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노래를 하는 악마, 쳇 베이커
재즈계의 제임스 딘, 청춘의 트럼페터
쳇 베이커는 오클라호마 주 예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실패한 음악가로,
자신의 분노를 가족들에게 풀고 다니는 막장 아빠였고
이는 여리여리했던 쳇에게 큰 고통이었다.
이렇듯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쳇 베이커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트롬본을 선물 받았으나
자신의 체구에 맞지 않아 트럼펫으로 악기를 변경하게 된다.
쳇은 음악 자체는 좋아하긴 했지만 이론이나 악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는데
재능의 정도가 귀로 듣고 음을 따서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사춘기가 온 쳇은 잘하던 공부를 때려치고
알바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휘발유를 띵까먹거나 아빠차로 분노의 질주를 찍는 둥
온갖 사고를 치며 자신의 노란 싹쑤를 뽐내고 댕겼다.
<쳇은 워낙 잘생겨서 한 때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집구석을 상당히 맘에 들지 않아했던 쳇은 도피하기 위해
군입대를 결심했다. 그렇게 군대에 들어간 쳇은
연주 실력을 인정 받으며 이제 정신 좀 차리나 싶었으나
맹장염에 걸려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다.
제대 이후 쳇은 쿨-재즈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는데
이 때문인지 학업까지 때려 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쳇은 마약에 손을 댔으며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백분 활용하여 신나는 성생활을
즐기고 댕겼다. 이러한 쳇의 무절제함은 결국 재징집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근데 쳇은 도저히 군생활을 할
정신머리가 아니였고 천운?으로 다시 의가사 제대를 했다.
이후 비밥 재즈의 전설 '찰리 파커'와 같이 연주하기도 하며
조명을 받기 시작한 쳇은 제리 멀리건의 쿼텟(4중주)에
들어가게 된다. 웨스트 코스트의 애송이는 이때부터
재즈계에 신선함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위 곡 마이 퍼니발렌타인은
제리 멀리건 쿼텟 시기에 애용되었고
이후에도 쳇의 트레이드 마크로 불리우는 곡이다.
나중에 쳇이 가진 절절한 목소리가 추가된 버전이 유명하다.
쳇 베이커의 싱잉 버전을 원조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마이 퍼니 발렌타인 자체가 워낙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이다. 쳇을 영입했던 제리 멀리건은
역사적인 재즈음반 '쿨의 탄생'을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작업할 정도로 실력 하나는 일품이지만 쳇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약쟁이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쳇의 본거지인
LA에 온 이유도 약값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여기서 쳇을
만나고 같이 음악 작업을 하게 된다. 둘은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며 인기 몰이를 했으나 워낙 심각한 약쟁이들이어서
경찰한테는 요주의 범죄자 듀오 취급을 받았다.
쳇은 쿼텟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으며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게리 멀리건이
쳇의 높은 인기를 짜증나했었는데 음악을 생각하면
절대 버릴 수 없는 카드였기에 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쳇과 게리 멀리건은 사건 이후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경찰이 요주의 인물로 여긴 이들은 결국 꼬리가
잡히게 된다. 경찰이 연주하는 동안 자택을 급습해
거기서 대량의 마약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쿼텟의 리더격인 멀리건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쓰고
마약 혐의로 깜빵에 들어갔다. 반면에 쳇은 살아남아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쿼텟 시절 얻었던 자신의 인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며 성공을 거둔다. 쳇은 이 때 리더로 활동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자신의 보컬이 들어간 앨범 'Chet Baker sings'
을 발매하며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게 된다.
그러나 흑인 주류의 재즈 음악계에서는
'젖비린내나는 애송이가 계집애같은 재즈를 한다' 고
혹평을 내놓았으며 마일스 데이비스와 비교하면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혀를 찼다. 평단의 이러한
가혹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쳇을 향한 대중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특히 여자들이 쳇의 미모와 감성에 반해
죽어라 찬양하였는데 그 인기는 재즈황제 마일스 데이비스를 누르고
트럼펫 1등을 잠깐 먹기도 할 정도였다.
자신이 가진 무기를 살려 성공을 이어나갈 일만 남은 쳇.
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약쟁이였고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주변 인간들도 약쟁이에 사기꾼들만 넘쳐났다.
그렇게 쳇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Chet Baker - Time After Time
'Chet Baker sings'의 수록곡.
쳇의 보컬은 상당히 팝적이다. 그리고 쳇은
팝의 낙천적인 부분과 대비되는 슬픈 면을 재즈에
훌륭하게 녹여내었다. 허나 그 당시에는
남성 재즈 보컬하면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이 중후한
보컬이 대세였던 시절이었기에 쳇의 가녀리고도
애절한 보컬은 일종의 반항으로 다루어졌다. 쳇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특징을 살려 노래한 것 뿐이지만
당시 재즈계에서는 그런 시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순수재즈주의자들, 재즈의 예술성을 지향하던
평론가들은 상업적인 노래를 하던 쳇에 대해 거센 비난을 하였는데
아직 비밥의 기운이 짙게 남아있던 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한다.
오늘날에도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냥 그가 백인이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Chet Baker - I fall in love too easily
한편 쳇의 보컬은 그렇다치고 연주가 짜증난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쳇 특유의 우아한
프레이징(음악의 흐름이 의미와 내용을 갖도록 구분하는 것)
을 거슬려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의 없다시피한
비브라토(음 떨림)와 마치 뮤트(악기 소리 줄이는 장치)
를 단 것처럼 읆조리는 듯한 사운드를 질색하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쿨 재즈 했으니 똑같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데 대충 비유를 하자면 마일스는
스위트 아메리카노 커피고 쳇은 맥심모카골드같은
느낌이다. 한 마디로 확실한 느낌의 차이가 있긴 하다.
생각해보면 맥심모카가 아무래도 더 대중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쳇의 단점으로
지적 받았던 것들은 장점이 되어 인기 몰이를 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연주의 특징들은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받으며
쳇의 음악이 왜 좋은지에 대한 이유가 되었다.
영화배우까지 할 정도로 인기절정이였던 쳇.
그는 제정신으로 세상을 살았던 날이 별로 없다.
당연히 약약약 약 때문이다. 아마 그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보다 약을 더 사랑했으리라.
그러니 주변에는 정상인이 없고 정신병 걸린
약쟁이들만 득실거렸고 쳇 본인이 그러하였다.
약쟁이 뮤지션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아니면 자기가
빌려서 약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서로 약을 위해
돈 떼먹기 싸움을 벌이는 개막장 짓거리까지 하였다.
쳇의 인기가 절정일 당시 진행한 유럽 투어가 약쟁이 맴버의
사망으로 개판을 치자, 그는 더욱 더 막장이 되었고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공연을 하는게 아닌
약을 구하기 위해 공연을 하였다. 약에 찌들은 그의
공연은 당연히 형편없었고 내는 앨범마다 혹평이 이어졌다.
약 때문에 회사돈을 횡령까지 할 정도로 병1신이였던 쳇.
결국 그는 마약 거래하다 딱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Chet Baker - But Not For Me
쳇 베이커는 우월한 외모를 바탕으로
여러 여성들과 상상 속에 존재하는 그 짓을
수백 수천번 하고 댕겼으며 이로 인해
아내들과 여러 번 이혼하는 막장의 길을 걸었다.
쳇의 마성에 빠진 여자들은 한둘이 아니었고
전부 다 고통 받았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권총들고
내연녀를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쳤을 정도.
일부 매체에서는 낭만적인 쳇의 음악 때문에
그의 인격적인 부분을 상당히 포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론 그냥 개1자식이다. 잘생긴 개1자식.
쳇의 간질간질한 사랑 노래 가사가 되려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에게 당했던 많은 여자들의
감정도 들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감옥을 나온 쳇은 도망치듯이 유럽으로 갔다.
도착한 유럽에선 약쟁이라는 낙인이 없어서 그런지
쳇을 상당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 시기에는 마약을 잠시 끊었는데 역시나
금단증상이 도져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하였다.
결국 '이런 시댕 약을 해야겠어!' 라고 생각한 쳇은
팔피움이라는 헤로인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 진통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은 금방 동이 났고
어둠의 경로로 약을 구하다가 꼬리가 잡혀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장에서 쳇은 싹싹 빌면서 눈물의 똥꼬쇼를
펼쳤는데 그 정성이 갸륵했는지 적은 형량이 내려졌다.
여기에 추가로 감형까지 받은 쳇은 유럽 온 김에 겸사겸사 바람피던
애인과 아예 살림을 차리고 이혼을 했다. 이때는 깜빵생활
때문에 강제로 약을 끊었던게 효과가 있었는지
나름 괜찮은 퀄의 노래를 선보였다. 허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 그놈의 약을 갈구하기 시작한 쳇은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돈을 벌고 다 약에 꼬라박았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당연히 발각되어
추방, 추방, 계속 추방을 당하였다.
어떤 곳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떠돌이 신세가 된 쳇.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잊혀진 지 오래.
그나마 기억하는 사람들도 '쓰레기같은 마약중독자'
라고 그를 비난하였다. 그래서 내는 앨범마다
별 반응이 없었으며 부진한 판매량에 실망한 회사는
쳇을 짤라버렸다. 자업자득의 결과였다.
Chet Baker - Alone Together
쳇은 흑인 재즈 그리고 거기에 속해있는 거장들에 대한
열등감이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같은 트럼페터인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와 같은 인물들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질투하였고 이는 나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 원동력보다 마약의 힘이 더 쎄긴 했지만.
전성기 시절, 대중들이 자신에게 주는 찬사도 좋긴 했으나
쳇이 정말로 원한건 재즈계의 인정이 아닐까 싶다.
후에 확실히 인정받았긴 했다. 그냥 단순히 잘했다는 인정이 아닌,
재즈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로 말이다. 보사노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주앙 질베르투'가 쳇의 노래는 보사노바의
창법을 완성 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언급한 바가
그 예가 되겠다. 그 외에도 쳇의 재즈 창법과 톤은
좋은 교본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미국의 냉랭한 반응에 질려 고향으로 돌아온 쳇
근데 그는 정신을 여전히 못 차렸다.
실망한 부모를 뒤로한 채 어떻게든 마약을 구하려고 별의별
개짓거리를 다했고 심지어 아내마저 약쟁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약에 관련된 죄목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렸는데 이 과정에서 밀고를 해서 자신은
풀려나도록하는 미1친짓을 반복했다.
결국 이러한 행동의 대가로 쳇은 얻어 터진 채 발견되었다.
(자기는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신빙성 제로였지만)
쳇은 하도 쳐 맞아서 이빨이 아작 났는데
때문에 유일한 생계 수단 수단이던 트럼펫마저
못 부는 상황이 되었다. 잘 나가던 재즈 스타였던 쳇은
그렇게 빈곤층이 되었으며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과
잡일로 근근히 살게 된다. 헌데 쳇은 그렇게 벌은 돈마저
마약 사는데 쓰고 여전히 경찰서를 왔다갔다하는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와중에 쳇의 아빠는 사망하였고 아내와 엄마는
변하지 않는 쳇에 완전히 질려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였다
망가진 이빨로 수많은 트럼펫 연습을 했지만
쳇의 실력은 회복될 줄을 몰랐고 그는 이대로 끝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시 그에겐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
그렇다 또또또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희생양이 될 여자를.
Chet Baker - Blue Room
피자 레스토랑에서 만난 재즈 드러머 다이앤이란
여자를 꼬신 쳇은 불륜 사실을 눈치 챈
아내를 피해서 미국 동부로 향했다.
다이앤은 마약쟁이 쳇을 처음엔 두려워했으나
그가 가진 마성에 이끌려 사랑하게 되었고
나중엔 그에게 마약 조공까지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이앤은 당연하게도 쳇과 함께 동부에 도착하자 환승 당했다.
악마 새1기한테 제대로 걸렸던 것이다.
그의 동부 복귀는 디지 길레스피가 도와주었다>
미국 동부에서는 '돌아온 탕아'
쳇의 복귀를 내심 반겼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이빨이 망가져 실력이 온전하지 못했던
쳇이지만 '왕년의 스타' 라는 이미지 때문에 기대가 많았다.
정확히 말하지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를 구경하고 싶어서.
쳇은 마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맛탱이가 갔지만
닥치는대로 공연을 하였고 자신의 마성을 이용해
재즈 보컬을 꿈꾸던 '루스' 라는 여인을 꼬시게 된다.
쳇은 자신의 새로운 연인 루스와 함께 수많은 공연을
뛰면서 돈을 꽤 벌었으며 트럼펫 대신
본인 특유의 서정적인 목소리를 내세워서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기도 생기고 새로운 여자도 생기고...
이제는 안정된 삶을 꾸려가기만 하면 되는 쳇.
근데 마약은 도저히 끊을 수 없었나 보다.
쳇은 계속해서 마약을 투여하였고
사람들은 혀를 차며 범죄자 취급 하였다.
그리고 쳇은 또 다시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났다.
Chet Baker - Almost blue
유럽, 이탈리아로 간 쳇은 네임밸류 덕분에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헌데 여기에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마약을 할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금단증상으로 인해 지1랄병이 도진 쳇은 결국
자기 애인인 루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쓰레기 짓을 한다.
지칠대로 지친 루스는 쳇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쳇은 예전에 자기가 버렸던 다이앤에게 돌아갔다.
이 당시 쳇의 가족들은 완전한 방치 상태였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회사가 나서서
지원을 해 줄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쳇은 여러 나라에서
잘 대접해준 탓에 굶주리는 삶을 살진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구했는지 마약 또한 굶주리지 않아서
계속해서 약을 투여하였는데 마약에 취해서 하는 공연이
제대로 될 리는 없었다. 사람들의 평가는 당연히 좋지 못했고
약에 절어있는 쳇은 트러블을 꾸준히 일으키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조리 파탄내고 있었다.
같은 약쟁이 친구들은 이미 죽은지 오래.
마약에 쩌들은 쳇의 장기들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쳇 베이커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마치 낡고 녹이 슬어 버려지기 일보 직전인 트럼펫처럼..
네달란드 로테르담에서 공연이 잡혀있던 쳇
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리허설 때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 당일 새벽 3시 호텔 근처에서
실족사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타인이 침입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시신은 며칠 뒤 미국으로 보내졌다.
당시 쳇 베이커의 나이는 59세였다.
Chet Baker - Born to Be Blue
쳇의 죽음이 의도된 자살은 아니라는 추측이 많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에 연습할 때도 위 사진처럼 창문에
걸터앉아 노래했기 때문이다. 약에 절어있던
쳇이 연습하러 걸터앉았다가 깜빡 정신을 놓은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어찌 됐든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다. 쿨 재즈의 귀공자
쳇의 음악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난다.
쳇에 대한 평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당히 엇갈린다.
일단 쳇의 여리한 목소리가 호불호가 갈리는 가운데
그만의 분위기와 감성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는 호평과
연주력은 그닥인데 이미지, 마스크빨이라는 비판이 있다.
나는 개막장 인생사로 부풀려진 면이 있지만
그의 노래에 흐르는 감성 하나는 진퉁이라 생각한다.
쳇의 이러한 흉내 내기 힘든 감성을 두고 하루키는
'음악에서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평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한없이 차가운 냄새가 아닐까. 쳇 본인의
삶이 그러했고 음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무 악마적으로
차가워서 문제지만. 하늘에선 조금이라도 미안해 할 지 모르겠다.
정말 이 사람만큼 블루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재즈 아티스트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쳇이 가진
그 차갑고도 아름다운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재즈 듣고 싶은데 누구로 입문하면
좋을지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쳇 베이커를 뽑을 정도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트럼페터 쳇 베이커.
흑인 주도 재즈사에 이름 하나 제대로 박힌 그의 재능은
눈부시다. 음악에 미쳐서 그것만 바라보고 살았던
인물이기에 주변인들에게는 악마로 대중들에게는 천사로
불려왔다. 그 모든 행적이 까발려진 오늘날.
두 가지를 합쳐 천사의 노래를 하는 악마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없이 이 새파란
노래들은 계속해서 흐르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영화 본 투 비 블루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