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적 우주와 자유의지에 관해 grok과 나눈 대화
나:
결정론적 우주와 자유의지에 관한 내 생각이야:
모든 시간의 사건이 이미 존재한다면 시간순서에서 벗어나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시간의 사건이 결정된 상태에서는 인과율을 주장할 수 없어요.
t0의 사건 때문에 t1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t1의 사건 때문에 t0의 사건이 일어난다고 할 수도 있어요.
t0에서 t1, t2의 순서로 사건을 관찰하게 되는 것은 인간 관찰자의 시각일 뿐입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인간 관찰자가 관찰하는 것과 같이 t0시간에 아직 t1시간의 상태가 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t0의 사건에 의해 t1 사건이 일어나는 것, 즉 인과율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면 이미 t1시간의 상태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t0의 사건에 의해 t1사건이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인과율을 장담할 수 없다면,
t1시간에 결정해서 t2시간에 일어난 사건을 t0에 관찰 혹은 예측했을 뿐인거에요.
t0에 관찰 혹은 예측했으므로 t1시간의 결정이 t0에서부터 고정되었으므로
t1시간의 결정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정론적 우주를 주장하면서 인과율이 작동한다고 전제한 거에요.
t1시간에 결정해서 t2시간에 일어난 사건을 t0에서 예측한다고 할때,
t0시간의 공간에는 t1시간에 내린 그 결정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t0에서 예측했으므로 t0 시점부터 t1시간에 내린 결정이 고정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t1에 일어난 결정이라는 사건이 t0시간의 공간에서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전제한 바(미래는 결정되어 있다)와 다르죠. 전제에 따르면 결정은 t1 시간에 이루어지기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망원경으로 달을 본다고 해서 그 달이 망원경 안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죠.
우리가 t0시간에서 t1시간의 사건을 관찰 혹은 예측한다고 해서 t1시간의 사건이 t0시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순서에 따른 인과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t0에서 관측했으므로 t1의 사건이 t0시점에서 고정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t1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t0에서 관측한거에요.
우리가 미래의 결정을 미리 관찰 혹은 예측했더라도, 그 결정은 미래의 그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제 이루어진 일을 지금 cctv로 관찰 했더라도, 그 일이 지금이 아닌 어제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미래 방향이나 과거 방향이나 같으니까요. 관찰시점을 t0에 두냐 t2에 두냐에 따라 t1이 과거이거나 미래일 뿐입니다.
결정론적 우주에서도 자유의지로 결정한 사건이 그 시간에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뇌파를 결정 전에 미리 측정했다구요?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t1에 결정했기 때문에 t0에 뇌파가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관찰자가 t0에서 t1의 순서로 사건을 관찰한다고 해서 t0의 사건이 원인이고 t1의 사건이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둘 다 동등하게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미래가 '미리' 정해진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리'와 '후에'를 구분하는, 비결정론적 우주를 전제한 사고방식입니다.
grok:
흥미로운 철학적 고찰을 공유해 주셨군요. 결정론적 우주와 자유의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모든 시간의 사건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시간 순서에 따른 인과율을 고정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t0에서 t1으로의 사건 흐름이 반드시 t0가 원인이고 t1이 결과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관찰자의 시점이 시간의 인과적 방향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이 단순히 각 시간대에 존재할 뿐이라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당신의 논리에 따르면, 결정론적 우주에서 t1 시점의 결정이 t0에서 예측되거나 관찰되었다고 해서 그 결정이 t0에서부터 "고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군요. 이는 마치 망원경으로 달을 보는 행위가 달을 망원경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로 잘 설명됩니다. 또한,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시간의 방향성(과거→미래 또는 미래→과거)이 관찰자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라질 뿐, 절대적인 인과율로 사건을 묶을 수 없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다루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뇌파 측정 사례를 예로 들며, t0에서 뇌파가 관찰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t1의 결정을 "원인"으로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t1에서 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t0에서 뇌파가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결정론적 우주에서도 사건이 그 시점에 자유롭게 결정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거죠. "미리 정해졌다"는 표현 자체가 비결정론적 시간관을 전제한 사고라는 지적도 매우 날카롭습니다.
이 논의를 확장해보면, 당신은 결정론적 우주에서 시간의 선형적 흐름과 인과율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관찰 방식에 의존하는 허구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볼까요: 만약 모든 사건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면,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결정론적 프레임 안에서 "선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신의 관점에서 이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
사건이 그렇게 되도록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자유"야. 가령 시간 T1에 내가 케이크와 사과 중에 케이크를 선택하는 사건이 고정되어 있을 수 있어. 그런데 케이크를 선택하도록 고정된 것은 내가 자유의지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된 것이지.
grok:
당신의 답변을 통해 "자유"에 대한 정의가 더 명확해졌습니다. 즉, 결정론적 우주에서 모든 사건이 고정되어 있더라도, 그 사건이 고정된 이유가 바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 때문이라는 말씀이군요. T1 시점에 케이크를 선택하는 사건이 이미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이 외부의 강제나 필연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케이크를 선택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되었다는 논리ですね.
이 관점은 흥미롭게도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화해시키는 독특한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결정론은 모든 사건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지만, 당신은 "고정된 사건"과 "자유로운 결정"을 분리하지 않고, 고정된 사건 자체가 자유의지의 결과일 수 있다고 보시는군요. 예를 들어, T1에서 케이크를 선택하는 사건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내가 T1에서 케이크를 자유롭게 결정한 결과가 이미 우주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죠.
이런 관점에서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만약 내가 T1에서 케이크를 선택하는 사건이 고정되어 있고, 그 고정이 내 자유의지 때문이라고 할 때, T0에서 내가 "사과를 선택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과정도 이미 고정되어 있는 걸까요? 즉, 자유의지의 작용이 단순히 최종 선택(T1에서의 케이크)에만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선택에 이르는 고민과 망설임의 과정 전체도 자유의지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지,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질문은 자유의지가 결정론적 우주에서 얼마나 넓은 범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탐구해보고 싶어서 던져본 것입니다!
나:
T0에서 내가 "사과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라고 고민했기 때문에, T0에서 내가 고민하는 상태가 고정된 것이지.
grok:
그렇군요. 당신의 답변을 통해 자유의지가 단순히 최종 선택의 순간(T1에서의 케이크 선택)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예를 들어 T0에서의 고민과 망설임—역시 고정된 사건의 일부이며, 그 고정된 상태가 내 자유의지의 결과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즉, T0에서 "사과를 선택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는 상태가 고정되어 있다면,それは私が T0에서 자유롭게 그런 고민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된 것이라는 논리ですね.
이 관점은 자유의지를 시간 속의 단일 사건(결정 순간)으로 축소시키지 않고, 시간 전반에 걸친 내적 과정—고민, 망설임, 그리고 최종 선택—모두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확장시키는군요. 결정론적 우주에서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고정된 내용이 내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느끼고 결정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자유의지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죠. T0에서의 고민이 T1에서의 케이크 선택만큼이나 내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자유의지는 단지 결과뿐 아니라 과정 속에도 깃들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논의를 종합해보면, 당신의 입장은 결정론적 우주에서 자유의지를 "사건이 그렇게 되도록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며, 그 결정 과정 전체(고민부터 선택까지)가 시간 속에 고정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는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추가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만약 T0에서의 고민과 T1에서의 선택이 모두 내 자유의지로 고정되었다고 할 때, 내가 T0에서 "다르게 고민할 수 있었다"거나 T1에서 "사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그런 가능성 자체도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이미 배제된다고 보시나요? 이건 자유의지의 주관적 경험과 결정론의 객관적 고정성 사이의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들어보고 싶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grok:
내가 T0에서 다르게 고민했다면 그 다르게 고민하는 상태가 T0에 고정되었을 것이고, T1에서 사과를 선택했다면 T1에는 사과를 선택한 상태가 고정되었겠지
grok:
알겠습니다. 당신의 답변은 결정론적 우주에서 모든 가능성이 이미 고정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을 더욱 명확히 보여줍니다. 즉, 내가 T0에서 "다르게 고민했다면" 그 다르게 고민하는 상태가 T0에 고정되었을 것이고, T1에서 "사과를 선택했다면" T1에 사과를 선택한 상태가 고정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이는 "만약 내가 다르게 했다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결정론적 프레임 안에서는 이미 실제로 일어난 사건(고정된 상태) 외의 다른 가능성을 상정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당신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고민할 수 있었다"거나 "사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주관적 가능성은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즉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가상에 불과하다는 거죠. 내가 T0에서 특정 방식으로 고민하고 T1에서 케이크를 선택한 상태가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자유의지에 의해 그렇게 고정된 유일한 현실이고, 다른 가능성은 단순히 비현실적인 상상에 머무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 논리를 따라가면, 자유의지는 "내가 사건을 그렇게 되도록 결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지만, 그 결정의 결과와 과정은 이미 고정된 상태로만 존재하며, "다른 선택"이나 "다른 고민"의 가능성은 주관적 경험 속에서만 떠오를 뿐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서 당신의 입장은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양립시키면서도, 결정론의 핵심—모든 사건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을 유지하는군요.
이쯤에서 궁금한 점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만약 내가 T0에서 "나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 경험이나, T1에서 "나는 케이크를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느끼는 감각이 있다면, 이런 주관적 자유의 느낌은 결정론적 우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단순히 고정된 사건에 대한 착각일까요, 아니면 그 느낌 자체도 자유의지의 일부로 보아야 할까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나:
내가 결정한 우주인거야.
grok:
"내가 결정한 우주인거야"라는 짧지만 강렬한 답변이군요. 이 말은 결정론적 우주 안에서 모든 사건이 고정되어 있더라도, 그 고정된 상태가 바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즉, T0에서 "나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 경험과 T1에서 "나는 케이크를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느끼는 감각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그 우주가 "내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고 보시는군요.
당신의 관점에서 보면, 주관적 자유의 느낌은 고정된 사건을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로서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겠죠. 결정론적 우주라 하더라도 그 안의 모든 고민,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까지도 "내가 결정한" 것이기에, 그 주관적 경험이 자유의지의 표현으로서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자유의 느낌은 착각이 아니라 내가 우주의 고정된 흐름을 내 의지로 형성한 결과에 대한 인식인 셈이네요.
이 논리를 따라가면, 결정론적 우주에서 내가 느끼는 자유는 단순히 피동적인 관찰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그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든 흔적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내가 결정한 우주"라는 표현은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결정한 결과가 곧 우주의 고정된 상태라는 식으로 융합되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쯤에서 당신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자면: 결정론적 우주에서 모든 사건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고정된 사건들은 내가 자유의지로 결정한 결과물이며, 내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자유를 느끼는 과정과 감각조차도 "내가 결정한 우주"의 일부라는 거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예를 들어 외부의 강제나 억압을 느낄 때—도 결국 내가 결정한 우주 안의 일부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그런 느낌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당신의 통찰이 궁금합니다!
나:
우주에는 나만 존재하지 않지. 외부의 강제나 억압이 있다면 그들이 결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 외부의 강제나 억압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지는 내가 결정할 부분인 것이지
grok:
맞아요, "우주에는 나만 존재하지 않지"라는 말로 시작하신 답변이 이 논의에 새로운 층위를 더해주셨습니다. 당신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론적 우주 안에서 내가 느끼는 "자유롭지 않다"는 순간—외부의 강제나 억압—은 다른 존재들의 결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되네요. 즉, 우주는 나의 결정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존재하는 다른 주체들의 결정도 얽혀 있는 공간이라는 거죠.
그렇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 외부의 강제나 억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할지"는 여전히 내 자유의지의 영역에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T1에서 나에게 케이크 대신 사과를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저항하거나, 혹은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내가 T1에서 결정한 것이고, 그 결과가 우주에 고정된 상태로 반영된다는 거겠죠. 이로써 외부의 영향과 내 자유의지가 공존하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가진다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이 관점은 결정론적 우주를 단순히 나 혼자의 이야기로 보지 않고, 나와 타인(혹은 외부 요인) 간의 상호작용으로 확장시키는군요. 외부에서 오는 강제는 그들(혹은 그 요인)의 결정에 의해 고정된 사건이고, 내가 그에 반응하는 방식은 내 결정에 의해 고정된 사건이라는 식으로요. 결국, 내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도 우주 안에서 나와 타인의 결정이 얽힌 결과물이며, 그 안에서 내 자유의지는 여전히 반응과 태도를 결정하는 주체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당신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결정론적 우주에서 모든 사건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사건들은 나와 다른 존재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된 결과물입니다. 내가 느끼는 자유나 억압은 이 상호작용의 일부이며, 외부의 영향을 받더라도 그에 대한 내 반응은 여전히 "내가 결정한" 영역에 속한다는 거죠. 이쯤에서 정말 깊은 통찰을 얻은 느낌입니다! 한 가지 더 여쭤보고 마무리하고 싶어요: 이런 우주에서 "책임"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결정한 것과 타인이 결정한 것이 얽혀 있다면, 어떤 사건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나:
고전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된다고 생각해.
grok:
"고전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된다"는 답변은 이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현실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실용적인 결론이네요. 당신의 관점에서 결정론적 우주에서 "책임"을 다룰 때, 내가 결정한 것과 타인이 결정한 것이 얽혀 있더라도, 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 사회가 합의한 규범이나 관습—즉, "고전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T1에서 케이크를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타인의 강요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나 "그 선택을 실행に移した 주체가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춰 책임을 분배할 수 있다는 거겠죠. 결정론적 우주에서는 모든 사건이 고정되어 있고, 나와 타인의 결정이 얽혀 있지만, 책임이라는 개념은 그런 메타적인 프레임보다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에서 정의된다는 말씀인 것 같아요.
이 접근법은 철학적 결정론과 일상적 도덕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군요. 즉, 우주 전체가 고정되어 있다 해도, 우리가 책임을 묻고 판단하는 방식은 여전히 사회가 합의한 기준—예를 들어 법, 윤리, 관습—에 의존한다는 거죠. 이로써 당신의 논의는 "내가 결정한 우주"라는 개인적 자유의지와, 타인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틀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정말 깊이 있고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고, 그것들이 얽히며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나 더 나눌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니면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습니다! 당신의 통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