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당시 한국의 도청들(2) - 있던 건물 그대로 쓰는데...
서론
이번엔 경상북도, 전라북도의 도청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도청 모두 조선시대 감영을 그대로 청사로 사용했지만 그 양상이 많이 다릅니다. 여기에 집중해서 이 글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상북도청(慶尙北道廳)

1896년 신설된 경상북도의 도관찰부 소재지는 경상감영 소재지였던 대구. 대구 중심에 있던 경상감영(중에서도 선화당)을 그대로 도관찰부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제국은 이 선화당 도관찰부를 자신들이 조선에서 쫓겨나는 그날까지 그대로 도청사로 써먹습니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을 써먹은 관공서들이 결국 관사 협소문제로 줄줄이 헐려나간걸 생각해볼 때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 빼고 나머지는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現 대구근대역사관)같은 관공서가 세워지며 헐려나간건 안자랑이지만....;;
암튼, 도청이 된 대구선화당은 해방 이후에도 도청사로 쓰였습니다. 1966년 4월 1일, 경북도청이 작년(1965년) 산격동에 세워진 새 건물로 청사를 옮기며 대구선화당은 도청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공원으로 개조되며 행정기관으로서의 기능도 잃어버렸지요.(이 새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로)
이렇게 만들어진 공원은 초기엔 중앙공원이라 불렸지만, 세기말 문희갑 대구시장이 경상감영 복원을 노리면서 '경상감영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전라북도청(全羅北道廳)

1896년 전라도를 남북으로 나눴는데... 어라? 전라감영이 전북으로 넘어갔네요? 간단하네요. 경상북도가 그랬던것처럼 전라감영을 도관찰부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제국은 경술국치 직후 도청으로 써먹었습니다. 조선강점 1년만에(1911년) 세무감독국으로 도청을 옮겼지만 청사가 좁다고 10년만에 감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잔챙이 건물들을 몽땅 헐고 2층짜리 새 건물을 세운 상태로 말이죠.

이 청사는 광복 이후에도 도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6.25 전쟁이 한창인 1951년 도경 무기고에서 난 화재 때문에 가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철거를 피했던 전라감영 시절의 건물들도 함께 가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휴전협정 이후, "어차피 새로 지어야 할 전북도청 우리동네에 짓는거 어떰?"이라며 이리시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전북도의회에서 표결에 부쳤는데.... 1표가 모자라서 실패했고, 결국 가루가 된 전주의 도청사가 재건되어 전북도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도청사는 2005년 청사 협소 문제로 효자동의 現청사로 옮겨지며 행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이후 도청사는 폐건물로 남았다가 2015년 전라감영 복원을 위해 철거되었습니다. 현재 이 자리엔 복원된 전라감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조
나무위키 경상북도청, 전라북도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대구 경상감영공원 일대 국가 사적 지정, 국민일보, 2017년 4월 25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36702
[대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근대건축 .7]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영남일보, 2015년 10월 1일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51001.010070731450001
"호남의 수부 전라감영에 대해 알아보자", 전북일보, 2020년 8월 18일
https://www.jjan.kr/article/20200818714915
호남의 수부 '전라감영' 그 모습을 드러내다, 전북일보, 2020년 6월 21일
https://www.jjan.kr/article/20200621711292
『대구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 문화유산 답사, 티스토리, 2013년 4월 22일
https://younghwan12.tistory.com/4195
옛 전라북도청사 역사 속으로, 엽토51, 2015년 9월 3일
https://blog.naver.com/jcjkks/220469611176
원본 : https://blog.naver.com/mrfldpeod/223095276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