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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화

우직한 왕당
04.28
·
조회 124

크로노스 왕국, 시간탑 궁정.

거대한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오늘, 11명의 공주들을 한자리에 초대한 무도회를 연다.

숨을 고른 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두 와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순간, 웅성거림이 퍼졌다.

장미향, 달콤한 향, 책 냄새, 사막의 바람 냄새까지——

각기 다른 왕국의 공기들이 한데 섞였다.

“왕자님.”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에리시아 비브리아였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 품에 꼭 껴안은 오래된 책.

“첫 춤은... 저와 함께 하실래요?”

조심스럽고도 정중한 목소리.

“아냐! 나야 나!”

북소리와 함께 리벨라 카니발리아가 튀어나왔다.

손목에 찬 리본이 휙휙 흔들렸다.

“왕자님이랑 신나게 춤추고 싶단 말야! 오늘은 춤판 벌여야지!”

활짝 웃는 그녀를 보니, 내 입가도 절로 풀렸다.

“……”

말없이 다가오는 사하라 사블라.

그녀는 눈길만으로 말했다.

‘나를 선택해.’

“흥, 모두가 너무 서두르네.”

벨라 노크티아가 팔짱을 끼고 비웃었다.

그녀의 황혼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왕자님, 어둠 속 춤은 나랑 춰야지. 후회는 없을걸?”

검 끝으로 장난스럽게 나를 겨누는 그녀.

“왕자님.”

차분한 목소리.

세레네 로젠하르트는 한 송이 붉은 장미를 내게 건넸다.

“가시가 있더라도... 저를 잡을 수 있겠어요?”

그 미소는 치명적이었다.

그 틈에,

“왕자님~~!”

밀리에 수크리엘이 롤리팝을 흔들며 달려들었다.

“나랑 춰요! 춤추면서 사탕 먹기~~!”

눈부신 에너지에, 나는 또 진땀을 흘렸다.

“...흐아암…”

어디선가 들려오는 하품 소리.

리리아 타이피노스가 베개를 끌어안고 다가왔다.

“왕자님... 춤추면서... 같이 잘까요...”

완전히 졸린 얼굴이었다.

그리고,

하늘빛 드레스를 입은 세라 아스트레아가

별빛처럼 빛나는 미소로 다가왔다.

"운명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어요, 왕자님.

저와 함께, 별들의 길을 걸어주실래요?"

마지막으로,

거울빛 드레스를 입은 아이리스 미라제스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른 누구를 고를지 몰라도,

당신의 진심은 결국 나를 향할 거예요."

나는, 숨을 삼켰다.

11명의 공주들이 각자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시간은——”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시간이,

조용히,

멈췄다

 

 

 

 

 

---

프린세스 13화 “거울 속 왈츠”

---

“나는 아직 한 명만 선택할 수 없어요.”

왕관 홀에 울려 퍼진 내 목소리에

모든 공주들이 숨을 죽였다.

“모두와 한 번씩, 춤을 출게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첫 번째로 손을 내밀었다.

“첫 번째 순서는 당신입니다, 아이리스.”

아이리스 미라제스는 잠시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곧,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후훗, 현명한 선택이네요, 왕자님.”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차가운 거울처럼, 그러나 부드럽게 감싸는 감촉.

우리 둘은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나아갔다.

관객석을 가득 채운 11명의 공주들의 시선이 우리를 따라왔다.

현악기의 선율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리스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올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왕자님, 춤을 추는 동안 거짓은 금물이에요.”

“약속할게요.”

나는 속삭이며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음악이 시작되자, 아이리스는 마치 거울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녀와 함께 발을 옮길 때마다,

주변에 반사되는 수백 개의 거울 속 우리 둘이 함께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 거울 속의 나는...”

아이리스가 낮게 웃었다.

“정말로, 당신을 원하고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춤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아이리스는 마지막에 조용히 몸을 기댔다.

“왕자님,”

그녀는 귓가에 속삭였다.

“이 춤을, 기억해 주세요. 누구를 고르더라도.”

“잊지 않을게요.”

나는 진심으로 답했다.

음악이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놓았다.

아이리스는 조심스럽게 물러났고,

나는 다시 무대 중앙에 섰다.

다른 공주들이, 각자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춤 상대는——”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공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프린세스 14화 “책장 사이의 왈츠”

---

아이리스와의 춤이 끝나자,

왕관 홀은 다시 조용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내 다음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책처럼 차분하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

“다음 춤은——”

나는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에리시아 비브리아 공주님,

저와 함께해주시겠어요?"

에리시아는 깜짝 놀란 듯 두 손으로 품에 있던 책을 꼭 껴안았다.

그러다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입니다, 왕자님.”

그녀의 손을 잡은 순간,

전과는 전혀 다른 감촉이 전해졌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우리는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에리시아의 드레스는 잉크처럼 짙은 남색,

하얀 레이스가 책갈피처럼 흘러내렸다.

연주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왈츠.

조용하고 고전적인 선율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에리시아는 긴장한 듯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괜찮아요,”

나는 속삭였다.

“책을 읽듯, 천천히, 함께 걸어요.”

에리시아는 나를 올려다보며 작은 숨을 토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첫 스텝.

둘 스텝.

마치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듯,

우리의 몸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왕자님은…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조심스럽게, 에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책을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당신처럼요.”

에리시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조금 더 힘을 빼고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럼… 왕자님과 저의 이야기도,”

에리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한 장, 한 장… 써 내려갈 수 있겠죠?”

“물론이죠.”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고요한 책장 속을 걷듯,

서로를 읽어가듯 춤을 이어갔다.

마지막 회전.

에리시아가 살짝 웃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곡이 끝나고,

나는 그녀의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에리시아 공주님.”

“……네,”

에리시아는 수줍게 웃으며 작게 대답했다.

“저도…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나는 다시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다.

다음 춤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

다음은——

 

 

 

 

 

 

 

 

 

---

프린세스 15화 “축제의 여왕”

---

에리시아와의 고요한 왈츠가 끝나고,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 순간——

“왕자님!!”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리벨라가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주황빛 드레스,

머리카락엔 형형색색의 리본이 반짝였다.

“이제 나랑 춰야지!”

리벨라는 망설임 없이 내게 뛰어왔다.

“아직, 제가 고르기도 전에…!”

나는 어이없게 웃었다.

“내가 골랐으니까 됐지 뭐!”

리벨라는 손을 잡아끌며 무대 중앙으로 나를 끌고 갔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다른 공주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북소리, 피리 소리, 발랄한 박자.

고전 왈츠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축제가 시작된 듯했다.

“자, 왕자님!”

리벨라는 내 두 손을 맞잡으며 눈을 반짝였다.

“발 맞춰야 해! 놓치면 넘어져~~!”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었다.

“그럼, 잘 부탁할게요.”

“당연하지!”

음악이 시작되자,

리벨라는 발끝으로 리듬을 타며 나를 끌어당겼다.

빠른 발놀림.

가벼운 스텝.

리벨라와 나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왕자님, 생각보다 잘 추네!”

리벨라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배운 적 있어?”

“처음이에요,”

나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그런데, 리벨라 공주님이 너무 끌어당기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네요.”

“헤헷, 그거 칭찬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파트너네요.”

리벨라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물들었다.

“그럼... 앞으로도 나랑 쭉 춰줄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잠시 미소 지은 뒤,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당연하죠. 오늘 밤은... 모두와 함께하는 밤이니까.”

리벨라는 활짝 웃으며,

“그럼, 계속 달려볼까!”

외치고는 또 다시 나를 끌고 빠른 회전을 이어갔다.

구경하던 공주들이 깔깔 웃고,

왕관 홀은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찼다.

오늘 밤,

시간은

조금 더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

프린세스 16화 “별빛의 왈츠”

---

리벨라와의 경쾌한 춤이 끝나고,

왕관 홀은 다시 은은한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려 밤하늘 같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바라봤다.

“다음은…”

나는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세라 아스트레아 공주님, 저와 함께 춤춰주시겠어요?”

세라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고요한 새벽처럼 잔잔한 미소였다.

“기꺼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고운 손을 내 손 위에 얹었다.

손을 맞잡는 순간,

마치 별빛이 손끝에서 피어나는 듯했다.

우리는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모든 시선이 우리를 따라 움직였다.

하프와 플루트 소리가 조용히 시작되었다.

별빛을 닮은 부드러운 왈츠.

느리고, 깊고, 고요했다.

나는 세라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그녀는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왕자님,”

세라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별을 믿나요?”

“별이... 우리를 이끌어 준다고 믿어요.”

나는 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세라는 살짝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춤도… 별들이 정해준 인연이겠네요.”

우리는 천천히, 마치 별자리 사이를 걷듯

부드러운 스텝을 밟아갔다.

“별들은 말없이 빛나지만,”

세라는 속삭였다.

“그 빛은... 분명히 누군가를 향한 신호일지도 몰라요.”

나는 그녀의 눈동자 속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그럼, 오늘 밤,”

나는 말했다.

“당신의 별빛을… 내 가슴에 새길게요.”

세라는 깜짝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우리 둘은 별빛 속을 천천히 돌았다.

마치 시간도 숨을 죽이고,

별들만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춤이 끝날 무렵,

세라는 조심스럽게 내게 기대었다.

“왕자님,”

그녀는 속삭였다.

“이 춤을… 잊지 말아주세요.”

“절대 잊지 않을게요.”

나는 진심으로 답했다.

곡이 끝나고,

세라는 별빛처럼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다시 무대 중앙에 섰다.

아직, 남은 춤이 있었다.

아직, 기다리는 마음들이 있었다.

 

 

 

 

 

 

 

---

프린세스 17화 “검은 장미의 춤”

---

별빛 속 세라와의 춤이 끝나고,

홀은 다시 숨을 죽였다.

이번엔 나도 스스로 고르고 싶었다.

본능처럼.

이끌리듯.

나는 천천히,

검은 드레스의 소녀를 향해 걸어갔다.

붉은 눈동자,

차가운 미소,

그리고 가슴에 핀 붉은 장미.

“벨라 노크티아 공주님.”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저와… 춤을.”

벨라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고운 손끝으로 내 손을 감쌌다.

“흥미롭네요, 왕자님.”

벨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위험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어요?”

“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음악이 시작됐다.

어두운 현악기 소리.

저녁 하늘을 찢는 듯한, 깊은 선율.

벨라는 내게 바짝 다가왔다.

우리 둘 사이엔 숨소리 하나만이 존재했다.

첫 스텝.

차가운 회전.

나는 순간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벨라가 능숙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왕자님,”

벨라는 속삭였다.

“약한 모습은... 실망스러워요.”

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더 강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쥐었다.

“그럼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벨라는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요. 기대할게요.”

우리 둘은,

마치 칼날 위를 걷듯 아슬아슬하게 춤을 췄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벨라의 장미 향기가 어둠을 파고들었다.

“왕자님,”

벨라는 회전하며 살짝 얼굴을 가까이했다.

“혹시… 이미 누군가를 정한 건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벨라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제 이름을 조금 더 깊게 새겨야겠네요.”

춤이 절정에 이르렀다.

검은 드레스가 파도처럼 퍼지고,

우리는 완벽한 포즈로 마지막 스텝을 마쳤다.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벨라는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 밤, 기억해요. 왕자님.”

나는 짧게 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나는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다.

다음 춤,

다음 운명,

아직 끝나지 않은 밤이었다.

 

---

프린세스 18화 “장미의 속삭임”

---

벨라와의 강렬한 춤이 끝나고,

왕관 홀은 깊은 숨을 토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드레스 위로

붉은 장미를 품은 공주, 세레네 로젠하르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얇은 손가락이 턱을 살짝 괴고,

눈동자엔 장난기 어린 미소.

나는 한순간 망설였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옮겼다.

“세레네 로젠하르트 공주님,”

나는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 춤을, 저와 함께해 주시겠어요?”

세레네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내 손을 쓰다듬듯 얹으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왕자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탱고였다.

치명적이고, 은밀하고,

숨결 하나까지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의 춤.

세레네는 내게 바짝 다가왔다.

그녀의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

“왕자님,”

세레네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탱고는… 서로를 시험하는 춤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웃었다.

“기꺼이 시험받겠습니다.”

첫 스텝.

두 발이 맞닿고,

우리는 긴장 속에서 움직였다.

세레네는 내 목덜미를 휘감듯 가까워졌다.

장미 향기가, 숨막히게 달콤했다.

“왕자님,”

그녀는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 누구도 믿지 말아요.

오직 나만 바라봐야 해요."

나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세레네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당신만을 보고 있어요.”

세레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우리는 빠르게, 그러나 부드럽게 회전했다.

발끝이 바닥을 스치고,

치맛자락이 붉은 장미처럼 퍼졌다.

숨소리,

심장 소리,

그리고 짧은 속삭임만이 존재하는 세계.

“왕자님,”

세레네는 마지막 스텝에서 나를 끌어당겼다.

“오늘 밤, 내 장미를 기억해줘요.”

그녀는 내 가슴에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살짝 꽂았다.

“절대 잊지 못하게…”

춤이 끝났을 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레네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잊지 않을 겁니다. 세레네 공주님.”

세레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

프린세스 19화 “사막의 달빛”

---

세레네와의 격렬한 탱고가 끝나고,

숨 막히던 공기가 조금 식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홀 끝에 조용히 서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하늘빛 베일을 두른 구릿빛 피부의 소녀——

사하라 사블라 공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요한 시선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사하라도 조용히,

베일을 살짝 걷어내고

내 손을 받아들었다.

음악은 아주 낮게 시작됐다.

모래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달빛 아래 출렁이는 호수처럼.

우리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사막의 별빛을 따라 걷듯 춤을 시작했다.

“왕자님,”

사하라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막은… 말을 아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신, 마음으로 전하죠.”

사하라는 가늘게 웃었다.

달빛 아래서, 그녀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손과 손이 스치고,

가슴과 가슴이 숨결로 닿았다.

사하라는 내게 아주 가볍게 몸을 기댔다.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그 접촉이,

더 깊은 신뢰처럼 느껴졌다.

“왕자님,”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지키고 싶은 건, 당신입니다.”

나는 짧게 숨을 삼키고,

사하라를 더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럼,”

나는 속삭였다.

“나도 당신을 지킬게요.”

우리 둘은 말없이

달빛과 모래 위를 부드럽게 맴돌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세계.

춤이 끝나갈 무렵,

사하라는 살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왕자님,”

그녀는 말했다.

“비밀은 지켜야 의미가 있어요.”

“그렇다면,”

나는 대답했다.

“이 춤도… 우리 둘만의 비밀로 남겨요.”

사하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빛이 쏟아지는 무도회장.

구릿빛 피부 위로 달빛이 스쳐갔다.

사하라와 나는,

말없이 손을 놓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달빛의 춤이 새겨졌다.

 

---

프린세스 20화 “마법진 위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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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와 함께한 고요한 춤이 끝나고,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홀 한가운데——

어느새 준비된 듯 서 있는 그녀.

곧은 자세,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

완벽하게 정리된 군복 같은 드레스.

에델라인 에테리움 공주.

나는 곧장 다가갔다.

그녀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왕자님,”

에델라인이 조용히 말했다.

“마법은, 정확성과 신뢰로 완성됩니다.”

나는 미소 지었다.

“그럼 오늘 춤도… 완벽하게 완성해봅시다.”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완벽한 균형.

단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연결.

음악이 시작되었다.

서늘하고 정교한 선율.

우리는 동시에 첫 스텝을 밟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스텝,

마치 미리 계산된 궤적을 따라가는 듯했다.

“왕자님,”

에델라인은 낮게 말했다.

“혼란스럽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요.”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주 살짝 미소지었다.

“나를 믿으면, 당신도 완벽해질 수 있어요.”

우리는 돌았다.

팔과 다리의 궤적이 마치

거대한 투명한 마법진을 그리는 것 같았다.

에델라인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차가운 시선은, 오히려 나를 끌어올렸다.

“왕자님,”

그녀는 속삭였다.

“나는 늘 정답을 찾으려 했어요.”

“하지만——”

나는 에델라인을 끌어안았다.

“오늘 밤은, 정답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요.”

에델라인은 멈칫했다.

그 차가운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진짜 미소를 지었다.

“……네, 가끔은 그래도 좋겠네요.”

우리는 마지막 회전을 했다.

달빛이 쏟아지는 홀.

마법진처럼 퍼지는 춤궤적.

모든 게 완벽했다.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우리가 완성한 단 하나의 마법.

음악이 멈췄을 때,

에델라인은 조용히 숨을 토하며 말했다.

“왕자님, 기억하세요.”

“오늘 이 춤은——”

“내가 완성한 최고의 작품이에요.”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에델라인 공주님.”

우리는 손을 놓고,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오늘 이 춤은 영원히 새겨졌다.

 

---

프린세스 21화 “꿈꾸는 별의 춤”

---

차가운 마법진 위의 완벽한 춤이 끝나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이,

아직 두근거린다.

그때——

조용히 내 옆에 다가온 소녀.

손에 보랏빛 베개를 끌어안고,

하늘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리리아.

그녀는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왕자님… 저랑, 춤춰요…?”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리리아는 베개를 품에 안은 채,

내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잡았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몽환적인 선율.

별빛처럼 희미한 리듬.

우리는 천천히 움직였다.

아주 느린 왈츠.

시간조차 멈춘 듯한 춤.

“왕자님…”

리리아는 속삭였다.

“제가… 잘 못하면…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나는 미소지었다.

“리리아 공주님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리리아는 작게 웃으며,

눈을 반쯤 감은 채 내 품에 기대왔다.

"음… 이 춤…

진짜 꿈이면 좋겠어요…"

“왜요?”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꿈이면… 왕자님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리리아의 손을 더 단단히 쥐었다.

우리는 천천히,

별빛 사이를 걷듯 춤을 췄다.

발끝이 가볍게 바닥을 스치고,

옷자락이 은은하게 퍼졌다.

“왕자님…”

리리아는 말했다.

“다음에, 또 저랑… 춤춰줄 거죠…?”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물론입니다.”

“몇 번이라도, 언제라도.”

리리아는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꿈같은 춤이,

별빛 아래서 천천히 끝나갔다.

---

프린세스 22화 “운명을 잣는 춤”

---

리리아와의 꿈같은 춤이 끝난 후,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조용히 무도회장을 둘러보았다.

그곳에——

마치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

라벤더빛 머리,

손에는 얇은 실을 감은 채,

따뜻하고 조용한 시선을 보내는 자이니 텔레시아 공주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이니는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왕자님,”

자이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함께… 시간을 엮어볼까요?”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이끄는 대로.”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

마치 한 가닥의 실처럼.

우리는 천천히 움직였다.

손끝이, 발끝이, 실을 엮듯 부드럽게 이어졌다.

“왕자님,”

자이니는 조용히 말했다.

“삶은 수많은 실로 엮여 있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럼 지금, 우리는——”

“하나의 운명을 짜고 있는 거군요.”

자이니는 수줍게 웃었다.

그 웃음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녀의 손끝은 마치 실처럼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강한 의지가 숨겨져 있었다.

“왕자님,”

자이니는 말했다.

"실은 끊어질 수도 있고,

엉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우리의 실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

자이니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빛났다.

우리는 천천히,

부드럽게,

서로의 마음을 하나하나 엮어가듯 춤을 췄다.

움직일 때마다,

작은 운명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

“왕자님,”

자이니가 마지막에 속삭였다.

“저는… 이 춤을, 평생 기억할 거예요.”

“나도요.”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이 춤, 그리고 당신을.”

우리 둘만의 조용한 서약처럼,

춤은 천천히 막을 내렸다

 

 

 

 

---

프린세스 23화 “삐진 공주와 마지막 춤”

 

---

자이니와 부드러운 춤이 끝난 뒤,

나는 깊은 숨을 쉬었다.

이제——

오늘 밤의 마지막 춤.

나는 밀리에 수크리엘 공주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도회장 구석,

커다란 막대사탕을 물고

삐진 얼굴로 팔짱을 낀 소녀.

핑크빛 드레스,

곰돌이 머리띠,

작은 입술을 삐죽 내민——

밀리에 수크리엘 공주.

나는 미소를 삼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밀크에 공주님,”

나는 부드럽게 불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밀크에는 고개를 돌렸다.

“몰라요, 왕자님은 다 다른 사람만 좋대요.”

나는 웃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와 시선을 맞춘다.

“그럴 리 없죠.”

“공주님과의 춤은——”

“오늘 밤 내가 가장 기대한 순간이에요.”

밀크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정말요?”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그제야 밀크에는 작게 웃으며

사탕을 내려놓고 내 손을 잡았다.

“그럼, 특별히 용서해줄게요.”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상큼하고 달콤한 리듬.

우리는 서로 웃으며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밀크에는 깡충깡충,

귀엽게 리듬을 타면서 나를 바라봤다.

“왕자님, 저랑 춤추니까 어때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꿈만 같아요.”

“진짜루?”

“진짜로요.”

밀크에는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물었다.

“진짜진짜루?”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밀크에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진짜진짜진짜루.”

밀크에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왕자님은, 이제 저를… 제일 먼저 기억해줘야 해요.”

“약속할게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절대,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게요.”

밀크에는 활짝 웃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나도, 무도회장도,

오직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춤을 췄다.

작고 달콤한 약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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