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웹)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

미방
나는 평소에 특이한 습관이 있습니다.
무작위로 틀어놓은 음악의 다음순서를 떠올린다던가
다음에 도착할 버스의 번호를 생각한다던가 등의
그저 몸에 배어버린 어쩔수 없는 습관입니다만..
가끔은 나도 깜짝 놀랄만큼 잘 맞아들어가기도 해서
나름의 재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예감’이라 해야할까요.
‘예감’이라고 말하기엔 종종 맞아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그런 ‘감’이라는게 나에겐 있습니다.
그런 ‘감’이 맞아들어갈때의 느낌은...
평소보다 약간은 나사가 풀어진듯한 느낌이랄까요.
약간의 멍하면서도 뭔가 명료한 상태.
아. 다음은 무엇이구나. 라는 것이 느껴지곤 합니다.
대체로 이럴때의 ‘감’은 매우 잘 맞아들어갑니다.
심지어 무작위로 선정된 300여 곡 중 연달아 12곡의 순서를 맞추어본적도 있습니다.
우연이라 말하기도 능력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한 ‘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감’이란 것은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적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리곤 합니다.
- 물론 내가 느낀 ‘감’이 정확하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아직까지 미혼입니다.
지금은 이미 결혼하기에도 늦은 나이지만
이런 저런 곳에서 소개가 들어오면
만나고 한시간 정도면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곤 합니다.
- 물론 역시 정확하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2/3정도로 나에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란 남자도 그다지 매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란 소리겠지요.
- 오히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곤합니다.
물론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잘 숨기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이쪽의 이야기를 돌려말하는 능력이 있어서
내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쉽게 끝나버리곤 합니다.
여튼 서론이 길었습니다.
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나쁜 일을 생업으로 사는 사람부터
항상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많은 직종의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폭력배를 싫어합니다만...
저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성실하다고 불리는 사람들보다 좀 더 감정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격한 부분도 있지만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사람도 많아서
오히려 성실한 사람보다 대화하기 더 좋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술잔을 던져버린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해도
그들의 눈에서는 살의가 느껴지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겁을 주기위한 과잉행동이 많은 경우가 더 많지요.
그래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화가 통해서 기분좋게 술을 마시게 되곤합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언제나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서
술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돈 잘쓰고 사람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분좋게 술 한잔 마시고 이야기가 길어질 무렵
그 사람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감’이 왔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요.
두려움인 듯 하면서도 분노가 섞인 듯한.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기분좋게 마시는 술자리에서 느낄만한 감정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째서일까. 반쯤 술에 취해버린 탓에 이상한 ‘감’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여
술기운을 빌어 그의 마음을 열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A씨. 어떻게 항상 그렇게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실 수 있나요?
피곤하진 않으세요? 나는 항상 굳어버린 얼굴이라 사람들이 매우 어려워하던데..‘
‘무슨소리야. 너도 지금 능글맞게 웃고 있으면서’
‘아. 그거야 A씨랑 같이 술한잔하니 기분좋아서 그렇죠.하지만 형님은 항상 사람에게 잘 해준다고 소문난 사람이잖아요.’
‘내가 그런가?’
씁쓸하게 웃는 그의 눈빛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는 후회와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에이. 형님. 비결 좀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웃으면서 사람을 대할 수 있나요? 연습이라도 하시는거에요?’
‘.....’
말없이 술 한잔을 비우던 A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울 수 없으니까 웃는거지. 안그래? 하하하’
그는 갑자기 어울리지도않는 호탕한 웃음을 던졌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거짓으로 그는 나에게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아련한 진심이 담긴듯한 한마디에 나는 다시 말을 건넸습니다.
‘뭐. 평생 울어야할 일이 있나요. 살다보면 나아지지 않겠어요?’
그 순간 그의 눈에선 굉장한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마치 건드리지 말아야할 역린을 건드린 느낌이랄까.
‘자! 일단 원샷하고 보자!’
그는 나에게 서둘러 술을 섞어 건네주곤 건배도 하지않고 단숨에 마셔버렸습니다.
술이 들어가자 그의 눈에선 분노가 가라앉고
또다시 후회와 고통처럼 보이는 ‘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공포감.
갑작스런 감정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는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가 건네준 잔을 단숨에 들이켜버렸습니다.
‘왜 갑작스레 그렇게 달리세요.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
그는 매우 차가운 눈빛으로 앞만 바라보며 말없이 술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입맛이 쓴 듯 입을 다시며 소주를 몇잔 마시던 그는 갑작스레 말을 건네왔습니다.
‘너. 유령이란거 믿냐?’
'예? 에이 나 그런 이야기 좋아하는거 아시잖아요.‘
‘너. 유령은 본 적 있냐?’
‘평소에 감이 좋아서 그냥 어느정도 느끼는 정도에요.
아. 여기는 위험하구나. 라는 그런 정도?‘
‘그래? 나는 어때보이냐?’
그의 질문에 나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사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금 곁에 있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마치 바다에 한참동안 나갔던 사람에게 느껴지는 바다냄새랄까.
무언가를 묻혀온 듯한 느낌.
‘오! 형님 집에 귀신이라도 나오는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업이라도 있는지
사는 집마다 뭔가 느껴지는 일이 많아.‘
‘와. 그거 무서운데요?’
하지만 진짜 무서웠던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와 이런 이야기를 진행할 수록 그 바다내음같은 ‘감’이란게 점점 강해져왔거든요.
살짝. 위험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술 마신김에 말하는 거니까 그냥 웃어넘겨도 좋은데
이번에 이사한 집이 영 좋지않은 곳 같아.‘
‘왜죠?’
‘옆집에 사는 사람이 이전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고 당시에 아내랑 아이가 죽었다나봐
그래서인가.. 밤마다 아이 우는소리가 들리곤 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머릿속에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깜짝놀랐습니다만...
나는 애써 나의 두려움을 감췄습니다.
하지만 이건 위험해.라는 직감이 나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에이. 설마요.’
‘거봐. 내가 그냥 웃어넘기라고 했지?’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두려움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저 눈빛에서 넘쳐나는 두려움은
나를 감싸버려서 나도 모르게 손에 있는 술잔을 꽉 잡고
그가 따라준 술을 한번에 들이키게 만들었습니다.
‘기분 이상하면 그냥 이사하시는게 어때요?’
‘야야. 돈이 어디있냐. 그냥 살아야지.’
그의 웃는 얼굴은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두려움또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그는 왜 다른 곳으로 가지않는 걸까...
나는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사고였나봐요?’
‘응. 여자랑 아이는 즉사하고 남자는 안전벨트 때문에 찰과상만 입었지.
충격이 컸는지 조만간 이사할거라 하더라고.‘
‘에이. 그럼 그 사람이 이사하면 괜찮아지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미묘하게 그의 얼굴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곁에 있는 나마저 두려워질만큼.
그에게선 이제 지워버릴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러다 평생 따라다니는건 아닌지 몰라. 하하
한잔 더하자고!‘
그는 서둘러 말을 접고는 또다시 술을 섞어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을 지우기위해
그리고 괜한 걸을 물어서 미안한 마음에 거부하지않고
계속 마시다보니
거의 반쯤 기절한 상태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아는 지인을 통해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평소 다니던 길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그는 그 날도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잘 아는 후배에게 운전을 시켜서
집으로 돌아들어가는 길의 입구(라고 해도 그다지 가깝지 않은 길입니다만.)에서
괜찮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는 후배에게
말짱하게 깬 얼굴로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 라고 말하고는 전혀 흔들림없이 차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후배도 올라가는 길이 커브는 있지만
음주단속도 없을테니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차는 급커브구간에서 옆으로 쓰러지듯 도랑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매일 같이 다니는 길이었고
그가 평소보다 술을 적게 마셨다는 점.
이전에 타지에서 크게 사고가 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항상 과속을 하지 않았고 안전운전을 했다는 것과
음주운전이라면 어디 부딪히는게 정상일텐데
차가 옆으로 전복되었다는 점...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가 죽은 뒤 찾아갔던 그의 집에는
그가 말한 이웃이란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산 중턱에 위치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으니까요.
출처 https://m.ruliweb.com/hobby/board/300145/read/28196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