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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와 메구무가 죽었다. 4월 15일

계은숙
24.04.12
·
조회 1717

2004년 4월 15일 일기

사진작가 요코기 아라오 님의 블로그 글을 번역해서 올려봅니다.

사기사와 메구무는 친할머니가 한국인인 일본인 소설가입니다.

 

자신의 친할머니가 한국인인 걸 20세때 알게 된 그녀는 한국에서 유학생활도 하는 등 자신의 뿌리를 깊게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뒤로는 작품 세계도 재일교포의 삶, 정체성이 중심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출판된 작품도 있으니 흥미있으신 분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슬프다. 사기사와 메구무가 죽었다.

오늘 아침, 어제 남겨진 부재중 메세지를 확인하고 있자니 사기사와의 비서 O씨로부터 메세지가 와있었다.

연락 달라면서 전화번호도 남겨둔 상태였다.

 

이번에도 프로필 사진 사용 허가때문에 연락한건가? 싶었다.

딱히 일일이 허락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는데. 또? 성실하기도 하구만.

 

전화를 하니, 비서 O씨가 받는다.

 

“왜 전화했어?”

“사기사와가 사망했습니다.”

 

순간 나는 무슨 영문인 지 알 수가 없었다.

사기사와의 죽음? 그런 것과 가장 동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11일에 눈을 감아, 친족들만 참석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만은 안 되겠던지, 어제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츠야(通夜:장례식에서 밤을 새는 것)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이 고별식이라고.

그 일로 어제 전화를 했던 것이다.

 

만약 괜찮다면 와주었으면 한다며 목 메인 듯한 목소리로 O씨가 말했다.

나는 돌연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 왜 사기사와가 죽은 거지?

 

“티비나 신문을 보셨나요?”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 보지도 않았고.

그것보다도,

왜 사기사와가 죽은 거냔 말이다.

 

나는 동요해서, 슬픈 감정 그 이상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겨우겨우 물었다. 

 

“사인은?”

“심부전입니다.”

 

심부전. 그래, 사기사와는 죽을 정도로 바빴다.

6월, 극단 공연도 있다고 했고, 연재 등으로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사기사와는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심부전이라는 말을 듣고는, 

뭐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많이 피우니까.. 은근히 납득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터무니없는 여자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사기사와 메구무가 죽었어!”

 

큰 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아내는 나의 사진전에서 몇 번 만난 사이일 뿐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거기에, 사기사와가 자살했다고 써있었다.

 

사기사와가 자살 ! 바보같은 소리. 그렇게 약한 여자일 것 같나?

 

사기사와 메구무를 만난 건 1989년이었다.

18살에 문학계신인상을 타고, 미인학생작가라는 홍보로,

주간문춘의 원색미녀도감에 싣기로 했다.

 

나와 담당 편집자는, 신쥬꾸 프린스호텔의 바에서 그녀를 만났다.

미인은 맞지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아이돌이나 여배우와 작업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예쁜 여성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사기사와 메구무는 구김살없이 밝은 여학생이었다.

아양떠는 것도 없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 뒤 이야기가 잘 맞아 가부기쵸의 이자카야에 향했다.

아니 좀 더 근사한 곳이었을 지도 모른다.

술은 몇 잔이라도 끄떡없었다.

 

나에게 있어 그 당시 사기사와 메구무는 나이도 20살 정도 차이나고, 여동생같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딸같기도 했고, 이 업계에서는 표현하자면 내 쪽이 선배였다.

나의 쓸데없는 참견과 설교도 그녀는 얌전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며, 결혼을 고민중이라 했다.

취기가 오른 나는 ‘후딱 결혼하고, 만약 아니라면 헤어지면 될 것 아니냐’며 부추겼다.

소설가라면 뭐든 경험해봐야 한다며.

 

 

며칠이 지난 후, 아자부 1스튜디오에서 주간문춘 촬영을 진행했다.

흰 벽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사기사와는 조금 긴장한 듯 했다.

헤어 스타일링은 야노 토시코가 담당했다. 나는 사기사와를 아이돌 느낌이 나도록 촬영했다.

그녀 앞에 책들을 늘어놓았는데, 왜 그랬는 지 기억이 안 난다. 편집자의 아이디어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 뒤, 진구가이엔에서 빨간 오픈카, 로드스타를 운전하는 모습도 담았다.

스포츠카에 탄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 차를 준비한 건 이 쪽이었다.

 

기모노로 갈아입은 뒤 칸다로 향했다.

고서점 앞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노스탤직한 여류작가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그 모습 그대로이긴 하나, 옛 시대의 여류작가의 향기를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촬영 후, 나는 사기사와에게 

가게 구석에 계신 연배가 있는 점주분께 인사를 드리고 오라 했다.

촬영허가도 받지 않고, 멋대로 가게 앞에서 진행한 촬영을 묵묵히 허락해주신 것이니, 사기사와가 감사 인사를 드렸으면 했던 것이다.

그 때의 일을 사기사와는 그 뒤에도 말하곤 했다.

그러한 예의에 대해 내가 교육해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문예춘추사의 빌딩 안에 있는 다다미실로 향했다. 작가가 통조림처럼 되는 방이다.

그 방을 들어갈 때, 사기사와가 신고 있던 조리를, 마치 어린애마냥 휙휙 벗어던졌다. 뭐지 이 녀석? 철딱서니 없기는. 그것이 사기사와 메구무에 대한 나의 인상이었다.

 

사기사와 메구무는 미인이지만, 전혀 콧대가 높지도 않고 여성적인 매력도 없었다. 다만 사진으로 담으면 여성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밑의 사진은 20세의 사기사와 메구무다. 아이돌 느낌이 나게끔 촬영했다.

 

 

이 촬영이 끝난 후, 사기사와는 이 일련의 사진들을 마음에 들어했다. 친구들에게는 사진빨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재잘거렸다.

 

2년 전, 사기사와 메구무에게 식사 제안을 했었다.

그녀가 사는 지유가오카에서 나는 기다렸다.

용건은, 후에 내가 고단샤에서 출판할 소설 ‘열을 먹는 벌거벗은 과실'이 완성되면 읽어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제작면에서는 내가 그녀보다 선배이지만, 소설에 있어선 그녀가 나의 대선배니까. 비평을 해주었으면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가을 공연하는 극단 팜플렛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게 등가교환이 된다며. 물론 그 정도야 간단한 일이다.

 

여름, 당시 나는 이케지리의 커다란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고, 2층을 스튜디오로 쓰고 있었다.

거기서 젊은 단원들을 촬영했다.

사전 회의때, 사기사와는 기묘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사진은 찍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떻게 그래, 모처럼인데 찍지 그래? 라고 했다.

그것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당일 어찌저찌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섰다.

그 사진이 위에 있는 흑백 사진이다. 좀 더 여러 표정들을 찍은 것 같은데, 왜인지 사기사와는 이 사진을 마음에 들어했다.

 

지금 보고 있자니 어딘가 쓸쓸한 듯, 고독한 여자라는 느낌이 든다.

좀 더 예쁘게, 미인처럼 담을 수 있었건만, 정면에서 그대로 촬영했다.

그 뒤, 나의 소설이 완성되어 그것을 읽어주기로 했다.

그녀의 지유가오카 맨션에 갔다. O씨도 있었다. 술 마시며 잡담.

내 원고를 펄럭펄럭 넘기며 소소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듯 읽었을 뿐이나 O씨는 자세히 읽어주었다.

 

나는 출판사를 소개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우수한 여성편집자가 있다는 K사를 소개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담당부서의 오케이 사인은 받았으나, 최종회의에서 어떤 중역의 반대에 부딪혀, 그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일은 없었다.

결국 고단샤에서 출판되었지만.

 

그래도 사기사와가 소개해 준 K사의 편집자에게 여러 조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단샤에서의 출판이 금방 결정된 건지도 모른다.

 

사기사와는 성실한 인간이다. 새 책을 내면 반드시 택배로 보내주었다.

나의 사진전에도 꼭 얼굴을 비춘다. 오키나와에서 촬영한 사진을 아사히카메라에 발표했을 때, 그 사진을 열렬히 칭찬해주었다.그 방식은 일방적이다. 자신의 생각을 뜨겁게 말한다.

 

작년 아카사카의 사진전에도, 봄에 열었던 긴자 사진전에도 와주었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사기사와와 만났던 걸까?

생각 외로 적을거라 생각했지만, 우리집에서 한 홈파티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소위 친구와는 다르지만, 만나면 곧장 이야기가 통한다.

 

사기사와는 얼핏 아버지같이, 호쾌하기도 하지만 꽤나 섬세하고 겁많은 구석도 있다.

하지만 왜 자살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텐데.

골똘히 생각한다기보단 돌발적이고, 기세 좋은 면도 있기도 하고, 술도 좋아하는데,

뭔가 실수한 거겠지.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난다.

어떻게 된 거야 사기사와?

아줌마가 된 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건만, 젊은 나이에 죽어버리고 말이야.

폼 잡지 말라고.

 

 

참 예뻤었다.

착한 여자였다. 이 사진은 20세의 사기사와다.

추억거리는 얼마든지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자살은 아니잖아? 사기사와 !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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