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아이의 방

미방
글 중간에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감상하시면서 놀라실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커다란 눈이 나를 아래서 올려다 보았다.
어린아이였다.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대로 헛바람을 들이키고 그저 눈을 뜬 상태로 내 무릎 근처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처다보는 아이를 그냥 같이 마주보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는 한참을 나를 처다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 입꼬리가 잔뜩 찢어지며 누렇게 보이는 치아들이 드러났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눈은 마냥 커다랗게 뜬 그 상태로 나를 처다보고 입은 잔뜩 찢어져 입가로 침을 질질 흘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저 계속 내 얼굴만 보며 귀까지 찢어진 입으로 웃어댔다. 녀석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시선에서는 절대 벗어나지 않고 날 놀리는 것 처럼 내 얼굴을 훑어봤다. 얼마나 그렇게 움직였을까? 녀석은 이내 마치 기계가 턱 하며 멈추는 것 처럼 멈춰서더니 이내 그 찢어진 입을 벌렸다. 새카맣고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같은 곳으로 녀석의 치아에 고여있던 침들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들 처럼 줄줄 흘러들었다.
날 먹으려는건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공포에 차라리 졸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조차 없었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아마 이 소리로 보면 안방이 열리는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자 날 처다보던 녀석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더니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나갔다.
오래된 집이라 창문이 작았지만 그래도 나 하나 나갈 정도는 충분했다.
낑낑거리며 창문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작은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우리 아기 어디갔니? 또 숨었니?"
소름 돋는다.
빌어먹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 병ㅇ같이 생긴 녀석이 겁에 질려 튈 정도면 지금 작은 방에 들어온 녀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창문 밑에서 입을 손으로 막고 숨조차 쉬지 않은체 작은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가~ 우리아가 맘마먹어야지?"
엄마인가?
언제든 아까 걸어가던 길로 달릴 준비를 하고 2차선 도로쪽을 바라보는데 아까 그 눈알 커다란 녀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섬뜩한 기분이 내 머리위에 느껴졌다.
달릴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확 밀려나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 소리는 섬뜩했다.
옷가지가 창틀에 스치는 소리...
스스슥- 스스슥-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밖으로 몸을 내밀어도 한번 스윽 하고 스치는 정도의 소리가 나야 할텐데 그 소리는 계속 들렸다.
앞으로 달려야 하는건 알았다. 아니 알았었다. 그건 생각을 할 수 있을 당시의 얘기었고, 그때는 아무생각 없이 그냥 떨리는 다리와 세어나오는 비명을 막는 손 만이 내 몸에서 움직이는 전부였다.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턱은 경직되어서 이빨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거의 반 강제적으로 턱이 움직이며 위를 올려다 보았다.
뭔가에 끌려 올라간 것 처럼 위를 올려다보자 잔뜩 산발한 머리에 아까 내 눈 앞에서 얼쩡거리던 녀석과 비슷하게 커다란 눈에 찢어진 입을 한 아마도 여자이지 않았을까 싶은 뭔가가 긴 허리를 창 밖으로 내밀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 으아..."
"넌 누구니?"
그때 갑자기 마법이라도 풀린 것 처럼 몸이 벌떡 일어나 길가로 달렸다. 풀들이 발을 붙잡고 뒤에서 금방이라도 그 괴물의 손이 내 목을 낚아챌 것 같았지만 다행히 난 길에 닿을 수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올라서자 거의 50미터는 되는 거리를 숨조차 쉬지 않고 뛰었는지 폐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거리를 달려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창문은 닫혀있었고 대신 작은 방 쪽에서 아까 그 산발한 머리의 괴물이 천천히 몸을 빼고 있었다. 마치 긴 뱀처럼 보이는 그것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참을 몸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어서면 키가 5미터는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난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산길을 달렸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가족이고 학교고 친구들이고 다 버리고 혼자있고 싶다며 뛰처나온 내가 병ㅇ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도 차 한대 보이지 않는다.
한시간 가까히 걸었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달렸다.
중간중간 뒤를 바라볼 때 마다 마리오네트 처럼 삐걱 거리며 움직이는 커다란 괴물이 보였다.
그것은 좀비처럼 내게 손을 뻗으며 날 따라 걷고 있었고 나는 미친듯이 달릴 따름이었다.
정말 필사적으로 달려 어느덧 삼척시내에 다다랐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날 따라오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그대로 삼척시내 경찰서로 달려갔고 온 몸이 피투성이인 나를 보고 경찰이 깜짝 놀라 동해에 있는 병원으로 경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경찰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었지만 난 그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계속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되뇌였던 것 같다. 경찰들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딱히 조서 같은 것을 꾸밀 틈도 없이 날 병원에 보냈다.
동해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길 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딜가든, 어떤 산을 지나치든 녀석은 먼 발치에 서서 나를 처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경찰들이 부축하여 응급실에 들어가는 와중에도 멀리에서 녀석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삼척에 가지 않았다.
엊그제 화력발전소 공사에 지반문제가 불거지며 시공문제를 맡은 우리 회사가 나를 파견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세달간 이 지역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근처 원룸을 하나 빌려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강원대 때문에 사람이 많아져 왁자지껄한 삼척시내를 바라보다가 가끔 담배한대 피며 먼 발치에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직도 날 바라보는 저 하얀 괴물을 말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dndb018/220774306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