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하! 제 사연있는 물건은 이 키보드입니다

이 키보드는 화살로 산 키보드입니다.
때는 201X년. 대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수업 듣고(가끔 째고)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오버워치나 배그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학교 앞 피시방에 비치된 이 키보드가 저는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적당한 키 눌림, 디자인, 그리고 왠지 이 키보드로 게임하면 잘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저는 가난한 새내기. 용돈을 받으면 술 마시고 남은 돈으로 전공책을 사야했기에 고가의 키보드는 어불성설이었습니다. 피시방에서 가서 두드리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했죠.
그러던 어느 뜨거운 여름날 제 친구가 저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너 알바한 번 해볼래?’

친구가 제안한 알바는 바로 국궁장 알바였습니다. 지역 국궁대회에서 선수가 쏜 화살을 수거하면 되는 간단한 알바였습니다.
화살만 수거하고, 끝난 후에는 친구 어머니네 동호회 사람과 수육에 막걸리까지 먹을 수 있는 꿀알바라고 하길래 저와 제 친구 2명은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처음 가본 국궁장은 신기했습니다. 생각보다 넓고, 활도 처음보고, 실제로 활을 쏘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도 신기하다고 구경을 막 했었죠.

그러나 제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궁장 그 어디에도 그늘은 없습니다. 선수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요.
화살을 다 쏘면 50m 달리기한 후 땅에 떨어진 화살을 다 수거하고 화살을 품에 가득 안고 다시 50m를 뛰어 들어오는 지옥의 셔틀런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살을 다 줍고 그늘에서 쉬다가도, 바로 화살을 주우러 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활쏘기를 구경하던 저와 친구들도 이내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받은 일당으로 산 키보드가 위 사진에 보이는 키보드입니다. 이 키보드를 보면 그날의 햇빛, 화살 소리, 땀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도 특별하게 돈을 벌었을 때, 특별한 물건을 사보는 게 어떨까요? 추억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