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알못과 함께 알아보는 제 1차 세계 대전 2 근본적 발발 원인
제1차 세계 대전의 기원은 팽창된 유럽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1815년부터 1914년까지 유럽에서 전쟁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 안정된 정세가 조성된 덕분에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유럽의 생산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급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얻고 생산된 상품을 판매할 식민지가 필요하게 되어 유럽 각국은 식민지 쟁탈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고 국내 정치가 안정되어 있던 영국은 우위에 서있는 해군력 등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보유했고 프랑스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에 비해 엠스 전보 사건과 보불전쟁을 통해 새로 떠오른 신흥 강국 독일 제국은 통일전쟁을 거치면서 영국, 프랑스에 비해 산업과 공업 발달 과정이 늦어졌고 이 때문에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고 보니 이미 알짜배기 땅들은 영국, 프랑스 등이 다 차지한 상태였다.

결국 독일이 식민지를 획득할 방법은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를 뺏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독일은 기존 식민제국인 영국, 프랑스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적되고 있다

범게르만주의로 탄생한 국가가 연이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상황은 독일인들에게 강대국의 국력에 걸맞은 식민지를 바라게 만들었다.

이미 제1차 대전 이전에도 독일 제국과 영국, 프랑스의 대립은 위험수위에 달해 있었다. 영국이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계 보어인들과 싸운 보어 전쟁 당시에도 보어인들의 배후에 독일 제국이 있었고, 프랑스와는 두 차례에 걸친 모로코 위기로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식민지와는 인연이 없는 다민족 국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역시 내부적으로는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민족주의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주요민족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인들은 인구 구성의 반도 안 되었으나 다른 민족들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너무 많은 이권을 가졌다는 것에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외적으로도 안 좋았는데 독일 제국과 함께 범게르만주의의 영향을 받는 국가로서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에 맞서 발칸 반도를 둘러싼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발칸 반도는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독립 이후 발칸 반도의 각국은 발칸 전쟁 등 영토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발칸 반도의 슬라브족을 선동하여 지중해로의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 제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불만을 품은 나라는 세르비아 왕국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를 합병하고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의 압력으로 이에 굴복하자 (1878년, 1908년) 세르비아 왕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극렬한 적대감을 품게 된다.

세르비아 왕국의 적대감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으로 마침내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 사건과 관련 세르비아 왕국 측에 검은 손의 해체 및 처벌과 반오스트리아 활동 해체, 사라예보 사건 가담자들에 대한 세르비아 내 재판 개입 등을 요구했고, 세르비아 왕국은 이를 거부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침공했다.

이에 대해 독일 제국의 지원이 확실시된 이후에는 세르비아 왕국에 대한 선전포고 역시 예견되어 있었고, 그에 대한 핑계가 필요했던 것뿐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이 전쟁이 세계 대전으로 번진 진짜 원인은 러시아 제국이 영-불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그래서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노련한 감각으로 유지하던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삼각동맹 체제를 빌헬름 2세가 파기해 버린 것이 독일 제국의 결정적 실책으로 꼽힌다

이에 러시아는 당연히 서로 고립된 프랑스와 1894년에 러불동맹을 체결하며, 독일은 전략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영국 역시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가 충분히 약화되었다고 보고 1907년 영러협상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독일은 이러한 전략적 약점을 전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먼저 프랑스를 치고 나중에 러시아를 손본다!"는 슐리펜 계획을 구상한다

즉, 1차 세계 대전은 각국의 이익의 충돌로 인해서 벌어진 전쟁이며, 특히 발칸 반도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러시아와 발칸반도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갈등이 크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