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 흥미를 잃고 현생만 살지만
과거 십덕도 해봤고 돌팬도 해봤고 지금은 그나마 침팬(침착맨 팬이라는 뜻 침팬지와 관련 없음) 정도인 사람인데
그래서 여러모로 ‘팬’으로서 마음가짐에 대해 고민할 일이 많았걸랑요?
근데 인터넷방송인을 대상으로 한 팬덤은 십덕이나 연예인에 비해 역사가 짧고
굉장히 특이한 면을 지녔다고 생각해서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일단 연예인 팬덤.
이쪽한테 연예인은 가상의 존재에 가까워요. 물론 비교적 덜 알려진 아이돌의 팬은 오프에서 만날 일도 많고 아티스트가 팬을 기억해 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벽이 있으니 팬이라 할지라도 그 인간 자체에게 과하게 몰입할 가능성이 낮죠. 그걸 권장하고요.
물론 20여 년 전에는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상징되는, 지나친 팬심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이어질 때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팬 문화도 성장했고, 이제는 아무리 그 연예인을 사랑해도 서로 선을 유지하는 게 맞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좋아하니까 너무 몰입하지 말자. 지켜주자.” 같은 거.
다음으로 십덕. 애니메이션 팬.
여기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가상의 존재를 사랑하죠. 그래서 애초에 과몰입할 일은 없습니다.
웃기려고 나한테 이건 현실이야!! 라며 오바하기도 하고,
연예인 팬덤과 비슷하게, 10~20여 년 전의 십덕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나눌 상대가 없으니
혼자 내면을 파고 들어가다가 ‘나도 애니 캐릭터처럼 행동하고 싶다’라는 생각에
독특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만(저는 중학생 때 친구와 싸우고 화해하자는 말을 “과거의 나를 죽이러 왔다”로 갈음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커뮤니티가 워낙 활발해져서 서로를 이해해 줄 만한 사람끼리 소통하다 보니 자연히 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십덕들 역시 과몰입으로 인한 폐해로부터 많이 벗어났다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방송 팬덤. 이게 대중화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야 있죠. 있는데, 지금처럼 다양한 유튜버의 다양한 팬들이 생겨난 건 정말 얼마 안 됐으니까요.
더불어 인터넷방송의 특성상 팬들은 인터넷방송인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자연히 그를 심리적으로 아주 가깝게 느끼곤 합니다.
그것 자체가 인터넷방송이 이만큼 성장한 근간이고요.
즉, 연예인 팬이나 십덕들과 달리 그 대상에게 과몰입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인터넷방송인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어느 작품의 배역을 끝내주게 연기하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세계를 구했거나 하는 게 아닌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좋아하는 거거든요.
저는 여기서 “과몰입하지 마세요.”의 모순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방송은 리얼함 때문에 보는 건데 방방봐를 해야 한다니!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보니, 저는 코어팬이 부담스럽다는 말이 십분 이해 갑니다.
자신을 걱정해 주고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건 정말정말정말 고맙지만
다른 팬덤과 달리 인터넷방송인 팬덤은 실존하는 그 인간 자체에 대한 호감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표현이 좀 더 적나라하고 미묘한 부담감, 불편함이 있을뿐더러
그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게시됐을 때 또 다른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걱정들.
다행히 저는 방장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방 꼬박꼬박 챙겨 보고 옛날 원본 돌려보고 쇼츠 뽑고 하긴 하지만 그건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거고
뭐….. 재밌는 얘기 잘하는 친구 정도?
그 정도로 생각하면 딱 좋을 것 같네요.
방장의 화법이 유니크하고 재밌지만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에게 받은 웃음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면, 그 힘으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 언젠가 기부나 후원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세 줄 요약
- 십덕, 연예인 팬들은 비교적 좋아하는 대상과 거리를 두기 쉽고, 그걸 권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 하지만 인터넷방송 팬덤은 그렇지가 않다. 역사가 짧고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때문.
- 그게 인터넷방송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계속해서 거리 두는 연습을 해보자!
