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한 용병 국가를 araboza

영화, 그리고 드라마로도 나온 슬리피 할로우에선 목 없는 기사(headless horseman)이란 인물이 나온다
비록 목 없는 기사는 픽션이지만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기원하고 있다
영화에서 목 없는 기사는 미국 독립 전쟁 시절, 영국에게 고용된 용병이며 헤센(Hessen)이란 곳에서 왔다는 설정이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당대 독일/신성로마제국의 지도]
헤센은 오늘날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프랑크푸르트가 속해있는 지역으로 과거에 헤센-카셀 방백국이라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헤센의 엽병(Jaeger)을 묘사한 그림]
헤센 방백국은 자국의 산업이 빈약해서 대신 군대를 외국에 파병하고 고용주들에게 대금을 받아 국가가 유지되고 운영되었다
즉 국가에서 용병을 국책사업으로 운영했던 셈이다
근대 유럽 전쟁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제러미 블랙(Jeremy Black) 교수의 책에 따르면
18세기 기준 헤센의 인구중 약 5.2~6.7%가 군인이었다고 한다. 즉 반올림 한다면 인구의 7%가 군인인 셈이다

“엥? 이게 얼마나 높은거야?” 싶을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의 군대들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사악한 그 문장]
우선 현대 대한민국과 비교해보자
202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부사관 포함 약 50만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국민은 약 5000만명이다
이를 계산해본다면 한국은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이 약 1%이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은 0.3~0.8%이며 한국은 엄연히 분쟁국가이기 때문에 평균치를 넘어선 수치이다

“엥 근데 현대 국가랑 근대 국가랑 비교하는건 무리수 아니냐?” 할수 있다.
맞는 말이다.

현대는 대다수의 국가가 일명 ‘맬서스 트랩’이라 불리는 주기적인 식량난에서 벗어난 결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또한 18세기엔 총과 대포는 있을지언정 전차, 미사일, 전투기, 무인기 같은 첨단 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등 군사 제도의 차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시대 타국들과도 비교해보자
18세기 당시 대표적인 지역 강국이자 제국이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이 1.1~1.5%였다

오늘날 ‘군국주의’의 대명사로 곱히고 당대에도 대규모의 군대를 갖춘걸로 유명했던 프로이센의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은 4.2%였다

즉 헤센의 7%는 현대에도 당대에도 정말 비정상적인 수치란걸 짐작해볼수 있다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에선 아우터 헤븐이란 국가가 국민이자 용병을 '수출'하며 사는 나라로 나오는데 헤센은 그걸 현실에서 해낸 것이다.
그런데 헤센이 이 비정상적인 비율의 군대을 갖추고 용병 수출이란 국책을 시작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때문이었다
말했듯 헤센은 딱히 이전부터 군대로 유명한 지역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농사 짓고 먹고 살던 지역중 하나였다

[30년 전쟁을 묘사한 당대의 판화. 이 당시 독일에서 나무에 목매달린 시체들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1618년 시작된 30년 전쟁으로 인해 헤센에게 큰 비극으로 돌아왔다. 30년 전쟁은 약탈과 강간, 파괴, 학살 등 온갖 말 못할 끔찍한 사건들이 독일 전 지역에서 벌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선 식인까지 벌어졌다. 헤센은 이 와중에 전 국토의 농지와 기반 시설들이 모두 전쟁으로 파괴되며 생계가 막히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헤센의 영주였던 카를 1세는 생계를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전쟁으로 나라에 남은 건 오랜 전쟁으로 숙된된 병사들 뿐이란걸 깨닫고 자국의 병사들을 용병으로 전환시켜 타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처음엔 생계를 위해 시작된 용병업도 비록 잘 싸우진 못하지만 규율이 잡혀있던데다가, 한 나라의 영주가 직접 보증했기에 신뢰를 쌓게 되었다.
즉 가성비를 인정받게 된 셈이다

[어쌔신 크리드 3에 등장하는 적병 '예거'. 헤센인 용병이란 설정이다]
그 결과 헤센은 아예 용병업을 국책사업으로 삼게 되었고 헤센인은 16세에서 30세까지 5~6피트(160~180) 키의 모든 건장한 남성들은 징병대상이 되었으며 24년간의 의무 복무 기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일개 사병의 1달치 봉급이 당시 소 1마리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헤센인들은 군 복무를 받아들였다

헤센의 조건은 헤센이 신교(개신교)였기 때문에 구교(가톨릭)인 진영에겐 용병을 팔지 않겠다는 조건만이 있었다
주로 육군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영국이 이들의 주요 고용주가 되었는데 1776년 미국 독립전쟁때도 영국에게 고용되어 약 2만명의 헤센 용병이 파견되어 많은 전투를 치루게 되어 당시 미국에선 Hessian(헤센인)이란 말이 ‘용병’을 뜻하는 은어로도 쓰일정도로 이들의 활약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나중에 슬리피 할로우의 ‘목 없는 기사’ 역시 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이후 헤센은 미국 독립전쟁 이후 용병업이 쇠퇴하다가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베스트팔렌 왕국에 병합되어 멸망하게 된다
현재는 독일 금융업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옛날처럼 용병업으로 먹고살진 않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 Hessian (soldier)
제러미 블랙 - European Warfare, 1660–1815
https://www.fmkorea.com/best/3739723588

처음으로 학술적인 느낌이 아닌 좀 가벼운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분석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