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민가수 이애리수의 생애
위 노래는 이젠 고인이 되신 최초의 국민 가수 이애리수 선생님의 황성옛터(또는 황성의 적)라는 노래입니다.
고등학교 때 한국사책 구석에 실려있던 노래인데 당시 문득 궁금하여 유튜브에 찾아보니 들을 수 있더라구요.
직접 들어보니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곡조가 들리는게 참 이게 조선시대 노래라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시절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분도 오묘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음악 추천게시판에 써야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노래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신 이애리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1910년 출생으로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9살의 나이에 신파극단에 데뷔합니다. 이후 민중극단을 거쳐 18세의 나이에 ‘황성옛터’를 발표하여 5만장 판매를 기록합니다. 당시 오디오가 엄청난 고가였던 점을 고려하면 5만장은 엄청난 기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즈음 이애리수 선생님께선 남편분과 결혼을 약속하지만 해당 집안에선 반대가 심했고, 1933년 음독자살을 시도, 그 결과 결혼 허락이 떨어져 슬하에 2남 7녀를 두게됩니다.
단 결혼조건이 존재했는데 바로 연예계 은퇴였습니다. 조건을 받아들인 선생님께선 결국 은퇴하고 남편분과 해로합니다. 이후 잊혀진 그녀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러던 2008년 10월 28일, 그녀는 경기도 소재의 요양병원에서 98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음이 전해집니다.

당시 이애리수씨의 생존 소식은 충격적이었는데 학자들 역시도 그 어떤 외부활동을 보이지 않던 이애리수씨를 고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1991년 25주년 가수의 날 기념행사에서 작사가 반야월이 고인으로 언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 누구도 근황을 알 수 없었으니 가요계 일각에선 이미 고인으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자재분들조차 ”어머니가 직접 ‘과거에 가수 생활을 했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가수였던 줄 몰랐다“고 할 정도 였으니 말 다했죠. 노년기에는 안산시에서 큰아들과 함께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생활하셔서 주민들에겐 한복 할머니로 불리기도 했다죠.
하지만 결국 생존이 확인된지 얼마후 2009년 3월 31일 해당 요양병원에서 향년 99세의 나이로 작고하시게 됩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황성옛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심수봉 선생님이 안가에서 황성옛터를 부르니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배경과 별개로도 가끔 생각나는 노래니 한번쯤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출처1: https://namu.wiki/w/%EC%9D%B4%EC%95%A0%EB%A6%AC%EC%88%98
출처2: https://namu.wiki/w/%ED%99%A9%EC%84%B1%EC%98%9B%ED%84%B0
출처3: https://m.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31857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