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수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Wham! - Last Christmas)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음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음악들을 흔히 캐럴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원래의 캐럴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찬양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인 것과는 달리 흔히 떠오르시는 현대의 캐럴은 그러한 기독교적 색채가 옅은 편입니다.)
여하튼 저는 크리스마스하면 1984년 처음 싱글로 나온 Wham!의 [Last Christmas]를 맨처음 떠올립니다.
흥겹고 중독적인 신스팝 사운드와 조지 마이클의 매력적인 가창력이 특징인 곡이면서,
영국 차트 1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실물 싱글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지닌 곡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유명한 곡이지만 정작 이 곡을 작곡하고 부른 조지 마이클과 Wham!에 대해선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Wham! (1981~1986)
조지 마이클과 앤드루 리즐리
그리스계 영국인이였던 게오르기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요그)와 이집트-이탈리아계 영국인이였던 앤드루 존 리즐리는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앤드루는 요그의 특이한 이름에 흥미를 가졌고, 선생님이 요그의 짝꿍을 구하자 손을 들며 나서면서 Wham!은 시작되었습니다.
내성적이였던 요그와 외향적이었던 앤드루는 이민자 혈통이라는 동질감 아래에서 이 둘은 금세 친해졌습니다.
또한 이 둘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음악가가 되겠다는 것이였습니다.
버스킹을 시작으로 DJ, 밴드까지 해본 둘은 이후 1981년 Wham!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렵다고 생각한 요그는 조지 마이클이란 영국식 이름으로 본인의 활동명을 정하게 됩니다.
1집 [Fantastic] (1983)
그들의 첫 시작은 신나는 팝 음악이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당시의 영국에서, 쾌락주의적인 두 젊은이의 댄스에 대중은 열광하였습니다.
영국 차트에선 1위를 하였고 싱글인 [Bad Boys]와 [Club Tropicana]는 각각 싱글 차트 2, 4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Wham!, 조지 마이클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2집 [Make It Big] (1984)
그렇게 나온 2집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영국 내에서만 유명했던 Wham!은 이 앨범으로 미국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Wham!의 명곡들은 대부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최전성기를 다루던 Wham!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만든 싱글이 바로 이 글의 주제라 부를 수 있는 [Last Christmas]입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곡이기에 출시 당시에도 영국 차트 2위를 찍을 정도로 흥행하였습니다.
(1위는 에티오피아 기근을 위해 모인 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입니다. 이 Band Aid에 조지가 참여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전성기를 다루던 Wham!은 하나의 기록을 세우게 되니 그것은 바로 서방 팝 그룹 최초의 중국 투어 기록이었습니다.
영미권을 넘어 세계적인 아이돌로 급부상한 Wham!과 중국의 개방정책이 맞물려 탄생한 결과물이였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보기엔 Wham!의 이미지가 깨끗해 보였기 때문도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그룹이 된 Wham!
하지만 조지와 앤드루는 자신들이 곧 끝날 것이란 걸 직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온 대다수의 노래들은 대부분 조지가 직접 작곡하고, 작사하고, 프로듀싱하고, 부른 곡입니다.
반면 앤드루는 얼굴만 비치는 게 전부일 정도로 둘 간의 불균형은 극심했습니다.
거기에 둘의 음악관 또한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Wham!처럼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를 하길 원했던 앤드루와 달리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를 하고 싶었던 조지.
결국 결성 5년만에 Wham!은 해체됩니다.
Wham!의 마지막 라이브
Wham! 해체 후 앤드루는 1990년 [Son of Albert]를 발매한 후엔 더 이상의 음악 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지는 달랐죠.
1987년 1집 [Faith]를 발매하며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였고, 수많은 차트를 휩쓸었습니다.
그야말로 조지 마이클의 최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성기의 끝이였습니다.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을 발매한 조지는 대뜸 자신의 음반사인 소니에게 소송을 걸게 됩니다.
자신을 노예처럼 취급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조지 측의 패소였습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의 기나긴 법정 싸움으로 인하여 그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으며, 출시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여러 앨범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후 1996년 3집 [Older]를 발매하며 다시금 일어서려 하였으나…
1998년, LA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잘생긴 경찰이 조지에게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였고 조지는 그 말을 따랐다.
결국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버린 조지는 화장실에서 체포되었고, 언론들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조지가 동성애자란 사실이 전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이후 1999년, 자신이 직접 커밍아웃을 하게 되죠.
한바탕 좋지 못한 사건이 지나가고, 조지는 다시 음악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물론 예전만큼의 인기는 다시 얻을 수 없었죠.
2000년대 초반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비난하여 이미지가 매우 좋지 못해졌습니다만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그에 대한 여론은 바뀌었죠.
예전만큼의 음악적 기량을 뽐내지 못하던 조지는 결국 2003년에 은퇴 선언을 하나, 2004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과거 소송까지 했던 소니와 다시금 재게약을 하게 됩니다.
소니와 재계약 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조지는 2012년엔 런던 올림픽 폐막식 공연에도 출현하여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다만 이 시기에, 그는 체중 관리 실패와 약물 중독으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나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조지
그러나 2016년, 12월 25일.
조니는 향년 53세의 나이로 크리스마스 날에 숨진 채 발견됩니다.
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사생활 문제로 좋지 못했던 이미지는 갑작스레 좋아지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익명을 조건으로 많은 선행을 했었단 것이 세상에 밝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2023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게 됩니다.
조지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엔 앤드루가 사회자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길어진 거 같네요.
조지 마이클의 Last Christmas은 앞에서도 말했듯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곡입니다.
하지만 곡을 알면서, 정작 이 곡을 부른 조지 마이클에 대해선 잘 모르시는 분이 많으신 거 같아 끄적여 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지 마이클을 기억하며.. (1963~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