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인기!
용건만 간단히, 움짤은 한 번 더 생각
금병영에 상의하세요
야생의 이벤트가 열렸다
즐겨찾기
최근방문

중국에서 겪은 인간의 아름다움

돌이마
24.02.23
·
조회 1176

네이버 블로그 - 골방철학가님의 글입니다.

 

​즐거운 감상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고 그녀와 중국여행을 하고 있었다

쑤저우의 한적한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별 생각없이 밖을 바라보니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길바닥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같은 인간이었고 충분히 느껴졌다

저 노인은 춥고 배고프구나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공리주의니 효율적 이타주의니 따위의 이론에 심취해 있었다

머리속으로 저 노인을 도울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일시적인 음식제공이 저 노인의 인생에 근본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나 스스로의 도덕성을 뽐내기 위한 오만함이 아닐까

또한 내가 노인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어쩌면 노인에게 무례한 것이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내 필명이 무엇인지 다시 봐주길 바란다

결국 온갖 생각을 다 한 끝에야 노인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면 움직이자는 결론을 내렸다

주문을 마치고 온 그녀는 내 곁으로 왔고 창 밖의 노인을 보게 되었다

내가 노인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미 그녀는 노인에게 걸어가고 가고 있었고

사양하는 노인을 데리고 와 앉혔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조차 낼 수 없다더니 정말이었다

벙쪄있는 나를 향해 그녀는 할아버지가 안타까워서 그러니 같이 먹자고 했고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노인에게 손녀마냥 살갑게 대했고 노인도 사양했지만 내심 그것이 싫지 않았던 듯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얼굴에서 미소를 숨기지 못했으니까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둘의 대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때때로 나에게 이야기를 통역해줬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별로 기억이 남지 않는다

끽해봐야 고향이 쑤저우가 아니고 텐진이라는 것이며 뭔가 잘 안풀려서 여기 남게 되었다는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쑤저우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와 대화가 더 잘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인 역시 현지어를 잘 못하는 이방인이라서 그런걸까

 

나는 대화 내내 노인의 눈과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길거리에 앉아있던 죽은 눈은 어느새 생기 가득한 눈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세상 모든 것을 끌어안을 정도로 자애로웠다

그렇게 식사는 끝이 났고 노인은 감사와 미안함을 표하며 사라졌다

난 도대체 어떻게 노인을 생기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했고 "어떻게...?"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어떡해'로 이해했는지 이렇게 답했다

"그냥 한그릇 더 시킨거고 얼마 안해"

잘못된 대답이었지만 옳은 대답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뭐가 공리주의고 뭐가 효율적 이타주의란 말인가

그냥 밥 한번 같이 먹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왜?라며 날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감정은 분명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온전함에 대한 존경이었다

어쩌면 내가 평생 찾아다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대한 대답이

누구나 알지만 현실에 깎여 사그라드는 온전한 인간성이

내 눈 앞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글을 썼으며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댓글
두부왕
24.02.24
^^

😄유머 전체글

뒤늦게 후회하는 학폭 가해자 2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1613
·
24.03.05
기안84 어머니가 태계일주 PD를 좋아하는 이유.jpg 11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8590
·
24.03.05
삶의 보람의 반대는 .... 3
웃음
짱구의꿈
·
조회수 1469
·
24.03.05
결혼 6년차 아내가 해준 감자탕 30
웃음
여섯시내고향
·
조회수 10795
·
24.03.05
착용샷이 중요한 이유 10
웃음
침상중하
·
조회수 1798
·
24.03.05
대구 지하철에 출몰한 오랑우탄 1
맵찌리찌릿삑궷츢
·
조회수 2431
·
24.03.05
아저씨들 셀카 찍을 때 표정 5
은가누는사람
·
조회수 2900
·
24.03.05
셰프의 샐러드 1
은가누는사람
·
조회수 2042
·
24.03.05
대장님의 기적의 논리.jpg 6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8096
·
24.03.05
얼음이 되어버린 너구리 9
침투부전문시청팀사원
·
조회수 1441
·
24.03.05
10년전 버스 덕후 32
이야기&썰
종수똥마려
·
조회수 8492
·
24.03.05
처음보면 이해 못함 3
옾월량
·
조회수 1521
·
24.03.05
인간 vs 곰 ㄷㄷㄷㄷㄷㄷㄷ
tcxwjq
·
조회수 2385
·
24.03.05
햄버거를 한입 먹은 다음엔 주로 뭘 하시나요? 2
응가뿡
·
조회수 2399
·
24.03.05
스윗한 장동민 9
웃음
통닭천사나가사와마사미
·
조회수 7573
·
24.03.05
일하기 전의 너 나 우리
응가뿡
·
조회수 1493
·
24.03.05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 한다는 것 1
웃음
옾월량
·
조회수 1355
·
24.03.05
화장실 에티켓 안지키면
jlo2du
·
조회수 1476
·
24.03.05
안어울리는 옷을 입은 느낌이에요
침하햐허혀호효흐히
·
조회수 1932
·
24.03.05
샤워부스 물빼는 만화 29
웃음
칢챩먢
·
조회수 8995
·
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