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랑화가 보니 어쩔 수 없이 입대할 때가 떠오르는구먼유ㅎㅎ
저는 2009년 4월 정말 날이 좋았던 봄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사촌들 중 제가 처음으로 입대하는 거라 온 식구들이 다 모여 두부집에서 저녁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맛있었습니다. 이제는 뵐 수 없는 외할머니도 함께였던 기억이 문득 스치네요.
입대하는 것 자체가 아주 신경질이 났기 때문에 논산에 혼자 가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시고 입영 버스를 예매하셨더라고요. 인사해주는 멍멍이와 누나를 뒤로 하고 새벽에 부모님과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에서도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났던지 어머니께 툴툴댔던 것이 참 죄송했습니다만… 은 개뿔 얼마 전에도 전화로 개짜증냄ㅋㅋ
버스에서 내렸더니 한 빡빡머리 친구가 혼자 멀뚱히 서 있더라고요 부모님께서 그런 걸 그냥 못 넘기시는 편이라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도 싫지 않은지 함께 불고기를 먹으러 갔죠. 경주에서 온 친구였는데 군생활 무사히 마치고 잘 지내고 있겠죠? 이름도 얼굴도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따금 떠오르면 힘든 시절을 잠깐이나마 함께 보낸 동료를 떠올리는 것 같은 아저씨적 감상이 물씬 듭니다.
아무거나 잘 줏어먹는 편인데도 점심은 정말 독보적으로 맛이 없었습니다 비슷하게 맛 없게 먹었던 음식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요. 심지어 입소대대 밥보다 맛이 없었는데 훗날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께선 그렇게 나쁘지 않으셨다고 하시더군요ㅋㅋㅋ 그냥 제 기분이 개같으니 뭘 집어넣어도 개같은 맛이었던 것 뿐이었어요.
날씨도 참 완벽했던 것이 입소할 때쯤 비가 내리더라고요. 울적함과 을씨년스러움의 정점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비 맞는 것을 싫어하는 곳이 군대라 입소'장정'들에게 판초우의를 나눠주더군요. 어떻게 입는 건지도 몰라서 얼타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입혀주셨습니다. 가족들이 보고 있는 그 때가 마지막으로 얼타는 것이 용인되는 순간이기도 하죠ㅋㅋ 입소하자마자 소변을 보다 늦었더니 조교가 무슨 90년대 조폭영화에서 들었던 것만 같은 싸구려 욕을 잔뜩 쏟아내어 아주 큰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무튼 입소 행사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제 판초우의를 뒤적이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말 없이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그 손의 온기와 함께 슬픔도 대견함도 아닌 그 어딘가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눈빛이 아직도 선합니다. 글을 적고 있으니 그 온기가 또 느껴지네요.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밖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너무나도 생소할 군대라는 곳에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향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만 그걸 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네요. 부디 아직도 고생하는 그 젊음들이 그 곳에서 아무리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당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 지켜가 주었으면합니다. 그나저나 라이트펜은 아직도 각광받더군요ㅋㅋㅋ
아무튼 오랜만에 감상에 젖게 해준 방장과 통천님, 제작진들에게 감사하다 이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