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제 여자친구는 키움 히어로즈의 팬입니다. 하지만 올 시즌 키움의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 직관할 마음이 영 생기지 않았죠.
근데 그냥 오랜만에 야구가 보고 싶어서 여자친구를 설득해서 고척돔에 왔습니다. 티켓 가격이 올라서 항상 앉던 내야 대신, 난생 처음 외야 좌석에 자리를 잡았죠. 오늘도 지려나 별 기대 없이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경기는 답답하게 흘러갔고, 4대 3으로 지고 있던 8회 말, 투아웃 상황.
송성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카메라를 켜고 싶어졌습니다. 배터리가 10%대라 아껴야 했지만,갑자기 삘이 왔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상 찍자마자 그 타석에 친 공이 하늘로 떴습니다. 어라? 이렇게 가다간 홈런인데? 어라?!!! 공이 내 쪽으로 오네?!
아니 진짜로 공이 땅에 맞고 튀어서 제 오른쪽으로 오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말벌 아저씨처럼 호다닥 달려갔습니다. 멋지게 잡았다면 좋았겠지만, 튕겨져 땅에 구르는 공을 올웠습니다. (잡았다기보단 주웠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했습니다. 난생처음 간 외야 직관에 잡은 공이 그날 경기의 유일한 홈런 심지어 구단 2100번째 홈런이라니, 배터리가 없어 아껴뒀던 카메라를 그저 삘받아서 켰는데, 그 영상에 이 순간이 담겼다는 게…
주변에서도 흥분한 목소리로 "홈런볼이랑 사진 한 번만 찍어봐도 될까요?"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속으로는 온갖 호들갑을 떨고 싶었지만, 애써 침착하게 "네네, 찍으세요." 하고 쿨하게 대답했답니다.(나 멋져)


이거 내가 가져도 되는 건가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실제로 구단 관계자가 찾아왔고, 나중에 연락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갔지만... 아직까지 연락은 없네요. (다행)
이 날 우주의 온 기운이 저에게 몰린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운 때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