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인기!
용건만 간단히, 움짤은 한 번 더 생각
금병영에 상의하세요
야생의 이벤트가 열렸다
즐겨찾기
최근방문

역알못과 함께 알아보는 제 1차 세계대전 - 1 벨 에포크 시대

미르띤이마룡
23.10.30
·
조회 761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100년 간의 평화 시대 속에서 지속적인 팽창을 이룬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 팽창 정책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독일 제국으로 대표되는 신흥 제국들의 불만, 유럽 내 민족주의적 갈등 등 다수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추가 설명 : 회색 글씨, 알고 있다면 건너뛰어도 됨

 

100년간의 평화시대 : 벨 에포크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유럽사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보통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경제, 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 아울러 '백년 평화(Century of peace)'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백년평화라고 지칭된 이 시기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존속한 시기(1804 ~1918), 독일 제국이 존속한 시기(1871~1918)와 거의 일치한다. 이 시기의 평화가 메테르니히와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메테르니히는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 유럽 대륙에 다시는 나폴레옹과 같이 유럽의 균형을 뒤엎는 인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 인물이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형성된 체제는 빈 체제라고 불리워지며 백년평화의 토대가 된다.

 

빈 체제:  1814년에서 1815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개최된 빈 회의를 계기로 유럽 열강들 사이에 약속된 복고적(復古的) 세력균형 체제를 이른다.

 

온 유럽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든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난 바탕에 프랑스 혁명, 더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확산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권력층은 단순히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민들의 불만을 받아들이고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구(舊) 체제로 되돌아가야 한다."라 결정하였고 그것이 빈 체제의 주요 골자였다. 

 

때문에 만약 각국에서 이런 자유주의, 내셔널리즘 운동이 일어날 경우 유럽 국가들은 이런 운동을 진압해야 할 책임이 있었고 만약 진압되지 못 할 경우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들이 학살로 진압하였다. 각국은 비밀경찰과 언론 검열 등을 펼쳤고 나폴레옹 전쟁 이전의 정부 체제를 복귀시켰다.

 

비스마르크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 제국 성립 후의 비스마르크는 식민지 확보에 대해서 회의적인 편이었던 데다가 아직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싸우기에는 독일의 힘이 부족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최소한 대립관계는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다.  때문에 1800년대의 후반기는 비스마르크 체제라고도 불린다.

그의 외교와 국내 정책을 요약하면 반불친러와 식민지보다는 국내산업 우선이다.

우선 그는 중부 유럽 내에서 독일 이후의 강대국이 더이상 생겨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

킴과 동시에 유럽에서는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된 1815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 이전까지 약 100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도 전쟁은 있었지만 대부분 발칸 반도 등 동남유럽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났고 주요 열강(영, 프, 독, 오, 러) 사이의 전면적 전쟁은 거의 없었다. 있었다 해도 크림 전쟁,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정도였으며, 다 합쳐도 44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이 시기에 시민혁명이나 참정권 확대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과 2월 혁명, 영국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이 있다.

 

민주주의: 한 국가의 주권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개개인의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사상 또는 그런 정치체제

 

7월 혁명 : 1830년 7월에 프랑스 왕국 파리에서 일어난 혁명. 이 혁명 이후 공화주의의 물결이 주변국으로 퍼져 네덜란드 연합왕국에서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프랑스의 귀족 체제가 붕괴되었고 공화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공화주의: 공화주의(共和主義 / Republicanism)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인이 사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의 확보보다는 시민(혹은 공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德)의 고양을 강조하는 이념을 말한다.

 

2월 혁명: 7월 혁명으로 집권한 루이필리프의 7월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의 자유주의 혁명

 

또한,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1830년에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독일과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분열된 상태를 끝내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민족주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집단적 동질감·소속감·연대감에 기반한 공동체인 nation을 중시하는 사상·행동의 총체를 의미한다 또는 이의 연장으로서 nation에 기반한 nation-state(국민국가/민족국가)를 건국하여 nation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 독일에서는 1834년에 프로이센 주도로 관세동맹이 체결되었으며, 1848년에 독일 통일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국민의회가 열렸고, 1867년에 북독일 연방이 결성되어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전개된다. 결국 1870년에 이탈리아의 통일이, 1871년에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반면,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민족주의의 대두로 인해 위기에 빠졌고,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1867년에 헝가리와 대타협을 하여 이중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대두된 것도 이 시기이다. 당시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과 잉여 자본으로 인한 엄청난 빈부격차는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되는데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었다 

 

 

사회주의: 굉장히 의미가 다양하게 쓰이는 단어로, 좁은 의미로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 또는 ‘공유화’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특히 카를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사상을 총집대성하여 자본론을 집필하고, 공산당 선언을 만듦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각 국은 사회주의 사상가와 단체에 대해 엄청난 탄압을 가했으며[,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는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으며,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이 조용히 힘을 키워나간 시기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는 열강들이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타국에 대해 정치, 경제 및 문화적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사상과 그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엄청난 양의 혁신적인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진보적 사상에 많은 이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책없는 낙관주의라고 탓하기도 뭐한게, 수세식 화장실부터 전화, 무선통신, 철도와 자가용, 여객선,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의 초기형태가 이 시대에 만들어져 보급되었으며,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관광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폴레옹 전쟁을 보고 자란 노인들이 자기 손자가 주말에 기차타고 바캉스를 가는 걸 보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어두운 이면

 

거대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산업혁명,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형성한 시민혁명으로 유럽은 세계를 선도하는 지역이 되었으나 이는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유럽 국가들은 이런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국주의 경쟁을 펼쳤고, 백인의 짐과 같은 식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백인의 짐: 영국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로, 백인이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을 '미개한 인종을 개화시키기 위한 의무'로 포장한 백인 우월주의 및 제국주의 사상을 뜻하기도 한다. 

 

식민지들은 서구 열강에게 자원을 강탈당하고 대신 종주국의 상품을 떠맡는 신세가 되었다.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술과 아편의 제조 및 판매를 독점했듯이 돈이 되는 상품들은 서구 열강이 독점하는 사례 역시 있었다.

식민지의 문화와 관습, 사상은 야만으로 묘사되었고 식민지인들은 외양이나 협력 여부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졌다. 당연히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이 되는 이들은 서구 열강의 지배에 저항한 민족들이었다.

 

영국 인도청이 인도 내 민족들의 사진집을 발간한 적이 있는데 영국인들은 이 책에서 세포이 항쟁에 가담했던 민족들은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야만인이라 묘사한 반면 동인도회사에 호의적이고 세포이 항쟁에 가담하지 않은 민족들은 그나마 문명화된 민족으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시각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파생된 사회진화론이 보편적인 기저 사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 사회적 불평등

비단 식민지 지역뿐 아니라 열강 역시 자국 내에서 극심한 불평등에 시달렸다. 하층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십수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했음에도 주어지는 돈은 푼돈에 불과했고 이는 사회주의 운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토마 피케티는 1789년부터 2010년까지 프랑스의 상속문서와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부의 불평등정도를 조사했는데 1789년 프랑스 혁명이란 대사건이 있었음에도 프랑스의 부의 불평등도는 줄기는 커녕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까지 늘어만 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이 불평등은 벨 에포크 시대(1880~1914년) 때가 정점이었다고 하며 1900년대 기준으로 프랑스 상위 1%의 전체 부의 점유율은 55%에 근접했고 파리의 경우는 1%의 점유율이 1910년 기준 68%에 근접했었다. 1789~1914년까지 상위 10%에게 평균적으로 국부의 80~90%가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복지 제도, 고용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독일 영국 등 몇몇 국가에서 서서히 시작되긴 했지만 제대로 갖춰져 있지는 않았던 시대라 유럽 내에서도 노동자들에겐 매우 힘들었던 시기이며 이 때문에 곳곳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발생하였다.

차티스트 운동 등의 치열한 투쟁 끝에 성인 남성의 보통 선거권은 인정받게 되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정치적 참여에서 배제되었다.

 

차티스트 운동: 1838년부터 1840년대 후반까지 보통선거를 바탕으로 한 의회민주주의의 실시를 요구하며 영국에서 벌어졌던 최초의 노동자 운동. 1850년대 전반까지 영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남성 노동자들은 그래도 그나마 벨 에포크 이전 시기보다는 대우가 좋아지고 사회적 인식이 향상된 시기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이전 시대와 견줘 나아졌을 뿐 21세기의 관점에서는 극도로 열악한 수준이었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 남성 노동자 못지 않게 노동력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여성들의 임금은 낮았고 그들의 노동 역시 하찮게 취급되었다

아동 노동자 역시 이전보다는 법령상 보호규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높은 강도의 노동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혹사 당했다. 3D산업 노동자들은 온갖 산업재해로 다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보상을 받았으며, 심지어 사망하더라도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없었다. 

 

이처럼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였기에 온갖 사회주의 운동이 무섭게 벌어지고, 그 결과로써 공산주의에 대한 추구가 나오게 된 것이다.

 

사회에 반대한 가시적인 사회운동들도 벌어졌으나, 대부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당했고 주동자들은 처형당했다.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19세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열악한 환경은 매한가지였다. 이런 시대에서 신앙은 묵묵부답이거나 아니면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시키는 것에 앞장섰다.

 

-이후

1912년,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진 최대, 최고급 여객선인 RMS 타이타닉이 빙산에 충돌해 허무하게 침몰하여 탑승 인원 중 오직 1/3만 목숨을 건지는 충격적인 대참사가 일어나며 낙관적이던 벨 에포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2년 후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하면서 낭만적인 벨 에포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사냥과 호신에 쓰이던 총들은 전장으로 돌려졌고, 발달한 기계공학과 융합해 방아쇠만 당기고 있으면 알아서 장전하며 수십 명을 죽일 수 있는 기관총, 장애물을 넘어 요새를 무너뜨릴 정도로 파괴적인 포격을 날릴 수 있는 신형 곡사포와 박격포가 등장했다. 

한때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던 철도는 군수물자 조달에 사용되었고, 고귀한 이들을 모시던 자동차들은 장갑판과 기관총을 달고 정찰과 기동전에 투입되었으며, 농사와 중량물 운송에 쓰던 트랙터들은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장갑을 두르고 대포를 실은 움직이는 요새로 탈바꿈했다. 

 이 외에도 비행기, 비행선, 군함, 잠수함 등, 문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었던 과학기술들이 그 문명인들을 살육하는 데 동원된, 이전의 전쟁들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제시한 이 대사건은 벨 에포크의 기반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였다.

댓글
우하하빵파레
23.10.30
벨 에포크 시대 아닌가요
미르띤이마룡 글쓴이
23.10.30
그러네??

😄유머 전체글

입맛 없는 애들은 '계시'를 이해 못하더라.jpg 8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1534
·
23.11.05
풍덩 풍덩 드론 대회 9
웃음
옾월량
·
조회수 6359
·
23.11.05
러시아를 뒤흔든 괴승, 라스푸틴 1
이야기&썰
미르띤이마룡
·
조회수 924
·
23.11.05
영화 배틀쉽에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 이유 7
웃음
찐빵없는앙꼬
·
조회수 1165
·
23.11.05
부모님 용돈 하청 현장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1136
·
23.11.05
완결하기 싫었던 작가님 1
웃음
차도르자브종수
·
조회수 1124
·
23.11.05
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비스트 근황 18
웃음
차도르자브종수
·
조회수 8048
·
23.11.05
우리 조상들은 지금까지 한게 뭐임? 28
웃음
포든든
·
조회수 8065
·
23.11.05
미국에서 현재 유행 중인 치킨 프랜차이즈 23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7149
·
23.11.05
강형욱 훈련사님의 세번째 직업 20
웃음
봄이는강쥐
·
조회수 6660
·
23.11.05
캐나다 밈 티셔츠 7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5584
·
23.11.05
한국 김밥을 걱정하는 이탈리아인 36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6699
·
23.11.05
차단된 사용자의 글입니다 6
웃음
ChimDown
·
조회수 1288
·
23.11.05
때리는 형태의 「노진구」 만와 20
웃음
푸르로닝
·
조회수 5387
·
23.11.05
??? : 웨얼 ... 이즈 ... 사료 ... 코너 6
웃음
푸르로닝
·
조회수 6899
·
23.11.05
??? : 내친구는 혁명가?!
웃음
따쓰께떼꾸따싸이
·
조회수 956
·
23.11.05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로딩이 없음 3
바이코딘
·
조회수 1790
·
23.11.05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6
웃음
바이코딘
·
조회수 1270
·
23.11.05
엄마 가지마!! 7
웃음
여섯시내고향
·
조회수 4902
·
23.11.05
일주어터가 소아비만 출신인 이유.jpg 15
웃음
내친구라이카
·
조회수 8530
·
2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