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될과학 채널에 올라온 데카르트 관련 영상의 오류들
https://www.youtube.com/watch?v=yGim8RWkcUE&t=918s
위의 영상은 보다시피, 데카르트의 대표 저작중 하나인, 『방법서설』의 번역되지 않은 뒷부분들을 주제로 하는 영상입니다. 이 글은 위의 영상에 나타난 오류들에 대한 분석을 담은 글입니다.
영상은 『방법서설』의 원제목인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방법, 그리고 이 방법의 실험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등의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고”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근데 이 책의 두께는 500페이지입니다, 요 중에 서설이 76페이지고요, 저기 나오는 ‘굴절 광학, 기상학, 기하학’이 413페이집니다. 그 76페이지만 번역 됐어요.” (00:00~00:10)
그리고 8초 경에 “본문은 한글로 번역되지 않음”이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자막에서 말하는 “본문”은, 맥락상 당연히 굴절광학(Dioptrique), 기상학(Météores), 기하학(Géométrie) 등을 담은 “413페이지”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 413페이지가 “본문”이 맞습니까? 더 정확히는, 그 “76페이지”가 본문이 아닙니까? 제목에 “서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있으니, 본문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방법서설』의 목적 자체가 모든 학문에(=과학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는 이 책 자체를 하나의 서설로 의도한 것이고, 저 “서설”에 해당하는 부분의 원어는 “Discours”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이야기”나 “논의”와 비슷한 뜻입니다.
애초에 초판본 표지부터 “방법”(DE LA METHODE) 부분이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 보다 더 먼저 그리고 큼지막하게 박혀있습니다. (초판본 표지는 그냥 방법서설 네 글자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원래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 부분은 출판할 생각 안 했습니다. 아니 사실 뒤의 자연학 부분이 부록이고 언급하신 “76페이지”가 본문에 가깝습니다. 서론은 초판본 첫 페이지에 이탤릭체로 작게 한 문단 있는 그게 서론이고요.(https://gallica.bnf.fr/ark:/12148/bpt6k8710883m/f9.item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초 경에 “방법서설은 본문까지 보면 철학보단 수학, 과학 책에 가까움”이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저 당시의 저서에 그런 식의 학문 분류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보다시피 이것은 곡해입니다. 영상의 전체 부분을 보시면, 말하지 않아도 민태기 박사님 발언의 의도가 “사람들은 500페이지 책의 서론만 읽고 데카르트가 철학자인 것 마냥 멋대로 판단한다”임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서론만 읽은 사람들도 책의 구조 정도는 제대로 알고 있을 듯 합니다. 본문을 서론으로 만들고 부록을 본문으로 만드는 영상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9분 52초 경에 나오는 자막도 역시 곡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칸트의 『형이상학 서설』도 제목에 서설이 있으니 부록에서 괴팅겐 서평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부분이 사실 본문입니까?
아직까지는 사소한 부분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십니다.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면 그 이야기가 왜 나온지부터 봐야되죠. 방법서설에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나오거든요. 그 논거가 바로 저 413페이지에 달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에 나와요. (...) 인간의 뇌가 내 망막에 있는 신호를 고의로 왜곡합니다. 왜곡해야만이 제대로 보여요. 헷갈리죠. 네, 그게 바로 의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의심하는 거예요. (...) 여러가지 논거가 있는데 안 읽어보시면 편중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버럴 아츠라 하는 말이 철학이 잘못됐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 (10:24~10:35, 10:48~10:58, 11:04~11:13)
데카르트 당대에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 철학자인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회의주의나, 미셸 드 몽테뉴의 상대주의가 유행했습니다. 시각, 그러니까 감각을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의심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이전에도 나왔습니다. 동시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신기관』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이제 기존의 스콜라 철학 대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학문의 원리, 토대가 무엇이냐, 이런 화제가 떠올랐고, 당대의 그런 회의주의를 몰아내고 확고부동한 토대를 찾고자 했던 이가 데카르트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그냥 이겁니다. “회의주의자들 니들이 전부 맞고 모든게 다 믿을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근데 모든 걸 의심하는게 가능하다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는 의심할 수 없는거 아니냐?”
물론 광학에 대한 연구가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게 주요한 원인은 아닙니다. “그 이야기가 왜 나온지”는 당시의 지성사적인 시대 상과 연관이 있고, 그런 맥락을 모르면 “편중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413페이지” 언급들은 이미 충분하게 말한 것 같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데카르트의 자연학은 이미 『철학의 원리』로 대충 번역이 나와있고, 또 “송과선” 타령하던 17세기 사람의 자연과학을 굳이 지금 번역해서 뭐하냐는 생각이 듭니다.
10분 31초 경에서 11분 57초 경까지 이제 또 유클리드 기하학과 좌표계를 언급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인용은 그냥 안 하겠습니다) 의심하기 위해서 원점을 잡아야한다, 이게 좌표계랑 관련이 있다는 논지의 말씀을 하시는데, 다시 말하지만 데카르트는 자기가 보기에 회의주의를 외부에서 찌를 수가 없으니까 아예 회의주의가 맞다고 가정한 다음에 회의주의가 맞다고 쳐도 의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 겁니다. 그 밖에도 계몽주의나 합리론 발흥 등과 같은 시대적 요소들이 있고요.
12분 42초 경부터 이제 또 학문 분과들을 따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 비판하시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역사와 과학과 철학을 분리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자명해보입니다.
그리고 또 13분 경에는 할 말이 참 많은데, 일단, 충돌이 있어야 운동이 있다, 즉 누군가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있다, 이것은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1원인론 꺼내던 시절부터 있던 사고방식입니다. 스콜라 철학에서도 신존재증명의 주요 방법으로 사용되었고, 말씀하신 “신비주의”는 주로 신플라톤주의에 카발라 섞어넣은 모양새였는데, 이 “신비주의”의 주요 특징이 운동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힘이 있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입니다. 이게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정면으로 반대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데카르트는 제1원인론과 이원론을 동시에 주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아주 동네북 수준으로 신명나게 비판 받았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근대적인 과학의 시작과 관련된 것은 저런 부분이 아니라 물질은 모두 연장을, 그러니까 길이를 갖는다, 즉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 부분입니다. 또한 프랜시스 예이츠라는 지성사가가 있는데, 이 사람의 이론에 따르면 헤르메스주의 같은 “신비주의”에서 수비학적 요소를 강조한 것이 수학을 사용하는 자연과학이 나타나게 된 과학혁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합니다.
어느 학문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데카르트의 과학자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이자는 의도에는 동감합니다. 그러나 보통 철학을 배울때 데카르트를 철학자로만 가르치지는 않으며, 이과적인 측면도 알리고, 그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자면, 지성사적 맥락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어느 한 학문에만 치우친 것은 오히려 이 영상이 아니겠습니까?
+) 내용이 너무 딱딱해서 드립 하나만 치자면, 방법서설은 읽다보면 철학도 과학도 아니고 그냥 데카르트 아저씨가 자뻑하면서 자기 썰 푸는 걸 듣는 느낌입니다. 다들 한번 쯤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