는 게 속이 울렁거려 아주 멀미해 제네시스 타세요
저가요
23.10.07
운전석도 아니고 조종석 ㅋㅋㅋㅋㅋ 건담 타냐구
복실이돌격대
23.10.07
쉐보레가 최고입니다.
아데마르
23.10.07
쉬는 동안 잠깐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추억 여행도 하고 이런 글도 쓰고 잘 쉬고 있는거 같아 좋네유
병건즈
23.10.07
필력 미쳤고 ㅋㅋㅋㅋ
스위밍코드
23.10.07
침착맨 글쓰고싶어 은퇴 ㅋㅋ
단거맨
23.10.07
멀미는 ㅇㅈ이지..
말년을여유롭게
23.10.07
’이 차 타는걸 말리부‘
김파마
23.10.07
아오 맛있어
미나토자키사나
23.10.07
심심하면 요아소비 후일담 켜주세요
으랏차차과제
23.10.07
이말년 수필같넹ㅋㅋㅋ
dlwlrma
23.10.07
그래 변화구 올 것 같더라
옾옾옾카페스탈
23.10.07
코로나 걸렸던거 아니었어요??
시간의지평선
23.10.07
은근슬쩍 또국지 얘기 나오는거 왜케 웃기냐 ㅋㅋㅋ
그립읍니다
23.10.07
글 개잘쓰신다
참룡객
23.10.07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조홍
진동감이 멀미를 키우는 것이다! -백홍
보롬보롬
23.10.07
아 글 참 맛있네 ㅋㅋㅋㅋ
에브리씽에브리웨어피스
23.10.07
침착맨 목소리로 글이 들리네
침착맨이오
23.10.07
진짜 필력 미쳤네
초능력야구빽구빽구
23.10.07
글솜씨가 킹받으면서 재밌는게 마치 최인훈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캐럴 5 같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침착해도될까요
23.10.07
필력보소.. 맞다 이사람 작가였지
명예통조림
23.10.07
ㅋㅋㅋㅋㅋㅋ아 글 끝날때까지 광대올리면서봤네 아조씨 심심하죠?
여름방학
23.10.07
세줄요약좀...
신이나
23.10.07
형님 조홍에게 통솔열매 6개 먹여서 꾸역꾸역 키워봐도 레기는 레기예요
철투구 씌워서 해적몸빵에 조금 쓸 수 있을 정도...
PTA0828
23.10.07
솔직히 방송켜서 하스스톤 딸깍딸깍 하고싶은데 참는중 ㅇㅈ?
가지무침전문점
23.10.07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력 왤케 조은건데 말리부 타는 것을 말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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