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알못과 함께 알아보는 세계 제 1차대전 5 전쟁의 시작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왕국의 민족주의 조직 검은 손 소속의 단원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당하면서 이에 분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함에 따라 제1차 대전이 열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점령될 거라 여겨졌던 세르비아는 오히려 침공을 격퇴하고 1915년 11월까지 버텼다.

그 뒤 세르비아의 보호를 이유로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선포했고, 독일은 러시아에게 총동원령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고 무시되자 다음날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를 최대한 빨리 굴복시켜 동쪽의 러시아 제국 방면으로 집중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내용의 슐리펜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고, 1914년 8월에 서쪽으로 진군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8월 2일에 룩셈부르크를 점령하고, 3일에 프랑스에 대해 선전포고한 뒤 중립국 벨기에가 독일군의 통과를 거부하자 4일부터 침공해 점령한다.

영국은 중립을 표방했었으나 영국이 독립을 인정했던 벨기에의 중립이 무시당한 것을 이유로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 한 뒤 프랑스로 영국 원정군을 투입하기 시작하였으며 발칸 반도의 국가 등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전포고를 교환했다.

8월 7일부터는 독일군이 프랑스 영토 안에서 국경 전투를 열어 승리해 파리 50여km 앞까지 진격할 정도로 선전한다.

한편 러시아가 급하게 8월 중순부터 독일의 동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갈리치아를 공격, 갈리치아의 중심 도시인 렘베르크를 비롯한 갈리치아의 상당 지역과 동프로이센의 국경 지대 일부를 점령했지만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반격당해 큰 피해를 입고 동부전선 우위를 내줬으며 오스트리아군도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전과를 올린다

하지만 9월의 마른 전투에서는 독일군이 프랑스+영국 연합군에게 저지당하며 진격의 힘을 잃고 주저앉게 된다.

결국 독일은 계획대로 프랑스를 조기에 굴복시키기에 실패했고, 우려했던 대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양면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에서도 유럽의 식민지였던 지역을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독일과 영국 식민지에서는 종전까지 현지 병력들의 전투가 계속 일어났다. 라이베리아가 개전 1주만에 대독 선전포고를 한 이래 8월 말에 일본 제국도 영국과 함께 독일령이었던 칭다오를 침공해 점령했고 9월에는 호주가 독일령 뉴기니를 점령했다.

태평양 지역에 있던 독일 함대는 본국으로 귀환을 시도했지만 영국 함대의 습격을 받다가 포클랜드 해전에서 괴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