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홍대병 말기 환자의 참회록
난 어릴 때부터 인디음악 좋아했었는데
그 때는 주위 사람들한테서 뭐 이런 음악 듣냐는 말을 많이 들었었어
그런 말이 싫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그 말을 즐겼던 것 같아
뭔가 나만 특별한 것을 듣는 것 같고 말이야
나는 아이돌 음악 안듣고 진짜 음악 듣는다는 생각이 있었나봐
이 증상을 말하는 용어가 있었지
내가 홍대병 말기였네
근데 나름 나도 대충 느껴지는 게 있었어서
너무 빠져있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었나봐
그래서 맨날 이어폰은 꼽고 다니면서도 공연들은 안 갔었다
굳이 음원으로,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는데 큰 돈을 쓰는 게 낭비 같기도 했고
근데 요새 인스타 보면 내가 어릴 때 듣던 음반들 듣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네
심지어 예전 락페스티벌 포스터를 올리면서 괜히 갈수 없는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그걸 보니까 나는 갈 수 있었는데 왜 안 갔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1년에 며칠 안되는 시간이지만 그 순간들을 함께 즐겼으면 계속해서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건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테고
생각해보면 나는 뭔가 그정도 까지는 심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나봐
내가 정말 좋아했다면 좋은 걸 함께 나눌 때 훨씬 기쁜
여전히 나는 내 취향을 같이 공유하고 즐길 사람이 별로 없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다른 취향을 즐긴다는 감각은 사실 잠깐 우월감을 느낄지 몰라도 (사실 우월하지도 않고)
내 성장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
성장이라는 것은 함께 할 때 같이 하는 거더라고
성장은 경쟁 보다는 협력에 좀 더 가깝더라고
그때는 몰랐었네
너희들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고 스스로를 속이지마
그리고 그것을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하고
그게 잘 사는 것 같에
나를 숨기지 않고, 타인과 어울리고
그 단순한 사실을 이제서야 지난 날을 보면서 깨닫네
지난 시간들이 후회되지만 앞으로는 후회하는 날을 만들고 싶지 않다
앞으로의 시간은 나도 더 솔직한 사람이 되고 나의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