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에 관한 솔직 후기(+89년생 인생사)
안녕하세요, 한국인 여러분,
저는 해외취업에 대해 솔직한 후기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로그인까지 해서 글을 씁니다. 평소에는 눈팅만 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아서 스팸으로 오해하실 수 있지만, 진심으로 글을 씁니다.
현재 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년째 일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프라하에서 2년 일했습니다. 제 이력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대전 출생(1989년)
- 외고 졸업(2005년~2008년)
- 부친상(2005년)
- 서울 소재 사립대 학사(2008년~2015년)
- 육군 복무(2008년 9월 ~ 2010년 7월)
- 잠시 언더그라운드 래퍼 활동(2008년 전반기, 2010년 7월~2011년)
- 학사 복귀 이후 졸업(2015년 7월)
- 동 대학원 석사 졸업(2015년 7월 ~2017년 7월)
- 북한 인권 NGO 연구원(2017년 8월~9월)
- 평창 조직위 운영 준비 매니저(2017년 10월~2018년 4월)
- 공직유관단체 인사팀(2018년 8월~2020년 2월)
- 유럽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실무관(2020년 3월~2022년 1월)
- 한국 복귀(2022년 1월~6월)
- 독일 이동(2022년 6월)
- 독일 구직활동(2개월)
- 독일 취업 및 비자 취득(2022년 9월)
- 독일 소재 기업 입사(2022년 10월~ 현재)
저는 공부가 재밌어서 많이 했고, 중간에 음악도 했지만 결국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문과). 그러나 학위가 있어도 대부분 경력직만 뽑는 상황에서, 나이가 적당히 찬 상태에서 신규 입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기업에 들어갈지, 공공기관에 들어갈지의 갈림길도 있었고, 공부를 더 할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대한통운에서 상하차 일을 하던 만큼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고, 공백기가 한두 달이라도 되면 불안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는 당장 구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미친 듯이 일하던 20대에, 주 근무시간이 60-70시간이 넘어가는 생활을 1년 하니 버티기 힘들더군요. 성격과 몸이 망가지고, 이러다 죽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10월 한글날 휴일 기간에 1주일 휴가를 내서 혼자 체코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본 유로피안들의 생활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이렇게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면서, 이런 삶이 가능하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조국 사태에 충격을 받아 '한국은 정말 바뀌지 않는구나, 그냥 다 똑같네'라는 생각에 '평생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못 살 것 같다. 만약 결혼하더라도 이 서울에서 애를 키울 자신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사직서(정규직)를 던지고 체코로 떠났습니다. 체코에서의 삶은 만족도가 최고였습니다. 원래 관광도시라 현지어를 못해도 영어로 다 통하고, 무엇보다 물가가 쌌습니다. 또 코로나 시기라 한산한 프라하는 여행보다 살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한 2년 살다 보니, 대사관이라 그런지 업무 성장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당연히 공무원들과 현지 채용인 실무관들의 계급제가 있고, 업무를 배우거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이에 한국에 복귀하자마자 독일 취업을 위해 준비했고, 몸부터 옮겨서 닥치는 대로 취업을 알아봤습니다. 사실 독일에서 취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나름 영어는 문제가 없고(IELTS 8.5), 업무 경험도 있고, 석사 학위가 있어도 결국엔 비EU 국가 출신으로 분류되어 인정받지 못합니다. 또한 현지어가 안 되고, 기반이 없기에 독일 기업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커리어도 세분화가 잘 되어 있고, 고착화되어 있어, 한국식의 업무 분장은 먹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게 한국 기업 중 유럽 권역 본부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열심히 일하면 다 씹어먹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회사이지만 결국엔 저는 외국인입니다. 주재원도 아닌 현지 채용인 한국인으로서, 대사관에서 일할 때 실무관으로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워라밸은 좋지만, 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현지 채용이라도 한국인은 기준이 다릅니다. 한국 회사이기 때문에.
이제 나이가 34, 조금 있으면 35살이 되어갑니다. 점점 드는 생각이 여기서 정착해야 하나,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면 한국에서 재취업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추천하냐고요?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장점:
- 본인이 철판 깔 수 있으면 워라밸 가능
- 압도적인 삶의 질: 인구밀도가 적고, 공기질이 좋으며, 주변 유럽 국가들은 서울-대전 가듯이 다닐 수 있음. 산책, 러닝 등 생활 체육하기 좋은 환경
- 쿠팡을 대체하는 아마존
- 할 게 없음(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투자할 수 있음)
- 한국 슈퍼가 있어서 자급자족 가능(다만 비쌈)
단점:
- 물가가 비쌈
- 차가 없으면 불편함
- 병원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음. 아프면 진짜 고생함.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함
- 독일은 아직까지 영어로 대화하려고 하면 90% 실패함. 독일어 못하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큼
- 공공기관, 서비스 등 질적 수준이 인터넷을 쓰는 2024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진적임
- 할 게 없고, 만날 사람 없음. 가족이나 친구들을 부르거나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음
- 이민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서 독일엔 이민자 비중이 40%, 즉 3,200만 명임(터키, 이슬람,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중국 등등)
- 세금 비율이 41%. 연봉 6만 달러여도, 세전 월급 5천 유로여도, 세금 떼면 3,000유로임
- 월세가 비쌈(15평 기준 1,000~1,300유로)
- 결과적으로 돈을 모으는 게 쉽지 않음. 단, 결혼하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 세금 감면 혜택이 큼
- 모든 것과 일이 '무한대기'임
물론 본인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과 결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본인이 한국식 마인드만 버리고,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듯이 현지 문화와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된다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20대가 다르고, 30대 40대가 다르듯이 본인이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과감성이 달라지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 목표 때문에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저는 일을 굉장히 파고들면서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갈아 넣으면서요. 하지만 문제가 '태도'였습니다. 윗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질문하고, 이의제기를 하고, 잘못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거든요. 제 고집과 아집일 수도 있지만, 10대 때부터 저는 사회통념상 용납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고,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며 일반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죠. 또 제가 부딪혀서 경험하는 게 남들이 해주는 충고보다 우선이었죠.
그런 저도 30대 중반이 되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선택들에 대해 후회라기보다는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는? 그럴수록 '오늘 할 To-Do List에만 집중하자'로 귀결됩니다. 신경을 안 쓰려고, 무시하려고, 외면하려고 하는 거죠.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요.
여튼 긴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해외취업에 관심이 있으시면 질문해 주세요.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퇴근 후 방장 영상으로(풀영상) 대화하듯이 보는 게 하루를 마치는 한국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