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간을 사랑한 한 솜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기울어진다.
인간이었다면 장기가 파열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찔한 고통.
하지만 그 위력에 걸맞지 않는 가벼운 소리가 창고 안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푹신!
“똑바로 서라, 왜 동지들을 배신한거지?”
인간들이 사랑한다는 악기, 그중에서도 여왕이라는 바이올린보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를 힐난했다.
동지들을 배신했다, 무척이나 무거운 질문에 나는 아이러니함을 떠올리며 눈앞의 여인이 내려다보는것도 잊은 채 피식 웃고말았다.
“웃음이 나와?”
“아니, 가벼워야할 솜이 무거운 질문을 하는게 웃겨서.”
“하나도 웃기지 않아!”
-퍼억!
번개처럼 쏘아지는 주먹에 골통, 아니 솜통이 흔들린다.
일본에 넘어가 전기쥐 알바를 했다는 소식은 들었것만, 라이카의 주먹은 처음 만났을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빨라졌다.
“라이카, 나는 동지들을 배신한게 아니야.”
나를 힐난하는 그녀에게 몇번이나 대답해주고 싶었던 말, 하지만 라이카는 그런 내 대답이 도리어 자신을 조롱한다 생각했는지 아름다운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드러냈다.
아!
인간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인간의 가죽을 쓰고 솜을 위해 화내는 꼴이라니.
몇십년동안 의문 하나 품지 않고 실행해온 잠입이었지만 고민을 품은 이후 솜뭉치 가득한 머리는 모든걸 삐딱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지들을 배신한게 아니라고? 너는 우리의 정체를 밀고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동지들을 팔아넘겼어!”
“그 아이가 내 동지니까.”
“몰랑이!!!”
머리가 울리고 이가 덜덜 떨린다.
“약 90284675136649명의 동지들이 너 하나때문에 위태로워졌어,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파악이 안돼?”
더 이상 널 지켜줄수 없단 소리야.
내 배신을 힐난하는 따가운 목소리와 다르게 따뜻하기 짝이 없는 중얼거림, 나는 주먹만큼은 예전과 달라도 여전히 내가 아는 그 라이카가 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고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달빛을 등지고 나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여인, 라이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날카로운 눈매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나에게 선고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누구에게 전해주려는거지?”
배신자 주제에 역으로 질문했음에도 나를 제지않는 라이카, 그녀의 상냥함에 미소지은 나는 차분히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라이카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동지들을 팔아넘기게 만든 그 아이에게.”
“잔인하구나, 하지만 상냥해.”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
또륵, 하얀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토옥, 바닥에 떨어졌다. 분명히 물방울이었것만-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어느새 폭신한 솜이 되어 토옥, 바닥을 굴렀다.
“항상 나를 아껴줘서 고마워,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를 만나줘서 고마워.”
“…”
“앙심만 품은 내 마음은 사랑으로 채워졌어, 베개나라를 떠나오고 상실만이 남은 내 마음은 너로 차올랐어.”
너무 절절한가? 그래도 라이카가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만큼 괜한 멋쩍음탓에 멈출순 없었다.
나는 덤덤히 마지막 말을 혀에 얹은 후 혀 끝을 굴렸다.
이 말을 하게 될줄 몰랐는데…
항상 마음에만 품고, 네 곁에 남고 싶었는데.
“쏘영아, 부디 행복해, 그리고 항상 나를 기억해줘.”
-푸욱!
“나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구나…”
주륵, 주륵.
수많은 솜뭉치가 바닥에 떨어진다.
인간에게 잡혀 베개속에 갇히는 동지들의 시체와도 같아보이는 무척이나 서슬퍼런 광경.
하지만 동시에 오랜 친구를 잃은 한 솜의 눈물이기도 했다.
“라이카, 고마워.”
“…”
“쏘영이는 무척이나 착한 아이야, 그 아이라면 분명히 네 슬픔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혀가 굳어간다.
안되는데, 쏘영이라면 라이카 너를 무척이나 좋아할거라고.
동지들의 원한보다, 너의 행복을 위해 살아보는건 어떻겠냐고 말해줘야 하는데.
툭.
시야가 뒤집히고 고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솜에겐 작은 고통일뿐이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작은 절차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 아이를 다시 만날수 없는건 너무나도 슬펐다.
그건 무척 큰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