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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은 교생선생님이었다. -1

그릇이큰 육준
20시간전
·
조회 104

내가 고2 때,

우리 담임 과목이 국어였기 때문에 국어 교생이었던 그녀는 우리반에 자주 왔다. 처음 서로의 기억에 남은건,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종례 후 당번이었던 나는, 모두가 나간 후 혼자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담임 심부름으로 교실로 왔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그녀가 들어와 잠깐 놀랐지만 간단히 인사 후 마저 청소를 했다. 그녀는 교탁과 그 주변을 이리저리 뒤지며 뭔가를 찾는 거 같았다. 나는 어느새 청소를 끝냈고 한참을 찾고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쌤, 뭐 찾으세요?"
 
그녀는
"응, 담임쌤이 OOO 명단을 교실에 두셨다는데 어딨는질 모르겠네"
 
나는 같이 찾아주었다. 한참을 여기저기 뒤지다가, 컴퓨터 책상 아래에 뭔가 있는 걸 보았다.
 
"쌤, 여기 뭐가 있는데요?"
 
그녀는 헐레벌떡 와서 같이 무릎을 꿇고 책상 아래를 보려고 내 얼굴 옆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그 날 그녀의 향이 기억난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그건 안나수이 향수였다. 그녀가 향수를 뿌린다는건 그때 처음 알았다. (그녀는 은은하지만 하루 종일 향이 나도록 어깨 부분에만 아주 살짝만 뿌렸다.) 

그전까진 그렇게 가깝게, 코 닿을 거리에 있던 적이 없어서 그녀가 향수를 뿌리는지도 몰랐다. 그 향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향이었다. 물론 정신없이 찾느라 그저 머릿속으로 휙 스쳐 간 단상이었지만 아직도 그 달콤한 향을 떠올리면 코끝이 달콤해진다.
 
교탁 아래 뭔가 종이가 있는걸 본 나는 자를 가져와 그걸 끄집어냈다. 먼지가 딸려왔다. 탁탁탁 털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면 짧은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하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서로 웃음코드도 비슷했고 나는 그녀의 눈웃음이 너무 좋았다. 어느새 하루에 틈만 생기면 그녀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나는 이미 내 감정을 알아챘다. 그런데 뭘 할 수 있겠나? 나는 학생이었고 영화 같은 일은 바라지도 저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학원을 갔다가 집에 걸어가고 있었때 였다. 멀리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였다. 길에서 만날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에 무척 반가워서 난 소리치고 손을 흔들며 한걸음에 달려갔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도 날 알아보고 뛰어왔다. 우리는 폴짝거리며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그녀는 교생들 모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과일 주스를 사주겠다고 했다. 근처 과일쥬스 가게에 가서 둘 다 수박주스를 사, 서로 하나씩 입에 물고 같이 걸었다. 
무더운 한여름, 해 질 녘 선선히 부는 바람과 시원한 수박주스, 안나수이 향의 달콤함, 그리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예쁜 그녀를 보며 나란히 걷던, 그 산책하던 순간은 마치 영화 같았다. 
우린 별 얘기도 안했지만 끝없이 시시덕 거렸다. 근처 공원벤치에 앉아 얘기를 더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어두운 저녁이 되었다. 그녀는 시간을 보고 깜짝 놀라 나에게 집에 빨리 가야겠다고 했지만, 난 부모님이 장사하셔서 괜찮다고 했다. 집에 갔으면 심심했을 건데 쌤이 있어서 재밌다고 했다. 그녀는 안도했고 우린 더 얘길 나눴다.

 

그녀는 다른 지역 출신이었고 현재 자취를 한다고 했다. 내가 놀랐던 건 그녀는 선생님이 되기를 꿈꿨던 게 아니라는 것. 사범대를 간 것도 그냥 성적에 맞춰서 갔다고 했다. 그녀가 했던 수업을 들었던 나로썬 놀랐다. 열정이 느껴졌고, 꼼꼼했고,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려는 마음이 느껴졌었기에 나는 당연히 훌륭한 선생님을 꿈 꾸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얘기해줬다. 그랬더니 그녀는 약간 울컥하더니 한참 숨을 골랐다. 고맙다고 했다. 지금 본인이 뭘 하고 있는건지,  잘하고는 있는건지 등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는데 내 얘기가 조금 정리해줬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며 날 안아줬다.

'여자'랑 안은 건 그때가 처음 이었다. 무척이나 놀랐고 (기분좋고) 행복했지만, 그저 감동해 안아준다는 게 느껴졌기에 나는 그녀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땐 어른이라면 뭐든 다 알고 방황 같은건 안하는 줄 알았기에 ‘진짜 선생하기 싫은가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이후에도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얘기했다. 9시가 다 돼서야 우린 자리를 떴고 헤어졌다.
 
난 그날 너무 행복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침대에 누워서 오늘 나눈 얘기들을 곱씹으며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오빠가 있다는 사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좋아하는 같은 가수가 있다는 것,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것, 인절미우유빙수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큰 고민이 있는데 내가 도움이 됐다는 것 까지 너무 꿈만 같았다. 기억에 그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샜고 그 다음주 월요일까지 들떴던 것 같다. 


물론 다시 학교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평범한 교생과 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그녀에게 푹 빠졌기에 어떻게든 말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집 풀다가 모르는 것들, 질문할 것들 등 별 시덥잖은 것까지 매번 교무실로 찾아가 물어봤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녀도 어느 순간 나의 의도를 알았고 그게 너무 귀여웠다고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걸 모를 수가 있겠나, 모른척했던거지.

 

여튼 그렇게 교무실을 찾아가길 여러번,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얘기했다. 폰 번호를 알려줄 테니깐 모르는 거 생기면 바로바로 카톡으로 물어보라고. 나는 번호를 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랬지만 아닌척하며 덤덤하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교무실을 나와 교실까지 미친놈 처럼 웃으며 뛰었다.

댓글
피곤한 한당
19시간전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소심한 허사
14시간전
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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