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얼마전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글을 쓸 적에 머리 속이 멍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당시 폭풍처럼 몰아쳤던 슬픔은 이제는 발목을 적시는 잔잔한 파도처럼 슬쩍 왔다가 슬쩍 흘러가는 정도로 가라앉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령묘이기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참 의미없긴 하더군요.
하지만 슬픔을 공유하고 추억을 나누는 것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고 하기에 초딩이를 떠나보내던 날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언젠가 같은 경험을 하셨던, 또는 같은 경험을 하시게 될 다른 집사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처음 동물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초딩이를 데리러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초딩의 죽음이 확정되는 것 같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슬픔을 마주하기 싫은 아이같은 마음에서였는지는 몰라도, 굼뜨게 준비하고 굼뜨게 나갔습니다. 15분이면 갈 병원을 40분이 넘게 걸렸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초딩이를 깨끗이 닦아서 운구상자에 담아주었을 때, 저는 상자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받는 순간 저도 모르게 테이블에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상자는 소름끼치게 가벼웠기에 팔에 힘을 줄 수 없었습니다. 수의사의 설명이 몇가지 있었는데, 이제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상자를 열어 초딩이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을 때 마치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혹시 살아있는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 괜히 만지면 짜증낼 것도 같아서 만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이 간 여자친구의 말에 평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봤습니다. 한 손에 작게 들어오는 작은 머리가 평상시처럼 너무 부드럽고 귀여웠지만 깨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장례에 대한 설명을 받을 때, 저는 장례식장에서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말에 사실 솔깃했습니다. 초딩이가 든 상자는 너무 가벼웠고, 그래서 쉽게 들 수가 없었기에 그냥 픽업을 불러서 보낼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기로 하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상자는 너무 가벼워서 떨어드릴 것 같았지만 어찌저찌 무사히 나가서 택시를 탔습니다.
2024년 1월 9일, 대설주의보가 있었던 날이라 눈이 많이 내렸고, 그래서 세상은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남양주까지 가는 길에 바라본 세상은 하얗고 살짝 뿌옇게 변해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는 길에 이곳 침하하에 처음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4줄 밖에 안되었지만 걸린 시간은 20분이 넘었습니다. 그 글을 쓰는 순간에 저는 비로소 초딩이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좀 많이 울었습니다.
장례식장은 남양주 산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눈길 대비가 안된 택시로는 마지막 언덕을 오를 수 없어 그냥 내려서 걸어가기로 하고 초딩이를 안고 여자친구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와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대상과 걸어가는 그 길은 유난히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눈은 내렸지만 춥지는 않았고, 초딩이가 누워있는 상자는 전혀 무겁지 않았으며,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초딩이는 유난히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햐얗고 아름답고 조용한 길을 마지막으로 품에 안고가는 순간이 지금 돌이켜보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택시를 막아선 눈은 저에게 초딩이와 마지막 산책을 선물했습니다.
장례식 장에 도착한 이후에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장례준비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운구상자에서 초딩이를 꺼내고 슬쩍 만져봤을 때, 눈으로 포근해진 날씨가 초딩이의 체온을 약간 남겨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좀 웃음이 났습니다. 이 녀석 아직 따뜻하구나. 여자친구도 초딩이를 만져보면서 살짝 웃음을 흘렸습니다. 시신을 깨끗이 염을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초딩이의 옆구리를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아직 온기가 남은 초딩이는 살아있을 때처럼 너무 부드러웠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한지로 감싸진 초딩이를 분향소로 옮겼을 때, 다 감싸지지 않은 초딩이의 심장 어림이 살짝 보였습니다. 저는 문득 그곳에 손가락을 대보았는데,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평소에도 그쪽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던 녀석이라 여자친구와 같이 몇 번 정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 녀석 귀엽네. 이런 생각으로 살살 쓰다듬고 있었던 그 순간이 저는 좋았습니다.
초딩이는 조용히 가마 속으로 들어갔고, 그 시간 동안 예전 사진과 영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닌 사람인지라 생각보다 사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귀여운 순간에는 못참고 찍어놨던 것 같습니다. 구석구석 숨겨진 사진들을 찾아보며 웃고 있다보니, 화장이 끝이 났습니다. 건강할 때 6킬로쯤 되던 초딩이는 133그램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초딩이의 작은 두개골이 어쩐지 동글동글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나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너는 백골이 되어도 귀엽구나 하며 여자친구와 웃었습니다. 그 순간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유골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마블 또는 영석이라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가만히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불꽃이 화려하더군요. 평소 특별히 사고도 안치고, 입질과 하악질조차 안하던 놈의 마지막이 너무 화려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불꽃남자 임초딩. 하나도 안어울리지만 또 어울리는 느낌이라 여자친구와 농담을 주고 받았습니다. 동글동글한 옅은 옥색의 자갈처럼 변해버린 초딩이는 아직 불꽃남자의 열기가 남아 따끈했습니다. 천천히 식히기 위한 수건 위로 느껴지는 온기가 초딩이 체온 같아서 미소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초딩이의 영석을 품에 담고, 집으로 올 때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이렇게 가벼우니 어디든 데려가겠네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 초딩이는 부모님 집에서 저와 같이 살던 놈이었고, 독립 이후에는 저와 따로 살긴 했지만 집이 2분 거리라 그래도 자주 볼 수 있었던 녀석입니다. 호시탐탐 저희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놀러오면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가자고 때쓰기에 데려올 수는 없었죠. 그래도 마지막은 우리집이다, 이놈아. 이젠 꼼짝없이 여기 있어야겠네 하면서 여자친구와 초딩이를 놀려댔습니다. 저는 그 순간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여러모로 좋지 않았지만, 초딩이의 마지막 그 순간을 봤기에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온전히 마침표를 찍는 경험을 했습니다. 많이 눈물 흘렸고, 그와중에 마음의 고름도 많이 흘려보냈습니다. 초딩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겠죠. 마지막까지 고마웠다, 초딩아.
처음 초딩이의 죽음을 맞이 하는 순간에는 싫은 것밖에 없어보였는데, 결국 기억나는 것은 좋았던 순간밖에 없더군요. 어딘가 통계를 보니, 반려동물 장례를 대행으로 맡기는 경우, 생계같은 필수적인 문제보다는 그 순간을 참여하는게 마음이 아파서 대행으로 맡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보니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웃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언젠가 맞이할 이별이 두렵더라도 반드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수석노예
24.01.12
BEST
전 보낸지 이제 한 4달 됐어요
진짜 괜찮았는데 폰 케이스 먼지 청소 할라고 열었는데 고양이 털 한가닥이 끼어있더라구요
아 그날 사무실 화장실에서 진짜 쥰니 훌쩍 거렸는디...
그래도 그때만 그랬고 와이프랑 종종 드립도 치도 농담도 하면서 지냅니다 가끔 딸이 찾을땐 좀 그렇지만...
부자애옹이
24.01.12
BEST
마음이 먹먹할땐 이렇게 글로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하셨어요
글을 읽으며 초딩이의 소풍날이 그려졌습니다 부디 평안하길 바랍니다 나중에 꼭 만나시길
부자애옹이
24.01.12
BEST
마음이 먹먹할땐 이렇게 글로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구요 잘하셨어요
글을 읽으며 초딩이의 소풍날이 그려졌습니다 부디 평안하길 바랍니다 나중에 꼭 만나시길
알락꼬리여우원숭이
24.01.12
잘가 초딩아
임네모
24.01.12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경험할 일이네요…
마들선인장
24.01.12
남일 같지 않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수석노예
24.01.12
BEST
전 보낸지 이제 한 4달 됐어요
진짜 괜찮았는데 폰 케이스 먼지 청소 할라고 열었는데 고양이 털 한가닥이 끼어있더라구요
아 그날 사무실 화장실에서 진짜 쥰니 훌쩍 거렸는디...
그래도 그때만 그랬고 와이프랑 종종 드립도 치도 농담도 하면서 지냅니다 가끔 딸이 찾을땐 좀 그렇지만...
마라샹궈지금출발
24.01.12
21년도에 먼저 보낸 저희 집 첫냥이 찡이가 생각나는 글 이네요.
찡이는 저희와 10년을 함께했고 초딩이처럼 그렇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며칠간 크게 상심했고 몇 달 간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옛사진을 마주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써주신 글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또 눈물이 주루룩 흐르네요.
초딩이도 횐님과 함께한 그 시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을 겁니다.
먼저 보냈어도 항상 곁에 있는 친구들이니 우리 너무 많이는 슬퍼하지 말아요.
응원합니다 횐님.
한교동
24.01.12
아.. 차마 읽어보지 못하고 내렸습니다...
먼 미래에 항상 생각하지만 떠올리기 싫은 미래의 일인거같네요.. 저희 고양이가 이제 12살3개월인데 오래오래 건강하자
쓴이님 힘내세요!
노원구
24.01.12
저도 8살, 1살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서 읽으면서 넘 울컥했네요 .. 10년동안 같이 지낸 강쥐를 떠나보냈을 때 저는 17살이었는데 학교 끝나고 집와서 애기가 무지개다리 건넜다는 말 듣고 현관에 앉아서 몇시간동안 펑펑 운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작은 아이들의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을까 매번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더 많이 열심히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려고 그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초딩이도 글쓴이님의 19년의 짙은 사랑으로 화려하게 빛나며 떠났나봅니다. 저희 강쥐가 초딩이 무지개다리 건너 세상 잘 구경시켜주고 돌봐주고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환경운동가
24.01.12
오늘도 퇴근 후 텅빈 집안을 보고 한바탕 울고 이 글을 봅니다. 마음의 준비라는게 의미없었다라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잡덕맨
24.01.12
못읽겠어요 너무 슬퍼요
모지롱키
24.01.12
저도 강아지를 떠나보낸지 반년이 훨 넘었는데도 계속 보고 싶어요. 그래도 장례를 치르니 확실히 떠나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요. 언젠가 먼미래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횐님도 마음잘 추스리세요!!
새우젓
24.01.12
수년이 지났지만 내 품에서 세상을 떠난 그친구의 온기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쪼록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마세요. 우리 ,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 더 많으니까. 초딩이 안녕
두다리갈매기
24.01.12
먼저 간 저희 노랑이가 초딩이를 잘 챙겨주었으면 좋겠네요 횐님 마음 추스르시느라 고생많아요
Pie
24.01.13
저번 글도 클릭하자마자 눈물 왈칵 차올라서 다 못 읽고 뒤로가기 눌러버렸는데 오늘도 차마 끝까지 못읽고 스크롤 내려버렸어요. 읽는 것 조차 힘든데 직접 겪으신 회원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하기조차 버겁습니다. 초딩이는 회원님을 만나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소풍을 떠났네요. 분명 더 잘해줄 수 있었을거라 후회하는 마음도 드시겠지만, 초딩이는 동의하지 않을겁니다. 초딩이는 누구보다 행복했어요. 명심하시고 기운 차리시길 먼 곳에서 기원하겠습니다.
Dijonale
24.01.13
저도 이제 곧 10살 되는 고양이가 있는데, 주변에서 떠나보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곧 제 얘기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초딩이는 행복했을 겁니다. 댓글로나마 위로 드립니다.
여섯시내고향
24.01.13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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