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고양이

빼곡하게 서 있는 건물들 틈 사이로 주황빛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주황색이라고 해서 샛노란 색은 아니었지만, 또 마냥 빨갛지는 않기에 다홍색이라고 칭하는 게 괜찮을 듯해 보였다.
딱 적당한 오후 5시의 색감이었다.
날씨는 쌀쌀하긴 했지만, 마냥 춥지는 않았기에, 적당한 10월의 날씨 같았다.
“그래서 넌 고양이를 왜 좋아하는 거야?”
그녀가 날 바라본 채 한 손으로는 검은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글쎄.”
내 대답에 그녀는 다시 물었다.
“제대로 대답해 봐. 이유 없어?”
그녀의 물음에 대해 답하려면 한참 옛날로 가야 한다. 너무 힘들어서 머릿속 우주 저 구석에 박아놨던 기억.
나는 남의 집에서 태어났다. 얼마 하지도 않는 돈도 없어서, 1층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던 동네 아줌마네 2층 살림집에 그 집 둘째 딸이던 중학생 누나의 방에서, 나는 이름조차 모르는 아줌마한테 인생의 첫 손길을 느꼈다.
당연히도 어린이집은 근처도 가본 적도 없었고 유치원 다닐 시기엔 집에서 혼자 만화나 봤다.
마침내 초등학교에 가게 되자, 나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심심함과 안녕을 고할 첫발을 뗄 준비가 됐음을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2년째가 되던 여름방학 어느 날,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반장의 집에 초대받았다.
집은 커다란 전원주택에 마당에는 진돗개를 풀어 키웠고, 안에서는 뽀얀 털을 가진 하얀 고양이가 세 마리나 있었다.
어머님은 딱 봐도 기품 있어 보이셨고 골프 약속 때문에 급하게 집을 비우셨다.
우리는 반장의 방에서 다 같이 모여 게임도 하고 만화도 읽었다.
내 인생을 바꾼 사소하지만, 거대한 사건은 그 순간 일어났다.
우리는 방 한가운데에서 두꺼운 사전을 받침대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입이 짧았던 나는 먼저 먹고 일어나 침대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던 녀석은 곧 내 마음을 알았는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코가 간지러웠던 나는, 참을 새도 없이 크게 재채기를 해버렸고 놀란 고양이는 창문 바깥으로 도망쳐 버렸다.
라면을 먹던 반장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신발은커녕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자신이 아끼던 고양이를 잡으러 나갔고 아이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이쁜 털을 가진 하얀 고양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님은 내게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왠지 반장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바닥만 바라봤다.
반장의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나중에 집에 가서 물어보니, 어머니는 나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셨다.
소문은 빠르고,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져서 퍼져 나갔다.
나중에는 얼마나 왜곡됐는지, 내가 반장의 개까지 잡아다가 끓여 먹었다는 소문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에 올라갔다.
달라진 건 크게 없었지만, 친구도 조금 생겼었다.
물론 친구가 생길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소문이 나를 바닥으로 끌고 내려갔고 나는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네가 나타났다.
멀리서 온 전학생.
평소에는 맡을 수 없었던 향기를 내뿜던 너는 고양이같이 큰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며 나에게 인사해 줬다.
그 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잠시 현실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언젠간 너도 사라지겠지.
그런 생각으로 항상 너를 멀리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너는 꾸준히 나에게 달라붙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어느 날, 나는 너에게 물었다. 왜 자꾸 쫓아오느냐고. 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냐고. 그리고 네가 말했다.
‘그건 소문일 뿐이야.’
그녀의 말이 백번 옳고 말고.
그것은 이제 진실은 1%도 담기지 않아서 고양이 얘기는 들어있지도 않은, 그저 소문일 뿐이었다. 나는 그 후로 그녀와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나에게 다른 친구들도 소개 시켜줬고 그맘때쯤 우리 집도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부모님께서 노력해 주셨겠지.
소문은 점점 사라져갔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날 괴롭히던 소문들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너의 향기가 나던 어느 봄날, 좁은 골목에서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기뻐하는 너를 보았다.
잊고 살았던 어린 날의 아픈 추억이 생각났지만 애써 웃으며 멀리서 물어보았다.
‘고양이 좋아해?’
그리고 대답 대신 내게 지어준 그 미소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추억이었다.
그 후로 나는 너와 매일같이 고양이를 보러 다녔다.
그래서 너는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고양이가 싫다.
나의 어린 시절을 무참히 밟아버린 그 털 뭉치는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나는 대답했다.
“너를 닮아서.”
그리고 너는 다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