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젖은 머리를 말릴 힘도 없다.
퀴퀴한 방 안 공기, 창밖으로 보이는 옆 오피스텔의 불빛.
저 중에 나처럼 방금 좀비처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월요일부터 이게 맞는 건가.
아침 9시부터 김 부장이 던져준 기획안을 붙들고 점심도 거르며 일했다.
거의 완성해서 6시 퇴근을 꿈꾸던 내게, 그는 지나가듯 말했다. "
아, 미안. 이거 디렉션이 완전 틀렸네. 처음부터 다시 하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욕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할 수 있는 건 "…네, 알겠습니다" 뿐.
그 한마디에 내 저녁과 다섯 시간이 날아갔다.
박 팀장은 옆에서 못 본 척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그 비겁한 침묵이 더 역겨웠다.
이게 회사고, 이게 사회생활이라고? 그냥 거대한 가스라이팅의 현장이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월급은 어차피 카드값과 월세, 관리비로 다 빠져나갈 돈.
이렇게 내 영혼을 갈아 넣으며 버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한 달을 버티는 것뿐이다.
친구는 작년에 영끌해서 산 아파트가 두 배가 올랐다고,
누구는 코인으로 퇴사했다고 하는데
나는 뭔가. 주식 앱을 켜면 파란색 숫자들만 날 비웃고 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버튼을 잘못 누른 걸까.
아니, 애초에 내게 주어진 버튼이 있기는 했던 걸까.
엄마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선 볼래? 판사래.’ 서른다섯 먹은 딸을 어떻게든 치우고 싶어 안달이다.
엄마, 지금 내 몰골을 봐.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왔고,
스트레스성 탈모 때문에 정수리가 휑하다.
이 얼굴로 판사를 만나면 그 사람이 날 고소할 거다.
누군가를 만나 감정을 소모할 에너지 따위는 진작에 방전됐다.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 알람 소리에 맞춰
기계처럼 일어나 화장을 하고, 지옥철에 몸을 싣고,
부장님 책상에 수정된 기획안을 올려놓겠지.
이게 내 현실이다.
자기 전, 잊지 말고 신경안정제 한 알. 내일의 나를 위해. 취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