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무슬림 학자들의 고대 이집트 신성문자 찍먹기

10~11세기 이븐 와흐시야(ابن وحشية, 실제 저술 여부 불확실)의 《붓의 상징들을 깨치기를 소망하며 고대하는 자의 서(كتاب شوق المستهام في معرفة رموز الأقلام)》. 10세기 이라크의 농학자 이븐 와흐시야의 이름으로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이븐 와흐시야가 이집트를 방문한 정황이 불확실하다고 주장하며 후대에 그의 이름을 빌린 작가가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3세기 이라크 출신의 연금술사 아불까심 (알)이라끼(أبو القاسم العراقي)의 《일곱 지방의 서(كتاب الأقاليم السبعة)》(첨부된 사진은 18세기 필사본). 당시 고대 이집트를 연금술의 기원으로 여기는 학술적 전통에 따라 아메넴헤트 2세 비문(지금은 소실됨)을 포함한 고대 이집트 문헌을 필사해, 그 내용을 헤르메스주의적(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를 신비한 지식의 근원으로 여기는 종교·학술 전통)인 접근을 통해서 분석한다.
상기한 두 문헌은 해석의 정확도 측면에서는 오류가 많지만,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가 표음문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고 이해한 점에서는 특기할 만하다. 이에 관해서 이집트 출신의 런던 대학교 이집트학 교수 우카샤 (앗)달리(عكاشة الدالي, Okasha el-Daly)는 중세 무슬림 학자들의 고대 이집트 탐구가 이후 19세기 샹폴리옹으로 이어지는 연구 계보의 한 부분을 이룬다고 평가한다. 이 외에도 8세기 이슬람 학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جابر ابن حيان)과 9세기 이집트의 수피 성현 준눈 (알)미스리(ذو النون المصري) 등이 이집트 신성문자를 탐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을 보면 저희가 고대 이집트와 ‘단절됐다’고 여기기 쉬운 이후(특히 아랍화가 이루어진 뒤) 오늘날까지의 이집트와 그 주변 세계에서 고대 이집트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좀 더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언어와 종교가 바뀐 지는 한참 됐지만, 정체성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재발굴되고 재형성되기도 하는 법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