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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사구사준 알아보기

미르띤이마룡
23.11.06
·
조회 681

사구사준

 

칭기즈 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명의 개국공신 장수들을 이르는 말. 

 

네 마리의 준마와 네 마리의 충견

 

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말과 개에 비유될 만큼 말할 필요도 없이 칭기즈 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수많은 공을 세운 인물들이었으며, 그만큼 몽골 제국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칭기즈 칸 외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사준은 주로 보좌를 하거나 전쟁에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담당하는 인물들이었으며, 사구는 전쟁에 나서서 용맹을 떨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준(四駿, 전략가형)

 

무칼리

자무카와 칭기즈 칸이 벌인 달란 발주트 전투 이후 자무카가 치노스족의 남성들을 잔인하게 팽형에 처하는 것을 보고 그의 밑을 떠났다.

 

1196년부터 칭기즈 칸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몽골 고원의 통일에 공을 세웠고, 1206년에 좌익의 만호장에 임명되었다.

1207년에 칭기즈 칸이 제1차로 서하를 공격할 때 참전했으며, 1211년에 제베와 함께 금나라 1차 정벌 때 선봉으로 참전했다.

 

본군을 이끌고 만리장성의 일부인 야호령을 공격했으며 별동대를 이끌고 장가구를 공격한 제베와 함께 금나라의 정예군을 격파하고, 만리장성의 주요 요새 중 하나인 대동부를 공격했으나 몽골군이 공성전에 서툴렀기 때문에 퇴각했다.

 

1213년에 칭기즈 칸이 직접 제2차 대금 정벌에 참전하면서, 만리장성에서 몽골의 7만 병력이 금나라의 65만의 병력을 격파하자 군사들을 지휘하여 제남, 장안, 요서, 요동 등의 금나라 화북 지방의 주요 영토를 함락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칭기즈 칸으로부터 화북 일대의 통치권을 하사받고, 국왕의 칭호를 받아 무칼리 국왕가를 이루게 되었으며 몽골의 다섯 부족과 투항한 한인으로 이루어진 혼성군을 이끌고 금나라 공략을 수행했다

 

프랑스 학자 르네 그루셰에 따르면 무칼리는 칭기즈 칸을 충실히 본받고자 했으며 남의 말을 잘 들었다. 

 

한번은 금나라 출신의 장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몽골인의 정복을 위해서라도 학살은 금지해야 된다고 간언하자 화를 내지 않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약탈과 학살을 금지했다. 덕분에 몽골군은 서쪽에서와는 달리 중국에서 더 많은 학살은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착실히 점령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산서의 중요한 요새였던 하중을 기습 공격하여 빼앗았으나 금나라의 저항이 거세어 개봉에서 패배했다. 무칼리는 열심히 전투를 한 나머지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고 금나라를 멸하지 못한 것에 한을 품고 실의에 잠긴 채, 1223년 병사했다.
 

사후 그의 동생인 다이순과 아들인 보로가 뒤를 이어 아들들과 함께 금나라를 공격했으며, 그의 일족은 몽골 제국(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되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의 수흐바타르 광장[5]에 무칼리와 보오르추의 기마상이 세워졌는데, 칭기즈 칸의 동상 옆에서 아직도 주군을 수호하고 있다.

 

유명한 일화로는 칭기즈 칸과 단 둘이서 길을 가다가 습격을 받았는데 칭기즈 칸을 대피시키고 홀로 적들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보로클

몽골 제국의 장수로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 중 전략가형인 4준의 한 명이었다. 후신(Hu'ušin) 씨족 출신으로 주르킨 토벌 때 전장에서 발견돼, 칭기즈 칸의 어머니인 호엘룬에게 입양되어 키워졌다고 한다.

 

케레이트군과의 격전이었던 카라 칼지드 전투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의 상처를 입으로 피를 빨아 치유한 뒤에 말에 태워 구출하는 등의 대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전투 이상으로 중요했던 ‘부케울’과 ‘바우르치’에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군량을 관리하는 장군에 임명되었다.

 

1206년 몽골 통일 이후, 칭기즈 칸에게 반항하는 오이라트, 투마트 등의 삼림부족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는데 1217년, 투마트족을 토벌하기 위해 본대와 떨어져서 앞서 나가다가 투마트족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보오르추

칭기즈 칸이 테무진이라 불리던 시절,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고 초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가까스로 연명하던 소년 테무진은 전 재산이었던 말 9마리 중 8마리를 도둑맞자 이를 추격하러 떠났다.  

 

도둑들을 쫒던 와중 어디로 도둑들이 도망쳤는지 모르게 된 테무진이 우연히 거기 있던 보오르추에게 혹시 말 여러 마리를 이끌고 여길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냐고 물어보자 보오르추가 그들이 간 방향을 알려주며,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테무친과 함께 말 도둑들을 추적했다.

 

이후 말 도둑들에게서 다시 말을 훔치고 목숨을 건 도주전이 무사히 끝난 후 말을 되찾은 테무진은 사례로 말을 몇 마리 주겠다고[1] 하자, 친구의 곤경을 도운 것에 대가를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거절하고 친한 친구로 남는다.

 

이 일을 통해 보오르추를 '처음 본 사람을 위해 매우 위험한 일에 참여하는 의협심이 강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년'으로 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보오르추의 훌륭한 인간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칭기즈 칸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12명의 남자가 칭기즈 칸을 습격하여 그가 입에 화살을 맞고 의식을 잃자 물을 가져와 입을 씻어주었는데 목구멍에서 피가 나온 후에야 칭기즈 칸이 의식을 되찾았고, 12명의 남자들을 향해 돌진하자 그들이 크게 놀라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칭기즈 칸의 경호를 맡고 있어 그가 경비를 서지 않는 한 칭기즈 칸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 《원조비사》에서는 칭기즈 칸이 분노할 때마다 그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메르키트 부족의 습격, 타타르 부족 정복, 케레이트 부족과의 격전 때도 테무진 칸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여 몽골 제국의 창업에 공헌했으며, 이 때문에 '다르한'의 자격이 주어져 알타이 산맥 방면의 몽골군을 관할하는 우익의 만호장에 임명되었으나 서하 원정 도중인 1226년에 병사했다.
 

사후 보오르추의 일족은 몽골 제국(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

 

보오르추는 무칼리와 함께 기마상이 세워져, 지금도 수흐바타르 광장에 있는 칭기즈칸 동상 옆에서 주군을 수호하고 있다.

 

티라운

카마그 몽골의 한 부족인 보르지긴 오복 타이치우드 부족(카마그 몽골 제2대 칸인 암바가이의 후손들이었다)의 술두스 씨족 출신.

칭기즈 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독살되자 타이치우드 족장 타르고타이 키릴투크가 테무진을 공격해 생포했다. 이때 타르고타이가 부족 내의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테무진을 감시하라고 명령했는데, 아버지인 소르칸 시라가 예수게이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기에 형인 침바이와 함께 그를 풀어주었다.

 

1202년, 카마그 몽골의 테무진 칸이 서나이만의 부이룩칸 및 메르키트의 톡토아 베키와 쿠이텐 전투를 벌일 때 테무진의 부하가 되어 용맹을 떨쳤는데 전투 중, 말에서 떨어지자 적들이 덤벼들었고, 이에 창을 고쳐잡으며 적의 기병과 맞서 싸웠는데 테무진 칸이 이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준사구의 장수들과는 달리 아버지 소르칸 시라가 천호장에 임명되었으며, 태종 오고타이 칸 때 금나라 정벌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
 

사후 그의 일족은 몽골 제국(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

 

사구(四狗, 맹장형)

 

젤메

우량카이족은 대장장이를 업으로 삼았고, 자식들을 노예로 판매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젤메는 테무진과 같은 달에 태어나, 아버지 자르치우다이가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테무진의 노예로 바쳤다. 그러나 갓 태어난 테무진 키우기에도 벅찬 예수게이가 장성하면 보내라고 돌려보냈다.

 

시간이 흘러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이후 어렵게 살던 테무진이 장성하자, 예수게이의 죽음으로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자르치우다이가 테무진에게 보냈다. 여기에 그 후 행적들이 더해져 젤메는 평생 테무진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출신 신분은 노예였지만 칭기즈 칸은 그를 진정한 친구로 대우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이 독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맬 때 밤새 상처의 피를 빨아내면서 간호했다고 하며, 혼수상태의 칭기스칸이 내뱉은 "아이락이 먹고싶다" 라는 말에, 칭기스 칸에게 먹이기 위해 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하여 아이락을 가지고 왔다는데 그 사실을 안 칭기스 칸은 그 은혜를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고 하며 만일 젤메가 아홉 번의 대죄를 짓는다 해도 모두 용서해주는 특권을 하사했다고 한다.

 

1204년 칭기즈 칸이 동나이만부의 타양 칸과 싸운 알타이 전쟁때, 아우인 수부타이와 함께 나이만족과의 격전속에서 철윤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는 등 큰 공을 세웠지만, 1206년 몽골 초원이 통일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칭기즈 칸에게 반항하는 부족들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수부타이


그는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던 장수들인 사준사구 중에서 맹장형인 4구 중의 한 명으로, 《몽골비사》에는 용감한 수부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몽골 제국의 유럽 침공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유럽 침공 과정에서 사실상 주치 울루스와 몽골-타타르의 멍에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수부타이는 금나라에서 폴란드에 이르는 넓은 전선에서 역사에 기록된 것만 해도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키고 61번의 회전에서 승리했는데, 활동 반경과 군사적 업적 측면에서는 세계사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장수이다.

 

우량카이족 출신으로, 사준사구의 일원이자 칭기즈 칸 초기 파티의 2인자였던 우량카이 젤메의 아우였다.

 

어머니는 수부타이를 낳다가 사망했으며, 아버지 자르치고다이는 대장장이였다.[19] 젤메에 이은 막내로 가업인 대장장이를 이어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략 14세 때 형인 젤메와 또 다른 형제 차오르칸과 함께 테무진 칸의 카마그 몽골 군대에 입대했다.

 

그때부터 테무진 칸의 막사에서 각종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스럽게 테무진 칸 막하 장군들의 전략 및 전술회의에 배석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1204년, 테무진 칸이 동나이만족의 타양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했으며, 메르키트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1206년 몽골 초원이 통일되자 천호장에 임명되었다. 형 젤메는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칭기즈 칸의 서정군에 제베와 함께 참전하여 호라즘 제국을 공격, 당시 제7대 술탄이었던 알라 웃 딘 무함마드 2세를 카스피해의 작은 섬으로 몰아넣어 죽게 했으며, 몽골로 귀환하는 김에 전리품을 좀 더 챙겨 가자고 해서 이란, 캅카스의 여러 도시와 루시 남부의 공국들을 쓸어버리면서 공략했다. 크림 반도에서 이탈리아계 제노바 공화국의 식민군을 격파하기도 했으며,루시 공국들의 연합군 8만명을 격파하기도 했다(칼가강 전투. 이 무렵 스승인 제베가 귀환 도중 사망.).  

 

이때 루시 공국들의 야전 역량이 무너져, 나중에 있었던 본격적인 바투의 동유럽 원정 때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되었다. 수부타이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자 그의 나이를 걱정해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후방에서 쉬게 하려고 했지만 수부타이는 칸이 전선에 나서는데 어떻게 자신이 뒤에서 쉬고 있겠냐며 거부했다.

 

그러나 금나라를 정벌하던 도중에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게 되는데, 1231년 당시의 금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던 완안진화상이 이끌던 금나라 군대와 맞붙은 도회곡 전투에서 패배해 퇴각한 것이다. 완안진화상은 그의 뒤를 쫒아 추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실패도 잠시, 끝내 1233년 금나라의 도읍인 변경을 함락하여 금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바투의 유럽 원정에도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는데 총사령관인 바투의 삽질까지 메꿔가며 큰 공을 세운 뒤에 귀환했다. 당시 러시아 제공국을 거의 초토화시켰고, 레그니차 전투 및 사요 강 전투에서 각각 3~50,000명 가량의 폴란드/튜튼, 헝가리 군세를 전멸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던 도중, 몽골 본토에서 오고타이 칸의 병사 소식이 알려지자 본토에서 열리는 쿠릴타이에 참가하기 위해 회군하게 되었다. 이후 대칸의 자리에 오른 구유크 칸은 그를 중국 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나 귀환 중 병사했다. 


사후 그의 우량카이 일족은 몽골 제국 및 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 

 

제베

지르고가타이[3]는 몽골의 한 부족인 보르지긴 오복 타이치우드에 속한 베수드(Besud) 씨족 출신이었으며, 본래는 테무진과 대립하던 타르고타이 키릴투그의 부하였다. 지르고가타이는 일찌감치 활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

 

후에 세력이 커진 테무진 칸이 타르고타이 키릴투크가 지휘하는 타이치우드 씨족을 제1차 쿠이텐 전투(1194년)에서 무너뜨렸다. 타이치우트족은 테무진 칸의 카마그 몽골 군대와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계속 도망다녔는데, 이때 한 전투 도중, 지르고가타이가 산등성이 위에서 후신 보로클이 타고 있던 테무진 칸의 말의 목을 저격해서 명중시켰다.

 

결국 타이치우드가 패배한 후 테무진 칸은 포로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누가 내 입이 흰 고라말의 목을 쏴 맞혔는가?"하고 질문을 던졌는데, 지르고가타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와 자신이 쐈다고 얘기했다. 테무진 칸은 지르고가타이가 포로가 되었음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태도와 장거리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추는 활솜씨를 훌륭히 여겨 그를 죽이지 않고 자신의 부하로 받아들인 후 제베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 뒤 테무진의 부장으로 여러 전장에서 맹활약을 했으며 나중에는 만호장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칭기스 칸의 금나라 정복 때에는 별동대를 맡아 맹활약했고, 이후 서요 방면의 군대를 맡아 동나이만부에서 도망쳐 서요의 권력을 찬탈하여 가지고 있었던 쿠츨루크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그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으며, 칭기스칸의 호라즘 원정 당시에는 또다시 별동대를 맡아 호라즘의 대규모 병력을 분산시키며 제 몫을 다했다.

 

이후 또 다시 원정군의 책임자가 되어 우량카이 수부타이와 함께 캅카스 산맥을 넘어 남러시아에 쳐들어가 크림 반도까지 찍고 돌아오면서 튀르크계 킵차크족과 러시아 공국 연합군을 모조리 박살내고 돌아온다(칼가강 전투, 1223년). 이후 원정을 마치고 몽골로 귀환하던 도중 병사했다.

 

쿠빌라이

칭기즈 칸이 자무카의 세력에서 벗어나 독립할 때 귀순했으며 타타르 토벌, 쿠이텐 전투, 나이만족과의 전투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나이만족과의 전투에서는 수부타이, 제베, 젤메 등과 함께 선봉에 서서 활약했다고 한다.

 

1206년 몽골이 통일되자 천호장과 군정 책임자의 직위가 하사되었으며, 서하 정벌에도 참전했고, 북부의 카를루크족을 추격하여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들을 복속시켰다.

댓글
마왕공손찬
23.11.10
재밌어요. 침착맨 징키즈칸전 다시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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