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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뒤집다, 더 스미스 (The Smiths)

iㅅi
24.01.18
·
조회 787
New Wave Music from The Smiths — walkerpast

(왼쪽부터) 모리세이, 조니 마, 마이크 조이스, 앤디 루크

 

 

1982년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 맨체스터 시에서 결성되어 1987년 해체한 더 스미스

 

그들은 어떻게 5년이란 짧은 시간 내에 영국을 뒤집게 된 걸까?

 

 

1. 결성

 

1959년,

 

스티븐 패트릭 모리시, 모리세이는 맨체스터의 한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맨체스터의 도심 지역인 훌메의 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1963년에서 65년까지 일어난 무어 살인사건이 그가 거주하던 지역의 인근에서 일어난 바람에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었다)

 

유년기를 집 안에서 틀어박힌 채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 독서에 너무나 열중했는지 근시가 생겨버렸다) (이 때문에 종종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등학교에 입학하여 외톨이로 살아가던 그는 정규 교육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유년 시절을 집에서만 보낸 그였기에 노동자 문화에 스며들기엔 역부족이었고 이 때문에 외톨이였다)

r/morrissey - Morrissey in the 70's, before The Smiths and before the quiff.

1970년대의 모리세이 (장발)

 

1975년엔 학교를 자퇴,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치뤄 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모리세이는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특히 오스카 와일드를 우상으로 섬길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또한 음악, 특히 글렘 록과 팝 음악을 즐겨들었으며 

 

본인이 좋아했던 뉴욕 돌스의 경우엔 본인이 직접 영국 팬클럽을 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음악과 문학을 좋아하던 모리세이는 대학 졸업 이후엔 여러 직업을 거쳐가며 돈을 벌었으며, 이 돈들은 전부 밴드의 콘서트에 쓰였습니다

 

그러던 1977년, 모리세이는 기타리스트인 빌리 더피를 만나게 되는데

 

더피는 그에게 자신의 펑크 밴드의 보컬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모리세이가 이를 수락하며

 

모리세이의 음악인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밴드는 얼마 안 가 해체되고, 모리세이는 더피를 따라 또 다른 펑크 밴드에서 잠시 활동하게 되지만

 

오디션에서 탈락하며 밴드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그래도 이 짧은 음악인 생활이 아무 득이 없던 건 아닌데, 이 때 펑크 록커인 린더 스털링과 친분을 쌓았으며

 

그녀의 가사와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13

모리세이가 레코드 미러에 기고한 글

 

이렇게 음악인 생활이 허무하게 끝난 모리세이는 장래를 기자를 희망하며 음악 잡지에 각종 글을 기고하였고

 

음악 언론에 자주 편지를 쓴 덕에 레코드 미러에 고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지역 출판사에 여러 권의 단편을 쓰기도 하였으며, 1981년엔 뉴욕 돌스에 관한 소책자를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소책자는 3000부 가량 팔렸다)

 

방구석에서 지내며 글을 쓰던 모리세이

 

한편, 맨체스터엔 보컬을 찾아 떠도는 한 기타리스트가 있었으니 

 

Johnny Marr of the Smiths, C.1985 : r/OldSchoolCool

그의 이름은 조니 마틴 마 (훗날 조니 마로 개명)

 

어린 시절의 그는 음악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과거엔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열망에 가득찬 소년이었죠

 

실제로 지역 유명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입단 테스트까지 봤을 정도로 열정에 가득찬 그였으나

(그는 현재까지도 맨시티의 팬이다)

 

안타깝게도 이 테스트에서 탈락하게 되고, 이후 축구를 접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 마는

 

그곳에서 빌리 더피와 어울리며 기타 연주를 시작, 음악인이 되기 위해 여러 밴드를 거치며 경력을 쌓다가 프릭 파티란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문제는 밴드에 맞는 보컬이 없었고 결국 밴드는 해체되게 됩니다

 

이러한 실패를 경험한 마는 제대로 된 밴드를 위한 보컬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에 눈이 들어온 것이 바로 모리세이

 

마가 그의 글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둘은 1978년에 빌리 더피의 소개로 이미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긴 했지만 인사 한 번 나눠본 게 전부일 정도로

 

그렇다 할 친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에겐 그런 친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Morrissey Tells Johnny Marr to Stop Using His 'Name as Click-Bait'

조니 마와 모리세이

 

그렇게 무작정 모리세이의 집으로 쳐들어 간 조니 마

 

모리세이의 지인인 스티븐 폼프릿은 모리세이가 조니 마에게 아무 관심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 정도로

 

자신과 뜻이 맞는 소수와만 친분을 유지하던 모리세이였으나

 

둘은 대화를 통해 둘의 음악 취향에 상당히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둘 다 60년대 걸그룹, 로커빌리, 펑크에 관심이 많았다)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 마는 모리세이에게 전화하여 밴드를 결성하는 데 관심이 있는 지 확인 차 묻게 되고

 

모리세이가 이에 수긍하면서 둘의 동행 시작됩니다

 

며칠 후, 둘은 다락방에서 첫 번째 리허설을 가지게 되며 둘의 첫 합작이 시작되니

 

이 때 나온 대표곡으로는

 

Suffer Little Children

 

무어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곡, 훗날 데뷔 앨범에 수록된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유가족들한테 고소를 당했으나 모리세이의 유년시절과 이 곡의 진짜 의미를 알고는 고소를 철회하였다

 


 

이후 1982년 말, 모리세이는 밴드 이름을 스미스로 정하게 됩니다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지었다고

(스미스란 성씨는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이다) (당대 유행하던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의 긴 이름에 대항한다는 이유도 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자신의 성씨인 모리세이만을 이름으로 썼으며, 자신을 스티븐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1982년에, 스미스는 첫 데모를 녹음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마의 친구였던 폴 울스텐크로프트의 도움이 컸기에 그를 영입하려 했으나 그가 합류를 거부하며 무산되었습니다

(훗날 더 폴의 드러머가 됨) (모리세이의 게이 같은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다고..) 

 

(참고로 모리세이는 범성애자이다, 이때 남자친구도 있었다)

 

 

데모였던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훗날 데뷔 앨범에 수록됨)

 

마와 모리세이는 빈 베이스와 드럼 자리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였고

 

베이스엔 마의 친구인 앤디 루크가, 드럼엔 오디션을 통해 마이크 조이스가 발탁됩니다

 

마침내 완성체가 된 스미스

 

 

2. 데뷔 

 

1982년 10월엔 맨체스터의 공연장에서 첫 공개 공연을 하던 스미스는

 

두 번째 데모를 녹음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여러 레이블에 녹음 테이프를 전달하는데

 

그중엔 맨체스터를 문화의 도시로 바꿔가던 토니 윌슨의 팩토리 레코드가 있었습니다

 

The Art & Design of Factory Records | by Craig Berry | Medium

 

당시 맨체스터의 음악인들에게 관심이 많던 팩토리 레코드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밴드와의 계약은 불발됐습니다

 

이 불발 건에 의한 서로의 증언을 살펴보자면

 

밴드 측에 의하면

 

조니 마의 기타 연주를 무시헀고, 밴드의 노래를 버즈의 노래와 계속해서 엮으며 비웃었다고 하며

 

밴드의 미학을 자신들의 미학으로 동화시킬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이블 측에 의하면

 

당시 레이블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스미스가 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랐다고 하며 (뉴 오더의 흥행 전)

 

스미스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자신들이 들었던 데모가 최악이여서 더 괜찮은 데모를 가져왔으면 계약을 맺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밴드와 레이블 간의 협상이 그리 좋지 못하게 끝냈다는 것을 얼추 알 수 있습니다

 

(이후 토니 윌슨은 스미스가 해체하기 직전까지도 스미스를 까게 됩니다)

 

Rough Trade | Independent Record Store | Vinyl, CDs, Books +

 

팩토리와 계약이 불발된 후, 밴드는 또 다른 인디 레이블인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 레이블에 첫 번째 데뷔 싱글을 내니

 

 

Hand In Glove (훗날 데뷔 앨범에 수록됨)

 

(싱글 표지를 여기에 올리기엔 좀;;)

 

상당히 파격적인 표지로 화제를 부른 싱글로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꽤 잘 팔렸으며

 

이후 공연 중에 BBC 라디오 1의 쇼 프로듀서였던 존 월터스의 눈에 띄어 라디오에 출연하였고

 

이 출연 덕에 여러 음악 잡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둔 밴드는 연달아 “This Charming Man”“What Difference Does It Make?”를 싱글로 발매하였으며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던 전작과 달리 각각 25위, 12위에 오르며 흥행에도 성공 

 

특히 이 시기에 스미스는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바로 탑 오브 더 팝스 라이브 덕분이였습니다

 

반쯤 셔츠를 벗고 마이크 대신 글라디올러스 꽃다발을 들고 휘두르던 화려한 모습의 모리세이와 

 

고전적인 기타 팝에 대한 밴드의 현대적인 접근은 대중들에게 큰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식 방송에서 본인들의 색을 뚜렷하게 선사하던 스미스는 기세를 몰아 데뷔 앨범을 발매하게 됩니다

 

Ficheiro:The Smiths album.jpg – Wikipédia, a enciclopédia livre

1집 <The Smiths> (1984)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

 

프로듀서: 존 포터

 

섬세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앨범

 

총 10곡, 재생 시간 42분 55초 (영국/오리지널)

총 11곡, 재생 시간 45분 36초 (미국/카세트)
 

대표곡으로는

 

 

This Charming Man

 

원본에는 수록되지 않았고 미국 및 카세트 버전에 수록되었다

 

스미스의 쟁글 팝을 대표하는 명곡

 

 

Still Ill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발매 후 영국 차트 2위에 오르며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1980년대 최고의 앨범이라는 극찬을 들으며 비평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같은 해에는 세 개의 곡을 발매하고 데뷔 앨범과 이 세 개의 싱글 및 B면을 묶어 컴필레이션 앨범을 출시하니

 

<Hatful Of Hollow> (1984)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

 

프로듀서: 존 포터, 스미스, 로저 푸시, 데일 그리핀

 

정규 앨범 못지않은 중요도를 보여주는 앨범

 

총 16곡, 재생 시간 56분 11초

 

대표곡으로는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How Soon Is Now? (본래 6분입니다)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컴필레이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정규 앨범에는 수록되지 못한 밴드의 대표곡들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어서

 

사실상 정규 앨범 정도로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3. 2집과 3집의 전성기

 

두 개의 앨범과 여러 싱글로 음악계에 완전히 정착한 스미스

 

인기는 나날이 늘어갔고 그 덕에 여러 라이브를 하였는데

 

스미스의 라이브엔 한 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팬들의 난입이였습니다

 

 

난입의 대표적 예

 

밴드가 지향했던 모습인 터라 팬들이 공연을 망치더라도 그냥 넘겼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대에 난입하였으며 주로 모리세이와 포옹을 즐기거나 기습 키스를 날렸습니다

 

이렇게 헌신적인 팬들이 늘던 스미스는 2집을 내게 되니

 

Meat Is Murder - Wikipedia

2집 <Meat Is Murder> (1985)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

 

프로듀서: 스미스

 

모리세이의 개인적인 사상을 표출하는 앨범

 

총 9곡, 재생 시간 39분 46초

 

대표곡으로는

 

 

Barbarism Begins at Home

 

 

The Headmaster Ritual

 

 

Well I Wonder

 


 

공화주의, 반 체벌, 채식주의 등과 같은 더욱더 격렬하고 정치적인 주제로 가득한 앨범으로

 

로커빌리 리프나 베이스 솔로가 추가되는 등 음악적으로 더욱 풍부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제목의 경우, 밴드의 앤디 루크를 제외한 나머지 셋이 비건계 채식주의자입니다)

 

흥행 면에서는 영국 차트 1위에, 여러 유럽 차트 순위권 + 빌보드 110위로 국제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이 앨범 이후 모리세이는 인터뷰에서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밝혀댔는데

 

이 때문에 꽤 많은 논란을 양산하기도 하였습니다

 

 

1985년, 기나긴 유럽 투어를 마친 스미스

 

이후 3집 작업에 착수하여, 11월달 쯤에 완성엔 성공하게 되지만

 

문제는 이 시기에 소속 레이블이였던 러프 트레이드와 분쟁을 겪게 되면서 앨범 발매가 미뤄지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앤디 루크가 헤로인 사용으로 인해 잠시 해고되기도 하였습니다 (몇 주 뒤 복귀)

 

이러한 사건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마침내 1986년 6월에 3집이 발매되게 됩니다

 

The Queen Is Dead - Wikipedia

3집 <The Queen Is Dead> (1986)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

 

프로듀서: 모리세이, 조니 마

 

더 스미스 최고의 명반

 

총 10곡, 재생 시간 36분 48초

 

대표곡으로는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I Know It's Over

 

 

Bigmouth Strikes Again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더 스미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앨범으로

 

매력적인 멜로디와 깊이 있는 가사들로 극찬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반으로 기억됩니다

 

다만 흥행 면에서는 전작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주며 예상 외로 부진하였습니다

 

(참고로 제목이 진짜 죽어버리란 소리는 절대 아니고 불평등한 군주제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앨범 커버의 남성은 알랭 들롱으로, 호모포비아라서 박제해버렸습니다)

 

이렇게 전성기를 보내던 스미스

 

갈등을 빚었던 러프 트레이드와도 계약을 종료하고 EMI와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던 밴드는 점차 분열되기 시작됩니다

 

 

4. 분열 그리고 끝

 

당시 스미스는 절정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국에서 몰라볼 이는 더 이상 없었죠

 

하지만 이것은 조니 마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Johnny Marr: 'The conversation about re-forming the Smiths came out of the  blue' | Johnny Marr | The Guardian

조니 마와 앤지 마

 

한편 이 시기에 조니 마는 여자친구였던 앤지 마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밴드 활동에 소홀해지자 모리세이는 이에 대해 따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점차 둘의 우정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모리세이는 마가 다른 음악가와 협업하는 것을 막았고 새로운 장르 (흑인 음악)를 시도하는 행위 또한 막았는데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싶던 조니 마의 불만은 점차 커져갔고 

 

막대한 인기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를 힘들게 하였죠

 

결국 마는 밴드의 투어에 불참하게 되는데

 

진짜 문제는 바로 모리세이가 마를 대체할 기타리스트를 찾아 투어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둘 간의 우정이 완전히 깨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는 이제 스미스가 끝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결국 스미스를 탈퇴하게 됩니다

 

마의 탈퇴 소식을 들은 모리세이는 저번처럼 그를 대체할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여 이 위기를 해결하려 보았지만

 

조니 마를 대체할 사람은 조니 마, 본인말곤 없었죠

 

결국 모리세이 또한 자신들의 끝이 도래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4집을 발매하게 됩니다

 

Strangeways, Here We Come - Wikipedia

4집 <Strangeways, Here We Come> (1987)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 레코드

 

프로듀서: 조니 마, 모리세이, 스테판 스트릿

 

스미스 최후의 앨범

 

총 10곡, 재생 시간 36분 15초

 

대표곡으로는

 

 

Girlfriend In A Coma

 

 

A Rush And A Push And The Land Is Ours

 

 

Stop Me If You Think You've Heard This One Before

 


 

비록 끝이 좋지는 못했지만 앨범 자체는 스미스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풍부한 명반입니다

 

모리세이와 조니 마, 마이크 조이스 또한 이 앨범을 최고로 뽑았을 정도

 

영국 차트 2위에, 빌보드 200에선 55위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

 

이후 스미스는 5년이란 짧지만 강렬했던 활동을 끝으로 해체되게 됩니다

 

 

5. 그 후..

 

밴드 해체 후, 1995년 밴드의 저작권에 대한 법적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분쟁을 통해 모리세이와 마는 각각 40%를 가졌으며, 조이스와 루크는 각각 10%를 가져가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소송은 1997년까지 이어졌는데 마에게만 큰 배신감을 느꼈던 모리세이가 남은 둘에게도 분노를 느꼈고

 

이것이 스미스의 재결합이 성사되지 않은 하나의 이유로 거론됩니다

 

이렇게 스미스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습니다

 

멤버들의 근황, 그 중에서 모리세이와 조니 마의 근황을 알아보자면

 

모리세이는 솔로로 데뷔 후,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의 솔로 대표곡

 

스미스 때의 기행과 독설을 현재도 똑같이 담습 중이기에, 이로 인해 현재진행형으로 논란이 양산 중이지만

 

그의 앨범은 현재도 잘 팔리고 있으며, 왠지는 모르지만 히스패닉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조니 마의 경우엔, 본인이 하고 싶었던 새로운 장르에 뛰어들었는데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밴드에 본인이 직접 멤버로 들어가서 활동하는 등

 

자신이 흥미를 가진 온갖 장르에 도전 중이며 솔로 앨범도 내고 영화 음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앤디 루크와 재회하여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앤디 루크는 2023년 5월 19일, 향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로써 완전체 스미스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6. 글을 마치며

 

아티스트 열전 3편으로

 

자신들만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현란한 연주, 문학적인 가사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더 스미스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5년이란 짧은 기간이 무색하게 영국 대중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에도 회자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90년대 브릿팝,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등등 에게 영향을 끼쳤다)

 

제가 좋아하는 밴드인 이유도 있지만 모리세이의 삶을 안 다룰 수가 없어서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 예고

Valentine's Day Wallpapers - Top Free Valentine's Day Backgrounds ...
댓글
험상궂은침놈
24.01.18
3집 앨범 예전에 많이 들었는데 덕분에 생각나서 오랜만에 들으러 갑니다
iㅅi 글쓴이
24.01.18
저도 3집이 최애입니다!
임진모
24.01.18
잘 읽었습니다.
스미스의 음악은 잔잔한 충격이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
다음 편은 (피로 쓰여진) 발렌타인 데이일까요? :)
iㅅi 글쓴이
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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