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방 기록 - 히로시마 에이토(eight)에서 할머니와 수다 떨기
(2022년 2월 맛집 카페에 썼던 글을 약간 고쳐씁니다)


히로시마에는 5년정도 살고 있는데
가끔 이 가게앞을 지나가곤 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폐점 느낌이 강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영업중.

문 닫았나? 싶어
가게 안을 엿보니 할머니께서 테레비를 보고 계셔서 용기를 내 들어가본다.
“안녕하세요 가게 열었나요?”
"으응..모처럼 오셨으니 열까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차를 내오시는 주인 할머니
혼자 계셔서 그런지 불은 꺼진 실내
"조명 스위치가 위에 있으니까 돌려서 켜요."
“아~네. 조명 끈 것도 괜찮은 느낌은 드는데요.”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져있지만
나름대로 주인 할머니의 질서 안에서 정리정돈되어 있는 듯한 실내..
마치 외할머니댁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게 성냥 있나요?"
"있지. 2500개정도 쌓여있어. 그런데 요즘은 이게 유행인가? 아니면 그냥 취미로 모으는 건가?"
"아니오. 전 그냥 취미로 모으지요."
심플하니 멋스러운 성냥
고맙게도 두개를 얻었다.


커피 350엔
진한 맛이 좋은 지 옅은 맛이 좋은 지 물어봐주신다.
커피는 사이폰 커피였다.
할머니 왈 그게 맛있다고.
커피 맛을 모르는 나는 ‘대충 적당히’ 라고 대답.
가끔은 거짓으로라도 커피에 대한 기호를 정해둬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자네는 억양을 보니 히로시마 사람이 아니구만.”
히로시마 사투리의 할머니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들
자식 이야기 결혼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
87세의 할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1시간이 훌쩍..
"내 새끼는 몇 살이 되어도 나에게는 어린 아이이다"
“아들은 60이 넘었지만 아직 독신”
"결혼한 사람은 어딘가를 놀러다녀도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제일 좋다"
"단골 손님, 친한 친구들도 다 죽었다. 친구는 한 명뿐이 없다."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역시 들어오길 잘 했다 ! 생각이 든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있자니 40대 정도의 아저씨 손님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기억하실라나요? 저번에도 왔었는데.
커피 한 잔만 주세요."
또 다른 할머니의 말벗의 등장.
슬슬 교대 시간이 된 것 같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게.. 좋은 여자를 꼭 만나요"라는 할머니의 인사를 뒤로 하고
또 새로운 말벗 아저씨와도 가벼운 목례를 나누며 가게를 나섰다.

할머니 !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