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이번 디스전에서 제일 화나는 건
pH-1이 졸지에 욕받이가 되었단 겁니다.
인스타부터 유튜브 댓글창까지 아주 가관이더군요
가사도 안 읽고 디스했다는 사실 하나로 길길이 날뛰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막말로 인신공격을 하거나 쌍욕을 한 것도 아니고 굉장히 젠틀하게 손을 내밀었는데 무슨 대역죄인처럼 되었네요.
생각없는 댓글들에서 그러게 왜 디스를 하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요,
pH-1은 왜 자기들 욕하냐고 징징거린 적도 없고 아니꼽다고 욕박은 적도 없습니다.
가사를 보면 오히려 너네 화제성으로 우리보다 앞선 거 맞고 실력도 몇몇 래퍼들보다 잘한다고 해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게 우리 힙합씬의 고충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실제로 맞죠. 국힙이 최근 화제성 면에서도 떨어지기도 했고, 맨스티어가 랩을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맨스티어가 잘 되는 게 배 아파서? 아니면 남들 말대로 긁혀서?
그런 이유로 디스를 한 게 아닙니다.
그가 디스를 시작한 계기는 도입부에 명확히 나옵니다.
“전부 쿨한 척하네
내가 될게 예쁜 찐따가
그래 필요했어 씬에 긴장감
더는 못보겠네 토쏠리는 댓글창
이번만은 성숙한 대화를 해보자고”
[더는 못 보겠네 토쏠리는 댓글창]
이 라인이 저는 가장 중요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큐엠님의 개미 앨범이 나왔을 때, 한 가사 채널에서 개미에 수록된 곡인 ‘입에총’으로 영상을 만든 걸 봤습니다.
꽤나 메이저한 채널이었고 그만큼 힙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채널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댓글을 봤습니다.
“같은 총이라도 급이다르구나.. AK47 압승 끝.”
저는 앨범을 이미 한 번 다 돌리고 난 후에 사람들의 호평을 기대하며 그 영상 댓글창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 저런 댓글이라뇨.
곡을 들어보면 큐엠님과 지코님의 유려한 랩 스킬은 물론이거니와 곡 구성도 굉장히 공을 들인 게 금방 티가 납니다. 가사 역시 가사 잘 쓰는 두 래퍼들이 고심해서 쓴 가사임이 보입니다.
다시말해 일반인이 들어도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의 퀄리티 차이를 보였다곤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 곡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다 들어봤다면 알 겁니다.
저 곡은 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총은 그저 비유입니다.
물론 취향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저런 댓글을 받을 만한 곡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영상을 본 게 아마 업로드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런 댓글 뿐만 아니라 맨스티어 얘기를 하며 국힙이 패배했느니, 너무 올드하다느니 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올린 지 꽤 시간이 지나 저런 댓글 몇몇은 사라졌거나 좋아요 후순위로 밀린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저때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거 몇 년을 준비한 앨범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욕하는 마약 얘기, 돈 자랑 얘기와는 거리가 먼 큐엠님인데도 그 몇 년 간의 결과물을 듣지도 않고 까대기만 하니 일개 리스너 입장에서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데 자기 얘기로 손수 처음부터 계획한 제작자 입장에선 어떨까요.
pH-1도 이런 이유로 디스를 한 걸로 보입니다.
올라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영상, 본 채널이 아닌 가사 영상인데도 저런 글이 후두둑 달리는 걸 보면 다른 래퍼들의 작업물에는 또 얼마나 많은 조롱들이 오갔을까요.
자기가 고심해서 만든 작업물에 칭찬이나 피드백이 아닌 저런 비아냥이, 그것도 단발적이지 않고 여러 차례 달리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pH-1은 지난 식케이-스윙스 디스전 때도 used to be 란 곡을 통해서 맨스티어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Why getting mad at comedians?
밥그릇 뺏길까봐 그게 고민임?
그냥 더 멋지게 하면 돼 turn the haters to our fans
말을 해 키보드 대신 마이크에"
이때까진 우리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마인드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큐엠님처럼 이미 열심히 하는 이들도 조롱받는 판국을 보고 생각이 달라진 듯합니다.
이런 감정은 다음 가사에서도 드러납니다.
"숫자로 대변 안되는 so many quality albums
우린 계속 다해 최선 하지만 매번
상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해
랩 지망생, 이 기분 잘 알겠네"
많은 업계 종사자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겠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유튜브, 인스타 댓글창만 봐도 저렇게 비난이 쏟아질 게 뻔히 보이는데.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가 총대를 매고 예쁜 찐따가 되기로 합니다.
그가 말하는 존중을 욕을 하지 말라, 힙합은 성역이다 이런 식의 존중이 아닙니다.
이렇게 죄없이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 달라는 의미로 문화에 대한 존중을 지켜달라고 말했습니다.
힙합 팬들이 보기에도 맨스티어의 힙합에 대한 이해도는 높습니다.
이렇게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니 씬의 긍정적인 모습도 잘 알 거라 생각하고 쓴 가사겠지요.
이렇듯 그의 디스곡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입장을 신사적으로 표명한, 언젠가는 나왔어야 하는 디스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단순히 힙합은 성스러운 건데 왜 풍자하냐, 우리 파이를 뺏어가지 말아라 이런 이유로 디스를 한 게 아니었니까요.
군대 관련된 논란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욕하는 다른 래퍼들처럼 의도적으로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이민을 간 게 아닙니다.
그는 미국에서 살기 위해 이민을 갔고 힙합씬에 데뷔도 미국에서 활동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박재범이 그를 발굴했고 그가 불러서 한국으로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군대를 빼기 위한 유승준이나 다른 여타 병역기피자들과는 다르다는 말이죠.
군대도 안 간 놈이 무슨 조준 타령이냐 하는 건 솔직히 같잖습니다.
방장이 "울지 마세요. 울면 죽여버립니다"라고 했을 때, 죽이지도 못하는 놈이 죽이긴 뭘 죽이냐고 태클거는 거랑 같은 겁니다. 그냥 한심한거에요.
그럼 맨스티어를 욕해라?
제가 보기엔 그것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코미디언은 코미디언의 문법대로 힙합 씬의 병폐를 풍자하여 웃음을 자아냄으로써 코미디언의 본분을 다했고
래퍼는 래퍼의 문법대로 디스를 통해 과격해지는 현 세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래퍼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맨스티어가 맞디스를 한 것도 저는 힙합에 대해 존중을 표현한 거라고 봅니다.
누가 뭐래도 힙합의 가장 주된 정신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니까요.
맞디스곡의 가사에 대해선 인신공격 뿐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 할 일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누가 반성해야 하느냐
바로 생각없이 그저 돌 던지고 싶어서 악플달고 조롱하는 이들과
맨스티어의 풍자 대상이 된 어설픈 래퍼들입니다.
얼마 전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힙합 클럽의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태그된 인물의 계정으로 넘어가 보니 스스로 래퍼라고 하시는 분이시더라구요.
팔로워도 많지 않았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분이었는데 솔직히 작업물의 수준이 너무 낮고 언행도 많이 가벼워 보이셨습니다.
그분 곡들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딱 사람들이 생각한 래퍼 편견대로 가사를 쓰고 랩하고 있어서요.
힙합 팬인 저도 이런 분들은 거부감이 드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맨스티어가 풍자를 통해 비웃고자 하는 대상도 이런 부류의 분들이라고 봅니다.
허나 이런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이게 아마 현재 국힙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이미지를 실추시켰으니 반성하고 더 성숙하게 행동해 문화 발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힙합이라고 무조건 그 사람 유튜브 가서 비난, 조롱 댓글 다시는 분들도 단순 스트레스 해소용 비난은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맹독성 과금으로 비난받는 게임 회사를 향해 돌을 던질 때, 게임이란 카테고리로 묶여있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눈 먼 돌이 닿지 않게 해달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에 글을 쓴다고 해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지 않을 거란 걸 압니다.
그렇지만 pH-1님 인스타와 유튜브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주 작가님 마녀사냥 때나 하이브 음모론 때 같은 집단 광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게 너무나 통탄스러워서, 적어도 여기 있는 분들만이라도 죄 없는 이에 대한 비난이라는 걸 알으셨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두서없이 푸념같은 장문의 글 남깁니다.
읽어주셨다면 정말 고개숙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