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GP라고 불리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벙커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요.
약 1.5KM 앞에 북한GP를 마주하고 있는 최전방지역에 있었습니다.
GP는 주로 초소에서 북한군을 감시하며 북한군이 휴전선 가까이까지 너무 내려오면 경고방송이나 심지어는 경고사격까지 하며 경계 근무를 하는곳이고
GP가 일반적인 부대와 다른 점은 총기에 실탄을 장착한 채로 근무를 서며, 실제상황이 일어나는 경우 윗선에 보고 후 조치를 취하면 딜레이되는 시간이 치명적일 수 있기에 선조치 후보고가 원칙인 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군 생활을 하는동안엔 경고방송조차 한번 한 적 없을정도로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전역을 한 달 앞둔 말년에 어두컴컴한 저녁 8~9시쯤 초소 근무를 서며 평소처럼 부사수와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대장이 초소로 와서 진지한 얼굴로 말하길,
방금 후방부대에서 열상감시장비(TOD)를 봤는데 저희가 있는 초소 앞쪽에 평소엔 안 보이던 열이 감지된다고, TOD병사가 말하길 사람모양같다고 했다는겁니다.
비무장지대는 허가된 인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할뿐더러 더군다나 야간에는 절대로 사람이 있을수 없는곳입니다.
소대장은 연락을 받아야 하기에 상황실로 돌아갔고 저와 부사수는 어깨에 총기 견착 후 전방쪽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숲속에서 나뭇가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미세하게 소곤소곤대는 소리를 저와 부사수가 같이 들었습니다.
그때 100퍼센트 사람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고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군이 몰래 내려왔나? 보이면 봐로 쏴야되나?'
'귀순자면 어떡하지? 그럼 애꿎은 사람 쏘는건데'
'혹시 총이라도 들고 있으면 머뭇거리다가 내가 총 맞는거 아닌가?'
'이쪽으로 수류탄같은거라도 던지면 어떡하지?'
'하 시바 왜 말년에 이런 일이....'
그리고 부사수에게 얘기했습니다.
"만약에 뭐 튀어나와서 우리 위협하는 조짐 보인다 싶으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연발로 사격하고 그동안 한 사람이 크레모아(대인 살상용 지뢰, 초소별로 3~4개 설치되어있음) 다 격발하고나서 바로 같이 연발로 사격하자. 쏘고있는동안 한 사람이 장전하고 다시 쏘고 사격 빈틈 안 생기게 계속 그렇게 반복하는거야. 알았지?"
그렇게 둘 다 잔뜩 긴장한채로 약 20~30분동안 감시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일도 없길래 상황실에 연락해봤더니 소대장이 말하길,
"아 그거 바위가 낮에 태양열 받아서 달궈져 있던게 열로 잡힌거같대~ 지금은 없어"
아니ㅅㅂ 그럼 빨리 말을 해주던가 누군 잔뜩 쫄아가지고 인생을 돌아보고있었는데...
결국 나뭇가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고라니나 너구리같은 산짐승이었던 거 같고 소근소근대던 소리는 누군가 휴게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TV를 크게 틀어놔서 메아리처럼 울렸던 거였습니다.
어쩐지 웃음소리같은게 계속 들리더라...
그렇게 제 군생활 최대 위기는 허무한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아직도 혹시나 그때 고라니라도 튀어나와서 잘못된 판단으로 사격을 해버렸다면... 그 야심한 밤에 얼마나 큰 소리로 총 소리가 울려퍼졌을지 오싹하긴 합니다.
부대 내 역대급 폐급으로 회자되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