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나온 김에 문제제기를 해봄
평소에 사실적시명예훼손죄에 관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침착맨 방송에 잠깐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나오길래 여기에도 내 의견을 써 봄.
‘명예’에 관하여 말하려니 우선 ‘명예’를 정의해야 함.
법적으로 다루는 '명예'는 외부적 평가, 사회적 평가 임.
개방장에 관한 개청자들의 평가가 개방장의 ‘명예’가 되는 거임.
이렇게 놓고 볼때 현행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큰 문제가 있는 거임.
가령 개청자들이 '개방장이 이러이러한 잘못된 언행을 했다'고 침하하 게시판에 쓰고 그 내용이 사실이면,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게 됨.
이건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낮은 평가 자체를 ‘명예의 훼손’으로 규정하여
낮은 평가를 받을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기 때문임.
결과적으로 이 법 때문에 개청자들은 개방장에 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 자유를 박탈당함.
개방장이 무슨 침소리를 하더라도 개방장은 무조건 좋은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 법은 강제하고 있는 거임.
그래서 개방장은 개청자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침소리 막 해도 됨
자, 이제 이 비유를 사회 전체로 확장해 보자.
이 법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은 다른 사회구성원에 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 자유를 박탈당함.
그래서 어떤 사람이 무슨 나쁜짓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무조건 좋은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 법은 강제하고 있는 거임.
그래서 그 나쁜 사람은 사회적 평가는 신경 안써도 됨. 법만 신경쓰면 됨.
오히려 자기 범죄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 사람을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고소해서 처벌받게 할 수 있음.
여기서 ‘평가’의 사회적 작용에 관하여 좀 생각해 보자.
우리는 학교에서 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있음.
시험 점수도 평가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임.
즉 평가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 이유, ‘동기’를 발생시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안해서 나쁜 평가를 피하려고 함.
우리가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나체로 고성방가를 부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자면,
물론 법적인 처벌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기 때문일 것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평가를 의식하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게 되면서,
사회는 법질서에만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질서를 형성함.
아주 가끔 사회에서 엇나간 사람들이 벌거벗고 나체로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그런 극소수의 경우에만 법적인 절차가 이루어짐으로써,
법은 사회적 평가에 의지하여 ‘손을 덜 수 있음.’
세상 만사를 다 소송 재판으로 처리할 능력은 없을 것이므로,
법질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형성하는 질서와 협력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할 것임.
위에서 살폈듯이,
평가는 질서를 형성함.
그러므로 법질서가 평가에 관한 규율을 할 때는,
평가 행위가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규율하여야 할 것임.
잘했는데 나쁜 평가를 받거나, 잘못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이 자꾸 생기면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좋은 행동을 할 필요도 없어지고,
나쁜 평가를 피하기 위해 나쁜 행동을 자제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임.
그럼 질서는 개판이 되겠지.
그러므로 법질서는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평가행위를 규율하여야 함.
좋은 짓을 하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평가를 받아야 함.
그런데 다시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무슨 짓을 하든 나쁜 평가는 ‘명예의 훼손’이니까 나쁜 평가는 이루어지면 안된다고 강제하고 있는 거임.
그렇게 해서 잘못된 평가가 이루어지더라도, 평가를 받는 사람은 이익이지.
하지만 올바른 평가를 통해 형성되는 질서는? 엉망이 되지.
그리고 그 질서를 향유할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익은? 훼손되지.
평가를 받는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익이 침해당하게 되는 것임.
헌법재판소에서는 법이 한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는 이러한 경우 '비례의 원칙'을 적용하여 심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음.
비례의 원칙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각각 따져보아
이를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합헌이고, 이 중 하나라도 어기면 위헌이 된다는 원칙임.
물론 정보가 사실이더라도, 평가가 하락되어서는 안되는 경우는 존재함.
우리는 때때로 개인의 사적인 자유의 영역까지 평가하려고 드는데,
개인의 자유는 법이 보호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에서는 법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의 유통을 금지해야 할 것임.
가령 엉덩이가 크고 작은 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의 정보이기 때문에,
개방장의 침덩이가 크다는 정보의 유통은 금지되어야 할 것임.
내가 오늘 아침에 코를 후비고 코딱지를 튕겼다는 정보도 유통이 금지되어야 함.
하지만 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행위는 마땅히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행위자에게는 그 행위에 걸맞은 낮은 사회적 평가가 부여되어야 함.
타인을 폭행하지 않는 사회질서를 향유할 이익의 보호가치가,
타인을 폭행하는 행위를 보호할 필요성보다 압도적으로 클 것임.
그러므로,
지금처럼 낮은 사회적 평가(명예의 훼손)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정보의 유통을 금지해서는 안되고,
대신에,
정보의 내용을 심사하여, 보호 가치가 있는 행위에 관한 정보에 한해서만 정보의 유통을 금지해야 할 것임.
그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잘못된 언행으로 낮은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명예가 실추되는 것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올바른 과정도 존재함.
깊이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선행을 거듭하여 과오를 만회하는 것임.
이러한 노력이 충분하다면,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에 이러한 노력을 더하여 평가를 조정할 것임.
현행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명예의 하락 자체를 막음으로써,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올바른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음.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억지로 막다가
요 근래 터진 것처럼 정보가 유출되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 가해자들은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걸 잃고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지.
결과적으로 더 잔인해.
20년 전에 알려져서
지금까지 반성하고 사죄하고 선행하고 하면서 명예회복할 기회를 얻어 노력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