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일의 집사
외아들과 정실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외척과의 관계 또한 원만하여
완전무결한 정통성을 바탕으로 조선 왕조 최강의 왕권을 누린
19대 임금 숙종.
왕비들을 이용해 서인과 남인에 번갈아 힘을 실어주는 환국 정치를 펼쳐,
궁궐에 피바람이 불게 하는 한편 자신의 왕권은 더욱 강화했으며,
상평통보를 본격적으로 주조하고 대동법을 확대 시행하며 북한산성을 축조하는 등 치적을 남긴
정치적으로 유능하고 강력한 군주였다.
이상의 설명만 보면 차갑고 가차없는 야망가였을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애묘인이었다.
궁을 거닐던 중 시름시름 앓는 길고양이를 거두어 ‘금덕’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진은 제 상상에 기반하여 선택했습니다)
금덕은 임금의 총애를 받아 건강해지고 새끼를 낳으니, 임금은 기뻐하며 ‘금손’이란 이름을 주었다.
(역시 제 상상에 기반해 선택된 사진입니다)
금덕은 금손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숙종은 ‘매사묘(죽은 고양이를 묻다)’라는 시를 남길 정도로 크게 슬퍼하였다.
왕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정기적으로 피의 숙청을 벌이던 군주는,
금손에게 친히 먹이를 먹이고 아꼈으며
심지어는 용상에서 정사를 볼 때나 밤에 잠을 청할 때도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가까이했다고 한다.
금손 역시 숙종을 매우 따랐는데,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먹이도 거부하고 빈 어전을 보고 울기만 하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성호 이익은 개와 말도 아닌 고양이가 그토록 주인에 충실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성호사설>에 관련 기록을 남겼으며,
인원왕후는 그 충심을 갸륵히 여겨 비단에 감싸 숙종의 릉 옆에 묻도록 명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숙종의 고모격인 숙명공주는 하루종일 고양이만 끼고 있어 아버지 효종으로부터 꾸짖는(喝)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지니, 숙종과 그 당대의 왕족들은 고양이를 친애하는 것이 유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와 군사에 능했던 비정한 군주인 숙종조차 사랑에 빠지게 하는 고양이의 매력이었는지,
정쟁에 지친 숙종이 작은 생명을 돌보며 안식과 위안을 얻었던 것인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