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겪은 실화) 바서운 이야기 부제:폰퀴벌레
세상 버금가는 잠만보인 나인데,
오늘은 고작 4시간만에 눈을 떴다.
때는 어젯 밤 11시경 아빠의 한 마디
“집 안에 바퀴벌레가 있는 것 같다”
.
살면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던 나는 기겁했다.
그 순간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본 아빠는 애써
“아닐 거야~ 그냥 딱정벌레겠지”
라며 안심시키려 하였지만..
이미 내 가슴 속 깊숙이에는
‘언제 내 방에 바선생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가 자리 잡아버린지 오래.
샤워를 하는 내내 화장실 구석 구석을 스캔하는 나의 눈을 멈출 수가 없었고
내 방 바닥에 떨어진 작은 고구마 껍질 조각을 보고 발작하는 등 다소 호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어찌저찌 모든 잘 준비를 마친 후
나의 영원한 동반자 헤드폰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좋아하는 노래를 감상하던 와중이었다
옆으로 누우려고 왼 쪽 부분 들어올리기 스킬을 쓰는 순간
“타닥타닥”
내 방 선풍기에서,
요 몇 년 간 아무 소리 없던 선풍기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 없던 소리가 나를 엄습해왔다
알 수 없는 소리가 고막을 타고 이소골로 전달되는 순간 내 온 몸의 말초신경이 멈춰버리는 느낌이었다.
우리 아빠처럼 벌레 잘 잡는 대인배들은 절대 느낄 수도 없고 이런 나를 비웃겠지만
저 순간만큼은 살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정도였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 상태 그대로 굳어 타닥타닥 소리를 asmr처럼 듣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도 느꼈다.
그리고 저 소리가 바퀴벌레 혹은 그냥 벌레가 날아가다가 선풍기에 끼어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선풍기 뒷쪽에 붙어 앉아있는데 날개만 닿아서 나는 것인지 도무지 추리를 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셜록 정주행 3번 정도 할 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폼으로 읽은 것인가?
또 한 번 자학의 시간이 찾아왔다.
타닥타닥 소리가 계속 났으면 그래 껴서 죽었겠지 싶었을 텐데
소리는 중간중간 멈췄다가 다시 나고 이를 끊임 없이 반복했다.
마치 나를 농락하듯이 말이다
미츠하와 타키 사이의 잃어버린 3년은 우스울 정도,
내 시간은 체감 30년이었다.
선풍기에 후레쉬를 비춰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불빛에 이끌려 나에게 날아올까 그 짓도 할 수 없었다.
바퀴는 빛을 싫어한다지만 일단 그에게 나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거실로 에프킬라를 가지러 나갈 수도 없었다 그에게 나의 움직임이 포착될까봐.
혹여나 얼굴로 날아올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그러나 바퀴의 숨막히는 공포가 아니라 진짜 숨 막히게 생겨서 곧장 이불을 들춰냈다.
어느덧 시계를 확인해보니
-오전 4:55
내일 하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서움이고 나발이고 슬슬 몸도 램수면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오전 09:05
“타닥타닥”
아뿔싸,
“그” 소리에 알람이라도 들은 듯 눈이 번쩍 떠지고 말았다.
아침이라 잘 보이기도 하고 얘를 처리해야 방을 계속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히 거실로 나가 에프킬라를 집어 들고 왔다.
선풍기를 향해 에프킬라를 난사하며 그 분이 어디에 끼어있는지 좌우0.2 난시의 눈으로 열심히 동체시력을 굴려보았다
학교 시력 검사보다 진심을 다해 임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었다.
선풍기는 여전히 타닥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간신히 찾은 안경을 쓰고 보아도 작게 낀 먼지뭉치만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을 뿐
벌레의 흔적은 온데간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의 상실감.
어제의 나는
아니, 오늘 새벽의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었는가
무얼 위해 투쟁하고,
공포에 떨고,
자학하며,
불안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인가
허무함과 동시에 벌레가 없다는 안도감
이 사이의 모순
나는 실망해야할지 기뻐해야할지
감정의 저울 한 가운데에 서서 목적을 잃었다.
-폰퀴벌레 끝
p.s 그냥 선풍기 오래돼서 나는 소리였음
재미로 휘황찬란하게 써봤슴요
무서운 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