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침원박에서 쭉 봤어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만 중간에 하나 좀 보충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글을 올려 봅니다.
강의 중간에 빠니보틀 님이 중앙아시아 5개 -스탄 국가들은 소련에서 독립을 했는데 왜 체첸이나 다게스탄 같은 지역은 독립하지 못했냐고 질문을 하셨고, 알파고 님께서 인구 비율이나 중앙 통제 문제 때문에 독립을 하지 못했다고 답을 하셨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주된 이유라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소련,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15개의 사회주의 공화국이 합쳐진 연방 국가였습니다.
공화국의 구성에는 몇 차례 변동이 있었지만 대략 20세기 중엽부터는 15개의 구성국 형태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소련을 구성하는 15개 국가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건 당연히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었고요, 이외에 우리가 들어봤음직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등이 모두 소련의 구성국이었습니다. (우즈벡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등)
이 15개 국가는 원론적으로는 진짜 ‘국가’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컨대 지금 유럽 연합이 한 나라고, 거기에 속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구성국인 것처럼 생각하면 대략 비슷할 겁니다.

그리고 15개의 구성국들 중에서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자치공화국을 지닌 국가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중에 제일 많은 자치공화국을 거느렸던 건 러시아였죠. 이외에도 우즈벡, 조지아 같은 나라에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치되었습니다.
자치공화국은 개별 연방 국가 소속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은 자치권을 부여받으며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쓰기는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의 직접적 구성국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습니다.
체첸과 다게스탄은 소련의 구성국이 아니라, 바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 속한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다게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일종의 행정구역으로 존재했죠.
아무튼 행정 구역이 이렇게 되어 있던 상태에서… 1991년에 대사건이 일어났죠.

바로 소련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미 1990년부터 구성국들이 하나둘씩 탈퇴를 선언하였고, 결국 1991년 3월 투표를 통해 소련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나갈 나라들은 독립하고, 남을 나라들은 남아서 같이 으쌰으쌰 해보자는 거였죠.
이 투표에서 몇몇 구성국은 독립을 사실상 확정을 하고 투표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나라들, 특히 중앙아시아의 소위 ‘-스탄’ 국가들은 대부분 소련 유지 찬성에 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에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실패한 쿠데타였습니다. 이전까지의 소련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던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원래 독립해서 소련에서 나가려고 했던 구성국들에서 제일 반대가 심했죠.
당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보리스 옐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국을 장악했고, 공산당은 정치적 실권을 잃게 됩니다. 참고로 옐친은 공산당이 아니라 무소속 신분으로 당선되었지요.
이 사건 이후로 구성국들이 줄줄이 소련 탈퇴 러시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1991년 11월이 되면 소련에는 사실상 러시아와 카자흐 두 구성국만 남은 상태였고, 12월 초에 러시아마저 탈퇴를 하게 되어 소련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달랑 혼자 남았다가 결국 12월 말에 기존 구성국들 간의 합의를 통해 소련이 공식적으로 완전히 해체되고 기존 15개 구성국들은 독립적 주권국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기로 했죠.
하지만 소련을 구성하던 15개 구성국들끼리의 합의였습니다.
체첸(정확히 소련 붕괴 전에는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형태로 인구시와 같이 묶여 있었음)은 소련의 직접 구성국은 아니지만 독립 열망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 붕괴는 15개의 소련 구성국의 독립만 보장했을 뿐, 구성국 아래에 있던 자치공화국의 독립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독립 열망이 높았던 체첸은, 체첸인으로서 소련 공군 소장 자리까지 올랐던 조하르 두다예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1991년 말 독립을 선언합니다.
러시아는 ‘응 우리는 소련 구성국들의 독립을 인정한 거지, 원래 우리 밑에 있던 자치공화국 독립은 인정 안 해줌 ㅅㄱ’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당장 체첸을 막을 수는 없었고 체첸은 몇 년 동안 사실상 독립국가와 같은 상태로 이어졌죠.
그렇게 1994년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체첸을 침공하면서 1994년 1차 체첸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여기서 러시아는 개망신을 당하였고, 체첸의 독립적 지위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1999년 2차 체첸 전쟁 때는 러시아가 이를 갈며 다시 체첸으로 들어가 이전과는 달리 이 지역을 장악했고, 체첸의 독립 국가적 상태는 끝납니다. 물론 100% 장악한 건 아니라서 이후로도 불안한 정세는 이어졌지만 아무튼 러시아가 행정적으로는 통제권을 되찾았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통계상 러시아에서도 손꼽히게 치안이 좋은 곳이 되기는 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깔쌈하게 세 줄 요약 가겠습니다.
1. 1991년 소련 해체는 소련을 구성하던 15개국(러시아 포함)의 독립을 인정하는 과정이었고, 구성국 아래에 있던 자치공화국은 한 개도 독립하지 않음.
2. 체첸 같은 ‘나라’는 소련 구성국이 아니라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이어서 독립 선언을 했어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함.
3. 소련 해체 직전 통계를 보면 자치공화국인 체첸보다 소련 구성국인 카자흐가 오히려 러시아인 비율이 더 높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체첸의 독립이 인정받지 못한 건 인구 비율의 문제보다는 기존 행정 체제에서 체첸의 행정적 지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
마지막으로 예전에 체첸 여행 가서 찍은 사진 두어 개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