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음울한 펑크의 상징,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
(왼쪽부터) 피터 훅, 이안 커티스, 스티븐 모리스, 버나드 섬너
1977년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 샐퍼드에서 결성되어 1980년에 해체된 조이 디비전.
그들은 어째서 어둡고 음울한 음악을 기초로 한 포스트 펑크의 상징인 된 것일까?
1. 결성
1956년,
이안 케빈 커티스는 스트렛퍼드의 노동가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독서를 좋아하던 커티스는 문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며
모든 초등학생이 치루는 시험인 11-Plus 시험을 통과하여 킹스 스쿨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냅니다
그런 그는 음악, 특히 짐 모리슨과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에 심취하였고 그들에게 큰 영향을 받으며
학업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학업을 포기, 음악과 예술, 문학 추구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물론 커티스도 먹고 살아야 했기에 맨체스터에서 공무원으로 지내게 됩니다
1975년엔 결혼을 하게 됩니다 , 당시 그의 나이는 19살, 데보라의 나이는 18살이었습니다

이안과 데보라
(1972년 처음 만나 3년간 사귀다가 결혼까지 골인)
안정된 삶은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던 부부였습니다
한편 당시의 영국은 상황이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이전부터 비효율적인 영국 경제가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제대로 침체되어 가고 있었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니 점차 이런 현실에 반항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런던에선 펑크 록이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부흥의 중심에 있는 밴드는 바로 섹스 피스톨즈
이들은 영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이 맨체스터의 자유무역관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커티스
어린 시절 친구인 버나드 섬너와 피터 훅, 테리 메이슨과 함께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됩니다

맨체스터에 위치한 자유무역관
한편 공연을 지켜보던 섬너와 훅은 섹스 피스톨즈에게서 큰 영감을 받게 되고
섬너와 훅은 맨슨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커티스는 밴드에 보컬로 고용되면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인 “Warszawa”를 참조한 이름인 Warsaw, 바르샤바가 결성됩니다
그렇게 바르샤바는 여러 곳에서 공연을 하며 1977년엔 데모 트랙을 녹음하게 되는데
당시 드러머였던 스티브 브라덜데일이 너무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자
셋은 차에 펑크가 난 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뒤 그를 버리고 튀면서 그를 해고시킵니다
그렇게 드러머가 비자 드러머를 구인하는 광고를 게재하고 이러한 광고에 응답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스티븐 모리스
그리고 이 시기에 런던에 위치한 밴드 Warsaw Pakt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밴드명을 Joy Division으로 바꾸게 되니
그것이 바로 조이 디비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다만 이 조이 디비전이란 이름이 1955년 소설 “Hosue of Dolls”의 나치 강제 수용소 위안부의 이름이였고
이 때문에 네오 나치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2. 데뷔와 팩토리 레코드
바르샤바 시절, 밴드는 RCA 레코드와 계약을 하였고
이후 1977년, 데뷔 앨범 녹음을 하였으나 RCA는 앨범에 대해 상당히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RCA의 후반부 작업에 큰 불만을 가진 밴드는 RCA와 작별을 고합니다
(이후 이 앨범은 1994년 출시됩니다)
RCA와 작별 후 여러 곳에서 활동하던 밴드는 어느날 맨체스터의 한 클럽에서 토니 윌슨의 눈에 띄게 됩니다

토니 윌슨
So It Goes라는 TV 음악 쇼를 통해 펑크 록을 영국 퍼트리던 그는
공업 도시인 맨체스터를 문화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조이 디비전
조이 디비전에 큰 관심을 가진 그는 밴드에 접근하여 그들을 도우기로 합니다
그렇게 토니의 스튜디오 지원으로 데뷔 EP를 녹음하니

조이 디비전의 데뷔 EP <An Ideal For Living> (1978)
레이블: 자체 발매
벤드의 초기 펑크 스타일을 담은 앨범
총 4곡, 재생 시간 12분 47
대표곡으로는
Warsaw
흥겹고 독특한 사운드가 특징인 곡
나치당의 총통 대리이자 돌격대, 친위대 대장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삶을 다루었으며
곡의 초반 가사인 "3 5 0 1 2 5 Go!" 또한 헤스가 영국에 체포되었을 때 그의 전쟁 포로 일련 번호를 의미한다
(곡이 나온 1978년에도 헤스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조이 디비전의 첫 EP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표지의 그림이 히틀러 유겐트였다는 점…
훗날 훅과 섬너는 당시에 파시즘에 정말로 흥미가 있었다고 말하였지만 이에 대해 모리스는
2차 세계 대전 중 희생당한 부모와 조부모의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상반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던 조이 디비전은 토니 윌슨의 TV 프로그램에도 나오게 됩니다
조이 디비전의 “Shadowplay”
이안 커티스의 바리톤 보컬과 춤(?), 그리고 나머지 셋의 기계적인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TV에도 출연한 밴드는 이후 토니 윌슨이 직접 세운 팩토리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덜리던 밴드에게 한 가지 큰 일이 발생하니
바로 커티스의 발작이었습니다
3. 1집
1978년 후반, 여느 때나 다름없이 펍에서 공연을 한 커티스는
갑작스레 심각한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이듬해 1월엔 의사에게 뇌전증을 진단받습니다
커티스의 심각한 뇌전증이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커티스는 향경련제를 복용하면서 음악에 더욱더 열중하게 됩니다
향경련제가 발작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다시 밴드로 돌아와서,
밴드는 나날이 유명해져 갔고 1979년엔 데뷔 앨범을 출시하게 됩니다
1집 <Unknown Pleasures> (1979)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
프로듀서: 마틴 하넷
포스트 펑크를 대표하는 명반
총 10곡, 재생 시간 39분 27초
대표곡으로는
Disorder
She's Lost Control
Shadowplay
밴드의 뛰어난 실력과 프로듀서인 마틴 하넷의 색다른 녹음 기술로 완성된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인 1집
비록 영국 차트 진입에 실패하였으나 1.5만장 가까지 팔리면서 흥행엔 성공하였으며
비평적으로는 극찬을 받았기에 나쁘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훅은 자신들이 핑크 플로이드처럼 들린다면서 하넷의 프로듀싱에 실망감을 보였으나
하넷의 실력이 좋았다는 것은 인정했을 정도로 밴드는 완성물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었습니다
이후 밴드는 BBC 2의 쇼인 Something Else에 출연합니다, 무려 전국 방영! (저번 출연은 잉글랜드 북부 한정)
BBC에서 선보인 밴드의 실력
특히 발작을 연상시키는 커티스의 기괴한 춤동작과 절규하는 듯한 보컬 밴드의 인지도를 급속도로 높였습니다
이곳에서 공개된 “Transmission”은 라이브 후 싱글로 발매됩니다
이후 1980년 1월엔 전 유럽을 순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조이 디비전은 영국에서만 인기있는 밴드가 아니였습니다
이듬해 3월엔 2집 녹음을 시작하는데…
4. 커티스
커티스의 뇌전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져 갔습니다
그의 발작은 거의 통제 불가해졌죠
거기에 더해 2집 녹음으로 인한 장시간 근무와 수면 부족, 음주와 흡연은 병세를 더욱 악화시켰고
(매주 평균 2회의 전신강직간대발작을 견뎌야 했다)
4월의 한 공연에선 설치된 조명에 의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약물은 그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과묵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음악가로써 성공한다는 야망과 빡빡한 투어 일정,

이안 커티스와 나탈리 커티스
딸을 낳은 뒤로 더욱 심해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티스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커티스는 우울증까지 겪게 됩니다
결국 커티스는 4월 6일, 항발작제를 복용하여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토니 윌슨은 커티스의 현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그를 자신의 별장에 초대합니다
그렇게 이 모든 고통이 조금은 진정될 줄 알았죠
이 시기 커티스는 데보라 대신 아닉이란 여자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아닉은 이에 대해서 불륜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둘의 만남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발각되었고
결국 커티스는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망가져버린 그는 의존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아내와 이혼할 수는 없었죠
한편 밴드에겐 희소식이 전해지니, 바로 북미투어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훅과 섬너, 모리스는 기뻐했습니다, 한 명만 빼고

1980년 5월 17일
이혼 절차를 중단하기 위해 커티스는 아내를 만나겠다며 남은 셋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곧장 부부의 집으로 향한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의사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혼자 집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죠
아닉과 데보라, 발작의 고통, 심각한 건강상태, 북미투어에 대한 두려움
커티스는 베르너 헤어조크의 1977년작 “Stroszek”를 보고 자신이 좋아했던 이기 팝의 “The Idiot”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1980년 5월 18일, 부엌에서 빨랫줄을 이용해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나이 23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 남겨진 것들
데보라가 그를 처음 발견한 이후, 부고 소식은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북미투어는 취소됩니다
커티스의 죽음은 당연하게도 밴드와 경영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토니 윌슨은 커티스의 자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과소평가한 자신들이 어리석었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그의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밴드의 1집을 역주행시켰습니다
한 가수의 죽음에 안타까워한 대중들이 그의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었죠
아직 커티스가 참여한 곡들은 꽤 있었습니다, 2집도 말이죠
그렇기에 밴드는 남겨진 것들을 출시하기로 합니다
싱글 <Love Will Tear Us Apart> (1980)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
프로듀서: 마틴 하넷
포스트 펑크를 넘어 1980년대를 상징하는 명곡
아름다운 멜로디와 그 속에 담겨진 커티스의 고통이 특징인 곡
처음 이 곡을 녹음했을 때, 멤버들은 가사가 조금 이상한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훗날 이 곡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못하고 커티스와 소통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 후회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커티스 사후 한 달 뒤 나온 곡으로 영국 싱글 차트 13위에 오르면서 흥행하였고
비평적으로도 크게 호평받았습니다
이후 밴드는 2집을 발매하게 됩니다
2집 <Closer> (1980)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
프로듀서: 마틴 하넷
밴드의 마지막 앨범이자 포스트 펑크 장르의 최정상에 위치한 명반
총 9곡, 재생 시간 44분 16초
대표곡으로는
Isolation
Twenty Four Hours
Decades
커티스 사후 두 달 뒤에 나온 2집
고딕 록이라는 장르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철저하게 어둡고 강렬한 곡들로 가득한 앨범으로
커티스의 당시 심정을 그대로 담아서 그런지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빛의 허무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으며
몇몇 곡들은 신디사이저가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이 특징입니다
출시 후, 온갖 극찬과 함께 영국 차트 6위에 오르며 대성공
이후 밴드는 싱글 “Atmospher”을 끝으로 남겨진 곡들을 모두 출시하게 됩니다
(바르샤바 시절 노래와 라이브 앨범은 훗날에 출시)
6. 새로운 시작
커티스의 죽음 이후, 침울해 하던 남은 멤버들은 기운도 차릴 겸 이전에 가려했던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뉴욕 클럽에서 그들은 신디사이저의 매력에 매료되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짐합니다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희망찬 노래를 하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밴드의 이름을 바꾸기로 하는데요
멤버 중 누구라도 밴드를 떠나게 된다면 밴드 이름을 바꾼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스티븐 모리스, 버나드 섬너, 피터 훅, 질리언 길버트
그렇게 그들은 밴드의 이름을 뉴 오더로 바꾸게 됩니다
(캄푸치아 인민들의 신 질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따왔다는데
문제는 이 신 질서 (New Order)가 나치가 추구한 정치적 계획의 이름을 의미하는 거였고
2차 네오 나치 논란이 터지기도 하였다…)
여하튼 새로운 멤버인 질리언 길버트와 함께 뉴 오더는 1980년대 신스팝 음악계를 주름잡으며
두 번의 재결합 이후 현재까지 활동 중인 전설적인 밴드가 되었습니다
(뉴 오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간 할 뉴 오더 편에서)
7. 글을 마치며
아티스트 열전 2편으로
포스트 펑크의 상징적인 밴드인 조이 디비전과 이안 커티스의 생애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23살이란 젊은 나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티스는 음악계에 강렬한 발자취를 남기며 현재까지도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2집 밖에 없는 밴드라 쉬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던 글이였네요;;
하루마다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3,4일 간격으로 꾸준하게 올려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