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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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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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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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병원 그곳은 파라다이스 였는가? (고봉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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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티타늄맨입니다.
지금부터 얘기할 이야기는 저의 가장 끔찍한 기억 탑2에 해당되는 기억입니다.
읽으시기 많이 괴로울수도 있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한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의 아내, 부모, 형제, 친구...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끔찍한 기억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사단병원
등은 더이상 욱씬 욱씬 아프지 않았습니다.
등이 파열된것처럼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는것처럼 아팠습니다.
이건 글로 잘 표현할수가 없네요. 하여튼 어마무시하게 아팠습니다.
더이상 숨을 쉬는것도, 밥을먹는것도, 생각을하는것도 그무엇도 할수없을만큼 아팠습니다.
대화조차 제대로 성립이 되자않았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말을걸어도 말이 들리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해도 말이 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 제가 갇혀서 통증과 저 이렇게 둘만이 남았습니다.

다음날. 사단병원의 진료를 받으려고 진통제 2병과 알수없는 알약 3알을 먹고 조금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대화를 할수있게 되었습니다.
의무관이 저의 상태를 보고 더이상 여기서 할수있는게 없단걸 아셨나봅니다.
휴가를 받아서 외부진료를 봐야할것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실로 복귀하고
얼마뒤 중대장이 와서 저를 부대로 데려갔습니다.
일사천리로 저의 휴가가 확정되어 다음날 휴가를 가기로 했습니다.
병가휴가였나 정확한 명칭은 기억 안나지만 최대 휴가일인 14박 15일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인제까지 오셔서 저를 서울로 태워갔습니다.
맨처음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한것은 약국에 간것이었습니다.
약국에서 미친듯이 진통제를 구매했습니다.
타이레놀과 기억 안나는 이것저것 진통제를 구매하고
집에 돌아가서, 집에있던 에드빌까지해서 되는데로 약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푹 잠을 잤던것 같습니다.
진통제의 효과보다는 군대에 있지 않은 안도감이 더 컸었던것같습니다.
그뒤로는 아무런 의미없는 14박 15일을 보냅니다.
유명하다고 알려진 척추병원 8곳을 돌았습니다.
서울에도 돌아다니고 지방도 갔습니다.
그어느곳에서도 제가 아픈이유를 몰랐습니다.
척추에 분쇄골절이 온건 알겠는데
큰 충격없이 골절이 올 이유가없다
그리고 척추골절은 심하지않으면 그냥 진통제를 먹고 가만히 있는게 최선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통증에 대해서는 신경과 관련된것같다고 계속 무슨 시술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8곳중 5곳이 시술은 권장했습니다.
근데 제대로된 진단명도없이 무작정 시술을 받는건 너무 어리석은일 같아서 전부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의미없는 14박 15일을 보내고
다시 부대로 복귀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정말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혹시 정말 나 정신병인가?
나 안아픈거잖아
그냥 군대가 싫은거잖아
집에가니까 잘만 잤잖아
진통제를 먹었는데 14박 15일동안 잠 잘 잤잖아
그냥 난 군대가 싫은거잖아
부대에 복귀한 저는 하룻밤 연대 의무실에서 자고 (못잤습니다)
다시 사단병원으로 갔습니다.
사단병원에가서 군의관님을 먼저 만났습니다.
군의관님이 밖에 병원에서 어떤 진단을 받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수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군의관님은 난 너를 믿는다 너가 정말 아픈것같다. 근데 왜아픈지 모르니 얼마나 힘들겠냐. 그런데 진짜 너무 안타깝게도 안좋은소식이 있다. 내가 다른부대로 가게 되었다. 여태까지 내가 널 퇴원시키지 않게 이래저래 손을 썼었는데, 내 다음으로 올 군의관이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다. 너가 어떤식으로든 병을 알아내든 통증을 덜어내든 더 좋은 상황이 오길 기도하마
그러고 그 군의관님과 헤어졌습니다.
다시 입원생활의 시작
너무나 아팠습니다.
사람이 정말정말 한계까지 아프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해를 합니다. 어떻게든 통증을 없에려고 자해를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온 팔과 다리 얼굴을 손톱으로 찢어 발겼습니다.
얼굴과 팔과 다리에 피를 줄줄 흘리면
그나마 좀 살만해졌습니다
잠깐동안 등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잠깐동안....
그렇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정도로 긁고 긁었습니다.
더이상 긁을곳이없어 이미 피가 철철나는 속살도 긁을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긁었냐면 왼팔은 뼈가 보일정도로 긁었습니다.
출혈량도 꽤 되었습니다.
새벽에 그짓을 하고있어서
의무병들도 눈치채는게 늦었습니다.
새벽 2시였나요 군병원이 난리가 났었습닏.
군의관이 달려와서 제 팔과 다리 얼굴을 처치하고
붕대로 칭칭 감았습니다.
미친놈소리를 10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저도 압니다 미친놈이었단거
근데 너무 너무 너무 아파서 할수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손에 군장갑을끼고 손목에 테이프를 감아 손톱을 봉인 당했습니다.
자해 위험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고 몇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너무나 아프고 아팠습니다.
또 어느날 새벽
(노래를 꼭 한번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또 너무나 아프고 아파 죽을것 같았습니다.
죽음이 옆에 있는것처럼 등이 터질것처럼 내몸이 터질것처럼 아파왔습니다.
아픔의 한계를 느낍니다
여기서 더 가면 쇼크사가 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너무 큰 고통이 오면 도파민인가 엔돌핀인지 나온다던데
저는 안나왔나 봅니다. 아니면 나왔는데 크게 의미가 없었던지...
그런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관물대에 있는 손톱깍기가 말입니다.
손톱깍기로 장갑 왼손 새끼 부분을 잘라내고 손톱깍기로 새끼 손톱을 잡았습니다.
Well, I can't fall asleep and I'm losin' my mind
'Cause it's half-past three and my brain's on fire
잠을 잘수가 없어 정신을 놓을것 같아
새벽 3시 반이 넘었어 머리에서 불이 나는것같아
I've been countin' sheep but the sheep all died
And I'm tryin' too hard but I can't not try
양들을 세었지만 양들이 다 죽었어
And I'm not dead yet, so I guess I'll be alright
그리고 난 죽지 않았지 그래서 아마 괜찮을꺼야
Don't you love it, don't you love it?
좋지 않아? 좋지 않아? (손톱을 뽑으며)
No, I ain't happy yet (happy yet)
아니 아직 편안하진 않아
But I'm way less sad
근데 조금 괜찮아 졌어
Don't you love it, don't you love it?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뽑아진 손톱 밑에 살을 꾹 누르며)
No, I ain't happy yet
아니 아직 편안하진 않아
But I'm way less sad
근데 조금 괜찮아 졌어
I may be wrong (I may be wrong)
내가 틀렸을지도 (오른손 새끼손톱을 잡으며)
I may be wrong (I may be wrong)
내가 틀렸을지도 (오른속 새끼 손톱을 뽑으며)
It's stupid but it's all I have
이건 멍청한짓이야 근데 이게 내가할수있는 전부야 (새끼 손톱을 뽑은 손을 꾹 누르며)
그렇게 오른쪽 새끼, 약지 그리고 왼손 새끼손톱 총 3개의 손톱을 뽑았습니다.
왜뽑았냐면, 손톱 뽑는게 고문이라고 했던걸 어디서 들어서 그랬습니다.
조금이라도 등 통증을 느끼지 않으려고 뽑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조차 잠깐의 위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등통증이 몰려오면 손가락을 꾹 눌러 피를 내고 고통을 줬습니다.
하나 둘 뽑을때마다 점점 손이 아파져서 등통증이 가라앉는것만 같았습니다.
잠시 뒤 의무병들이 달려와 다시 난리가 났습니다.
몇일뒤 군의관님이 사단병원을 떠나시고, 정말 귀신같이 저는 퇴원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51연대로 복귀한 저는 51연대의 의무실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51연대의 의무관은 저에게 아무런 관심이없고 위무병역시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였습니다.
있으면서 보이지 않았던듯합니다.
부대내에서 안좋은 소문이 많이 퍼졌었던것 같습니다.
저를 벌레보듯이 보는사람들. 아예보이지 않는듯 행동하는 사람들
의무관은 저를 오물인것마냥 혐오를 표하는걸 즐겼습니다.

그들은 의무실에서 ps3로 게임을 하건
나가서 농구를 했습니다.
방치된 저는 그저 의무실에 누워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저의 맞선임이 와서 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맞선임음 항상 매끼 마다 저에게 욕설을 하고 갔습니다
"별 폐급새끼가 후임으로와서 후임 시다바리나 하고 진짜 군생활 좆같다
너는 주는밥 처먹고 하루종일 처 누워있으니까 얼마나 좋겟냐
아 진짜 씨발 누구는 개꿀빨고 나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
저도 미안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내가 왜 살아있나 싶었습니다.
자존감은 박살이 나고 정신은 무너졌습니다
저의 존재가 죄처럼 느껴집니다.
저의 존재가 악처럼 느껴집니다.
모두가 저를 싫어하고 모두에게 피해만 주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죽었다면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 오후 또 미친듯한 통증이 왔습니다.
손톱을 뽑을수도 없게되어
태아자세를 취하고 오른팔을 양 다리에 끼고 쭉 잡아당겼습니다
왜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했습니다
당기면 당길수록 팔이 아프고 점점 등통증을 잊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툭 소리가 나면서 팔이 안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오른팔이 탈구가 된것입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그런짓을 한게 평일 이른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의무관과 의무병이 저의 팔을 끼우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의무관의 차를 타고 근처 한의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의사분의 지도하에 병사 3명이 달라붙어서 겨우 팔을 끼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감당할수없던 의무관은 바로 대대장에게 말해 저를 병가휴가를 보내버립니다.
또다시 14박 15일의 휴가...
휴가도 더이상 즐겁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내가 왜아픈지 모를건데 왜나가지
모든게 허무하게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병원에 있는 사이 저희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아셨었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지인을 통해 척추에 전통한 한 대학병원에 교수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휴가 7일차에 그 병원에 갔습니다.
홍천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과 mri 사진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걸 보자마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
너의 병명은 슐만의 척추후만증이다. 근데 그건 그냥 표면적인 병명이고
너의 후만증은 진행속도가 빨라서, 척추 뼈의 변형이오고 내장이 척추변형에 못따라와 내장이 터지는 병인데, 뼈가 원래는 변형이 와야하는데 너는 뼈가 깨졌다
뭔가 매우 이상한 상황인데 어찌되었건 바로 수술하지않으면 너 곧 죽어 "
라고 하시더라구요.
드디어... 진단을 받았습니다.
뭔가 엄청 희귀병인것 같앗습니다. 제대로된 병명도없는
대한민국에서 4번째 발병자라고 합니다.
이병의 특징은 어마무시하게 빠른 후만증의 변형
20세이하의 젊은나이에 발병
알수없는 강렬한 등통증 (보통 후만증은 등통증이 강하게 발생하진 않습니다)
내장의 찢어짐으로 인한 각혈
폐의 눌림으로 오는 호흡곤란
그리고 1달전에 찍은 홍천병원 엑스레이상 90도이상 척추 뼈가 휘어있었고,
지금은 만저봤을떄 100도가 넘을 수도있다.
조금더 휘면 폐가 찢어지고 그러면 죽는다
빨리 수술을 받아야한다.
드디어 희망이 생겼습니다.
너무 길어저서 여기서 한번 끊고 가겠습니다.
너무 끔찍한 얘기가 많아 읽기 힘드시진 않으셨을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급하게 글을 쓰는 이유도, 끔찍한 추억을 오래 생각하기 힘들어서 빠르게 빠르게 쓰고 지나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한자 한자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추억을 나누다보면 조금 도움이 되는거 같기도 합니다.
이제 곧 끝이 납니다.
2편이나 3편정도로 마무리 될것같아요
저의 이 고통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추가1 .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댓글 보며 웃기도하고 위안도 받고 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