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하하 익명화 때문에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나 보네요
저는 잼민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커뮤질을 놓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들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꽤 큰 커뮤 회사가 전 직장이기도 한 사람이죠.
천리안 나우누리 시절때부터 시작해 엽사 플포 아햏햏시절 겜조선 디씨 웃대 오유 도탁스 인벤 에펨 개드립 루리웹 등등 활동 안해본 사이트가 없습니다.
(그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이상한 사이트들은 당연히 안해봤습니다)
그간의 경험에 빗대어 볼 때 익명의 게시판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간단히 적어보려 합니다.
모든 커뮤니티에는 ‘성향’이라는게 존재합니다. 이건 사이트 자체에도 생기지만,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 내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도 그랬습니다. 사이트 성향과 유사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이트를 운영했죠.
지금의 침하하와 비슷한 분위기의 대형 커뮤 사이트라면 과거의 오늘의유머가 그나마 유사합니다. (현재는 절대 아니고 한 10~13년대 오유)
적당히 선을 지키며 가면무도회를 하는 커뮤. 그래서 당시에 오유는 타 커뮤들이 ‘10선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성향이 완전히 바뀌고(정치색이 매우 강해짐) 사용자 나이대도 확 올라가 버렸는데, 결국에는 저런 분위기가 큰 몫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유저들의 성향 뿐만 아니라, 그런 성향을 따라갔던 운영자의 운영 형태 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유는 가장 흥했을 시절부터 쇠락하는 시절까지를 라이브로 직접 생생히 다 직관했기 때문에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오유뿐 아니라 다른 커뮤사이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커뮤사이트에는 각자 ‘성향’이라는게 생기고 특정 성향이 더 강세일 때 그 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즉, 익명속에서의 자유 분방하면서도 거친 분위기와 기명속에서의 화기애애한 가면무도회가 밸런스를 이루며 적절하게 공존하는 유토피아같은 커뮤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반드시 강세인 한 쪽이 약세인 한 쪽을 잡아먹게 돼 있다는 거죠.
물론 강제로 두 성향을 유지시켜보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런 커뮤들에서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파가 갈립니다. 익명파와 기명파. 처음에는 적절히 잘 융화되는가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물과 기름처럼 층이 분리되어 서로 모략질하고 뒷담화까고 그럽니다.
예를들어 기명은 익명을 “저 ㅅㄲ들은 진짜 병신들인가?”라고 비난하고 익명은 반대로 기명을 “어휴 저 10선비들 ㅉㅉ”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현상이 생긴다는거죠.
이 때 부턴 운영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양 측 유저 세력간의 기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한 쪽이 스러지고 다른 한 쪽이 해당 사이트 성향의 주축을 차지하게 되죠. 가끔 보다못한 운영진이 방관에서 개입으로 스탠스를 바꾸고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형태로 막타를 쳐버리기도 합니다.
여전히 익명과 기명은 둘 다 살아있긴 하지만, 살아도 산게 아닌것처럼 밀려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게시판은 반 사망상태가 되어 활동이 거의 없어집니다. 글리젠도 주축이 된 게시판들과는 상대도 안되게 처참해져서 사실상 유령게시판이나 다름이 없어지죠.
어떤식으로 굴려봐도 결국 그렇게 가더라고요. 현재 침하하처럼 두 밸런스를 적절히 잡아 이상적인 커뮤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타 커뮤에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두 실패했을 뿐.
물론 침하하가 그걸 잘 잡아내는 기적적인 사례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상 그건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걸 잘 조율해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서 혼란에 휩싸이는 유저들이 서로 분열해버리거나 맘상하거나 떠나거나 하는 부작용도 꽤 생기고요.
전 익게식, 디씨식 자유분방한 성향도, 가면쓰고 하하호호하는 화목한 성향도 다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가능하면 한 쪽 성향을 선택해서 우직하게 미는방향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최근에 생겼으면서도 성공한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례가 블라인드죠. ‘성향’과 ‘컨셉’을 확실하게 잡아서 제대로 성공했습니다.
아니면 기존 커뮤들에는 없는 새로운 형태의 성향을 만드는것도 좋겠죠. 가능하면 이상적인 방향으로.
방송인 왁굳님의 사례처럼 흘러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우왁굳이 좋아서 모인 팬카페에서 ‘이세돌’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구심점이 생긴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이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침하하도 침착맨과 별도로 ‘침착맨 유니버스’ 같은게 형성돼서 안에 강력한 구심점이 생기고, 이를통해 물과 기름같은 두 성향의 유저를 유화제를 넣은 것 마냥 같이 섞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거죠. 전 자치령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자치령이 사라지더라고요
침하하만의 독창적이며 대체불가능한 ‘세계관’이 만들어지면, 그걸 즐기기 위해서라도 물과 기름같은 두 세력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회사다니면서도 느낀거지만 사실 커뮤운영이 참 답이 없습니다. 그냥 일상이 가불기의 연속이에요.
제가 다녔던 회사도 전화로 ‘커뮤운영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운영해라’이런 형태의 문의가 수도 없이 걸려왔었습니다.
근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죠. 불가능합니다…불가능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