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텅 빈 집안의 서늘한 공기가 지친 몸을 감싼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따고, 배달 앱을 뒤적이다 이내 포기했다. 입맛도,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대로 소파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밤.

오늘 낮에 김 부장님이 또 한소리를 했다. "이 대리, 이거 말고 다른 시안도 생각해봐야지. 센스가 없어, 센스가." 입사 8년 차, 이제 저런 말에 크게 상처받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센스'라는 게 노력만으로 길러지는 것이던가. 밤새 고민해 만든 결과물에 대한 허탈함보다,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더 힘들었다.

잠깐 숨 돌리려고 켠 인스타그램에는 온통 행복한 소식뿐이다. 대학 동기였던 수정이는 결혼 2주년이라며 남편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간 사진을 올렸다. 얼마 전 청첩장을 건넸던 후배는 몰디브에서 찍은 신혼여행 사진을 자랑하고 있었다.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 한편이 복잡미묘하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과, 나만 홀로 다른 시간대에 멈춰있는 것 같은 조바심이 뒤섞인다.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1통이 눈에 띈다. 다시 걸면 분명 "밥은 먹었니?"로 시작해 "만나는 사람은 없고?"로 끝날 레퍼토리가 뻔하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인 걸 알면서도, 그 질문이 주는 무게가 버거울 때가 있다. "혼자가 편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가끔은 이 넓은 소파 옆자리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에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소개팅 앱을 열어볼까 하다가도 이내 화면을 꺼버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내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알아가고,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할 에너지가 이제는 없다. 스무 살의 연애는 낭만이었고, 서른의 연애는 현실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는다. 조건과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아파트의 불빛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수많은 불빛 아래에는 또 어떤 삶들이 있을까. 나처럼 웃고, 울고, 버티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겠지.

맥주 캔이 다 비었다. 차가운 알코올 기운에 아주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넷플릭스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나 볼까. 주인공은 나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삶을 살고 있겠지만, 잠시라도 내 현실을 잊게 해줄 테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내일 아침이면 또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걸. 이 지긋지긋한 현실도 결국 나의 것이다. 도망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했다, 나 자신아.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만 더 웃을 일이 있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