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할 편지
보내지 못할 편지를 물병에 넣어 바다에 던지듯이 인터넷에 올린다.
물병편지가 현대에 와선 해양쓰레기가 되듯이, 내 편지도 데이터 쓰레기가 될 거라고 믿는다.
1.
당신에게
이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야. 무슨 염치로 이런 글을 쓰냐고 묻겠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글을 쓰기로 했어.
당신에게 그렇게 심하게 말 한 거 정말로 미안해. 당신을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야. 정말이야. 바보 같지만, 당신에게 사소한 불만이 있었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해서 비뚤어진 마음에 그렇게 표현하고 만 거야. 바보 같지? 하지만 믿어줘. 진심이야.
솔직히 내가 이걸 전할 용기가 있기나 할런지 모르겠어. 만약 이걸 본다면, 내가 당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아줘. 이런 글을 써서 미안해.
그럼 안녕.
2015.12.01.
2.
나야. 잘 지내지?
나는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벌써 우리가 싸우고 헤어진 지도 10년 가까이 됐어. 세월 참 빠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 무렵에 머물러 있나봐.
아직도 가끔 꿈에 당신이 나와. 좋았던 그 시절, 당신에게 사과하는 나, 당신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나…
이 모든 꿈이 내 미련 탓에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지. 당신은 아마도 나를 잊었을 거고, 잊지 않았다면 나를 미워하고 있을텐데. 저런 꿈 따위는 이뤄질 수 없는,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내 머리로는 알고 있어.
내 소원은 둘 중 하나야. 당신을 잊고 살아가거나, 당신을 다시 만나서 친구로라도 지내거나. 후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당신을 잊고 살아가는 게 가장 현실적이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을 잊지 못하는 건, 내가 당신을 괴롭힌 벌일까? 그 벌로 10년 가까이 당신을 떠올리는 걸까. ‘벌이라면 어쩔 수 없구나’ 싶을 정도로 내가 나빴네. 결국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나 봐.
당신은 나를 잊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럴 수 없다면 무조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어. 우리 사이는 내가 망친 거니까.
꼭 행복하게 살아줘. 나를 미워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행복하게 살아줘. 그리고 나도 당신에 대한 감정을 품은 채로 (어쩌면 이 감정이 조금 흐려지더라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할게.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수 없기를 바라며, 이 편지는 내 기억 속에 가라앉힐게.
당신이 꼭 꼭 행복하길 바래. 안녕.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