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방송의 '페르시아'와 '이란' 국명에 관한 내용
오늘 원본박물관에서 영상을 봤는데요, 페르시아 국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곽민수 선생님께서 이란의 국명이 원래 ‘페르시아’였다가 20세기 들어서 국명을 ‘이란’으로 바꾸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1935년 파흘라비 왕조 측에서 외국 여러 나라들에게 자기 나라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을 했고, 사실상 그 이후로는 ‘이란’이라는 국명이 굳어졌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20세기를 기점으로 ‘페르시아’가 아닌 ‘이란’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죠.
이건 작년에 튀르키예에서 외국 여러 나라들에게 더이상 ‘터키’라는 국호 대신 ‘튀르키예’라는 표현을 써 달라는 요청을 했던 사실과 아주 유사합니다. ‘터키’나 ‘페르시아’ 모두 자국에서 부르던 명칭이 아니니까요. 어찌 보면 한국어 표현이 아닌 ‘코리아’가 한반도의 국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굳어진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란’이라는 명칭은 ‘파흘라비어(語)’라고 불리는 중세 페르시아어에서 이미 나타납니다. 보통은 당시에는 ‘에란’이라고 불렸다고 하고,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현재 남은 자료에 따르면 약 18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대략 ‘아리아인의 나라’ 정도가 되고요, 이전 아케메네스조나 파르티아조 등에서도 유사한 표현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란’이든 ‘에란’이든, 이 뜻을 지닌 단어가 국호로 사용된 건 3세기에 건국된 사산조 때부터입니다. 사산조 멸망 이후로는 이슬람 제국부터 몽골 제국, 티무르 제국 등 많은 외래 국가들의 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명칭이 한동안 국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분명 현재의 이란 일대는 ‘이란(ایران)'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통일 왕조 없이 오랜 이민족 지배 시기를 거치다 못해 동아시아에서 온 민족에게 지배를 받던 몽골 제국 시기만 해도 ‘이란 땅(ایران زمین)’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등장하거든요.
그러다가 16세기 등장한 사파비조 때 ‘이란’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지금은 사파비 왕조,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 파흘라비 왕조 등 왕조명으로 칭하기는 하지만 이 나라들은 전부 자신들을 ‘이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자기들은 계속 ‘이란'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외국에선 계속 ‘페르시아’라고 부르고 있으니, 자기네 식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그럼 ‘페르시아’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아케메네스조의 주요 수도는 페르세폴리스로 알려져 있는데요, 페르세폴리스가 있는 지역은 현재 ‘파르스 주'에 속하고, 당시 페르시아어로도 ‘페르세폴리스’를 ‘파르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케메네스조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명을 따서 그리스인들이 ‘페르세스’나 ‘페르시아’ 등으로 부르던 게 서구를 거쳐 전세계로 퍼졌던 것이죠.
그 흔적이 이란에도 남아있기는 합니다. 보통 이란의 공용어를 ‘페르시아어’라고 부르는 건 잘 알려져 있죠. 이걸 페르시아어로는 ‘파르스 말’이라는 뜻의 ‘자바네 파르시(زبان فارسی)’ 혹은 간단히 ‘파르시'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이란어’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이란어’라는 표현도 있기는 하나, 이건 페르시아어, 쿠르드어, 파슈토어, 발루치어 등 여러 언어를 다 묶어서 부르는 표현이거든요.)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