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을 체포했는데, 위법한 체포라구요?
-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범인을 잡을 때 경찰이 이런 대사를 외치죠. “당신을 강도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포기하고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가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는 것이라는 점은 다들 상식적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이 미란다 원칙은 왜 경찰이 마르고 닳도록 읊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법이 범인을 체포하기 전에 반드시 이를 체포의 대상자에게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체포와 피의사실 등의 고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우리가 본 문장과 이 법 규정의 내용은 좀 다르지 않나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용되는 저 문구는 사실 원조격인 미국의 미란다 원칙을 그대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 법에서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실제로 경찰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할 때는 “당신을 어떤 범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도 있고,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을 한답니다. 그런데 또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분명히 저 규정에서는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잖아요? 이는 형사소송법 제214의 2 제2항에서 체포시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음을 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미란다원칙을 고지할 때 두 규정에 담긴 내용을 합쳐서 말하는 것이지요.
2. 소말리아 해적을 체포하긴 했는데…
현행범 체포라는 말이 계속 등장합니다. 우리는 여기는 현행범 체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궤도님이 말씀하셨듯이 정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법에서는 현행범 체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211조(현행범인과 준현행범인) ①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을 현행범인이라 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현행범인으로 본다.
1.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고 있을 때
2. 장물이나 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흉기나 그 밖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때
3. 신체나 의복류에 증거가 될 만한 뚜렷한 흔적이 있을 때
4.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고 할 때
제212조(현행범인의 체포)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법의 정의에 따르면 현행범인이란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도둑을 예로 들면 물건을 훔치고 있는 중인 사람 또는 물건을 다 훔치고 난 직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근데 여기서 의문은 남습니다. 직후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대법원은 '범죄의 실행행위를 종료한 직후'라고 함은, 범죄행위를 실행하여 끝마친 순간 또는 이에 아주 접착된 시간적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보아 체포를 당하는 자가 방금 범죄를 실행한 범인이라는 점에 관한 죄증이 명백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1도300 판결)
이렇게 우리는 현행범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또 이상한 규정이 있네요. 현행범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대요. 그럼 도둑이 도망가고 있으면 내가 그냥 따라가서 잡으면 되는 것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다만 다음의 규정의 적용을 받습니다.
제213조(체포된 현행범인의 인도)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또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한테 현행범을 인도해야 해요.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범인의 신병을 인도해야 하는 거죠. 근데 이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뭐 범인을 재판할 것도 아니고, 때릴 것도 아닌데 우리가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렇게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을 규정으로 만들었구나 싶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규정이 문제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우리의 상선 하나가 나포됩니다. 삼호주얼리호죠.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청해부대는 급히 출동하였고, 우리 선원들과 석 선장을 구해내고 이국종 교수님이 선장님을 살려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입니다. 그런데 범인들을 막상 체포하고 나니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체포한 사람들은 검사나 사법경찰관리가 아니었던 것이에요. 군인은 검사나 경찰이 아니니까요. 이 사람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와서 재판을 해야 하는데, 검사나 경찰이 아닌 사람에 의해 체포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형사소송법 제213조 제1항의 규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냐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만일 이 사건의 체포가 형사소송법 제213조를 위반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체포를 한 사람들에게 받은 진술들은 증거능력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증거로 쓸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법리는 독수독과 이론(독나무에서는 독열매가 열린다는 이론)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체포 자체가 위법하기 때문에 이 해적들을 즉시 석방을 해줘야 합니다. 아니 우리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 소말리아 해적을 풀어줘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나요.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서, 이 소말리아 해적들은 우리나라에 압송되어 구속된 채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대법원은 체포 및 우리나라에 송환하여 신병을 인도하는 이 과정이 적법하였는지 여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합니다.
여기서 ‘즉시’라고 함은 반드시 체포시점과 시간적으로 밀착된 시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인도를 지연하거나 체포를 계속하는 등으로 불필요한 지체를 함이 없이’라는 뜻으로 볼 것이다. (중략) 청해부대 소속 군인들이 피고인들을 현행범인으로 체포한 것은 검사 등이 아닌 이에 의한 현행범인 체포에 해당하고, 피고인들 체포 이후 국내로 이송하는 데에 약 9일이 소요된 것은 공간적·물리적 제약상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인도를 지연하거나 체포를 계속한 경우로 볼 수 없으며, 경찰관들이 피고인들의 신병을 인수한 때로부터 48시간 이내에 청구하여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하여 피고인들이 구속되었으므로, 피고인들은 적법한 체포, 즉시 인도 및 적법한 구속에 의하여 공소제기 당시 국내에 구금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도12927 판결)
결국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13조 제1항의 즉시의 의미를 다소 완화하여 체포와 검사 등의 인도시까지 불필요한 지체를 하지 않으면 족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비단 위와 같이 극단적인 사례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까 우리가 도둑을 현행범으로 붙잡긴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교통사고가 나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였다고 칩시다. 경찰은 2시간이 지난 후에나 도착을 했고 우리는 범인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겨우겨우 인도를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즉시 범인을 인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법제정자는 사인이 현행범인을 체포할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예컨대 범인에 대한 응징, 고문 등)을 예방하기 위해 즉시 적법한 체포 권한이 있는 검사 등에게 인도하라고 명령을 한 셈이지요. 다만 그것은 단지 시간적으로 체포와 인도가 붙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급적 빨리 경찰관 아저씨한테 인도해라 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3. 영화나 드라마에서 체포는 왜 꼭 긴급체포일까
소말리아 해적들을 적법하게 체포한 것이었고 그들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마치기는 아쉬워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체포 장면의 대표적인 오류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긴급체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긴급체포영장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장입니다. 왜냐하면 긴급체포는 애초에 영장에 의한 체포가 어려운 때에 말그대로 긴급하게 “영장없이” 하는 체포이기 때문이지요.
제200조의3(긴급체포)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사형ㆍ무기 또는 장기 3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유를 알리고 영장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이 경우 긴급을 요한다 함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등과 같이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를 말한다.
그럼 저 재벌집 막내아들의 긴급체포서는 무엇일까요. 저 긴급체포서는 범인을 체포한 이후 작성하는 서류입니다. 영장이 아니고,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3항에 따른 문서입니다. 이는 체포시에 그 체포가 적법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의 저 장면에서는 검사가 긴급체포영장이라고 제시를 했기 때문에 정말 맞는게 하나도 없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은 꼭 그냥 영장에 의한 체포를 하지 않고 긴급체포에 집착할까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긴급체포라는 그 말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긴급"이라는 말이 주는 그 맛 때문에 긴급체포라는 말을 쓰는 것이죠. 또 체포하는 장면이니까 영장 같은 거 보여주면 더 확실하겠지?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긴급체포영장이라는 걸 만들어낸 셈이죠. 허허
사실 이 긴급체포 장면을 제대로 정확하게 고증한 드라마도 있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입니다. 여기서는 경찰이 긴급체포를 하면서 피의자에게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5에 따른 고지를 하지 않고 그냥 체포를 하자 우영우가 불법 체포라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게끔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변호사물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정물은 정말 기본적인 고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훌륭하죠 허허.
4. 마치며
오랜만에 휴가를 받게 되어 심심하던 차에 뭔가 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문든 체포하겠어 라는 애니가 생각나서 체포와 관련된 몇가지 쟁점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잘못 묘사되고 있는 체포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제가 최근에 재밌게 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띄워드리며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